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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Feb 03. 2024

대리인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는 아이

과연 그들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선생님~ OO이가 오늘 글쓰기 공책을 집에다가 두고 왔다는데요

선생님~ OO이가 이번주 말고 다음 주에 발표해도 되냐는데요 

선생님~ OO이가 오늘 학교에 못 온다고 카톡 왔어요


교육과정이 바뀌어도 학생들에게 길러줘야 할 필수 역량으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로 자기 주도성, 문제해결력, 의사소통능력 등이 있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삶을 헤쳐나가는 자기 주도성, 문제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직접 맞부딪혀 풀어나가는 문제해결력, 공동체 의식의 기본 바탕이 되는 의사소통능력. 위 사례에 해당하는 아이는 이 세 가지 능력이 총체적으로 부족하다. 이런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직접 전달하거나 문제상황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친구나 부모의 도움을 받아 스리슬쩍 어려움을 넘어가려 한다.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극복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아이들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본 극복 경험이 현저하게 부족하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아질 수 없다.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를 몇 가지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 타고난 본성이 소극적이라 목소리를 내는 것이 힘겹기 때문일 수 있다. 태생적으로 기 약하거나 불안도가 높아 남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특별한 문제상황을 겪어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질적으로 방출해 내는 힘이 약한 탓에 자신의 의견을 전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중얼거리고 있는 사이, 옆에서 그 중얼거림을 듣고 있던 관심이 고픈 아이에게 교사와의 대화 기회를 빼앗기고 만다. 둘째, 그간 부모나 친구, 교사로부터 무시당한 경험 때문에 기가 죽어서 입을 꾹 다물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반복적인 거절의 경험 때문에 어차피 타인은 내 말에 관심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고착화되고 그로 인해 점점 발화를 망설이게 되며 하루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전혀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 아이가 된다. 셋째, 어린 시절부터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준 부모덕에 스스로 목소리를 내본 경험이 전무한 경우다. 잔디깎이 부모, 헬리콥터 부모라고도 불리는 극성 부모를 둔 덕에 아이는 문제상황을 인식하기도 전에 상황이 종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이런 아이들은 갈등을 견디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상황을 불편하게 여긴다. 하여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누군가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단순히 전달함으로써 문제 상황이 해결되었다는 착각에 빠진 채 상황을 종결지어 버린다.


케이스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결국 이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회피형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회피형 인간이 되지 않도록 교사들은 무던히도 애를 쓴다. 기질이 약한 아이에게는 든든한 네 편이 여기 있다는 뉘앙스를 끊임없이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무시당한 경험 때문에 입을 닫아버린 아이에게는 응원과 관심으로 용기를 북돋는다. 이 두 가지 경우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가 마음을 바꿔먹고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모습이 종종 관찰된다. 문제는 세 번째 경우인데 이 케이스는 아이의 상태 변화를 이끌어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첫 번째 두 번째 경우는 얼어붙은 얼음을 조금씩 녹이는 느낌이라면 세 번째 경우는 실컷 녹인 얼음이 매일 냉동고에 들어가서 다시 꽁꽁 얼려 되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자식의 잘못을 부모 스스로 자신의 부덕 탓으로 돌리곤 했다. 이는 자식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여 남에게 폐를 끼친 것에 대해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발현시키는 사죄의 마음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현대에 와서는 죄송한 마음의 발현이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공격당하는 것으로 느끼는 부모가 많아져 분노와 복수의 마음을 발현시킨다는 데 있다. 리하여 자식의 잘못을 지적받은 부모는 마치 그것이 자신을 공격하기라도 했다는 양 자기 자녀에 대한 어떠란 종류의 부정적 피드백도 견뎌내지 못하고 무조건 반사에 가까운 반응속도로 자녀를 지적한 대상을 향해 돌격한다. 리고 그런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자식은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런 시간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다가 성인이 된 자녀들은 분노조절장애를 장착한 갈등상황 회피형 인간이 되어 세상으로 나온다.


우리 아들이 숙제를 너무 힘들어해서 집에만 오면 숙제 때문에 부모와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는 전화. 도서관에서 뛰고 떠든 아이들에게 집에 가서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했더니 우리 아이가 떠든걸 선생님이 직접 눈으로 보셨냐는 학부모의 반응, 도서관 사서 경험이 있다며 원래 그 학교 도서관이 그렇게 조용한 편은 아닌데 조금 떠들었다고 이게 뭐가 문제냐며 교사의 훈육에 대해 되묻는 참담함. 친구들끼리 다툼을 중재해 달라며 교사에게 전화해서 본인이 경찰인 것 아냐며 친히 직업을 밝혀주는 학부모의 친절함. 친구들끼리 쌍욕을 담아 담임교사의 험담을 하다가 내부고발자의 고발 덕에 일을 알게 되어 부모님께 아이가 걱정되니 꼭 깊은 이야기를 나눠달라는 교사의 간곡한 부탁에 그럴 수 있다는 말로 오히려 아이를 위로하는 학부모. 많은 교사들이 현재 겪고 있는, 더 이상 전혀 예외적이고 특수한 케이스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의 빈도를 보이는 괴상한 반응이다. 이는 모두 분명히 잘못된 행위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며 사랑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런 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은 높은 확률로 학교에서 다양한 문제상황을 발생시키는 아이가 된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녀를 그런 사람으로 길러내고 싶었을까. 세상에 그런 부모는 없다. 그야말로 잘못된 사랑, 제대로 된 방법을 알지 모르는 미숙한 사랑이 빚어낸 촌극인 셈이다. 물고기를 잡아주기만 하는 부모는 결코 좋은 부모라고 할 수 없다. 부모가 깨어나야 자식도 눈을 뜨는 법이다. 모두가 아는 이 간단한 진실은 왜 개인의 삶 속에서 그토록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향이 되고 마는 것일까. 자기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녀가 어떤 시간과 어떤 경험 속에서 스스로를 만들어가게 도와야 할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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