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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호 Apr 30. 2024

17. 이호준, ‘사는 거, 그깟’

이십 년 살던 집 파는 서류에 도장 찍고 오는 길

아이들 다니던 학교 담장 밑에 산국 곱다

돌부리에 걸린 척, 내 집을 돌아본다   

  

작년에 절집 불목하니도 그만뒀으니 집도 절도 없다,

생각하니 허전하다 그러다 이내 고개 젓는다

저 꽃은 들보 하나 얹은 적 없어도 환하게 웃지 않느냐

재산세 같은 건 잊고 살아도 되니 얼마나 좋으냐

사는 건 맹물로 허공에 그린 그림 같아서

한 뼘도 안 되는 길을 평생 헐떡이며 걸어왔다

열 켤레 넘는 구두굽이 바깥쪽만 닳아 없어진 뒤

남은 건 기울어진 어깨     


사는 거, 그깟…     


주춤거리며 따라오던 아내가 밥이라도 먹고 가잔다

단골로 다니던 추어탕집으로 간다

아이를 키운 집 넘기고 정든 동네 떠나려니 서운하겠다

그대와 나, 한 시절 뜨겁게 생을 외쳤느니

밥보다 먼저 소주 한 병 주문한다

언제 우리 다시 이렇게 앉아 서로의 손에 젓가락 쥐여줄까,

제피가루 너무 많이 넣었다고 툴툴거려볼까,

생각하니 또 잠깐 먹먹하다     


모처럼 마신 낮술이 걸음마다 매달린다

오늘이야 아내가 있으니 그럴 리 없겠지만

나도 모르게 101번 버스에 취한 몸 실을지 몰라서

현관문에 머리 댄 채 삐삐삐삐 비밀번호 누를지 몰라서

머릿속에 남아 있던 숫자 몇 개 얼른 지운다     


사는 거, 그깟…

  - 시집, <사는 거, 그깟> 중에서

          

사는 게 그깟 이라니? 처음 시 제목을 보고 뭐야 하는 생각이 들기 쉽다. 듣기에 따라서는 삶을 모독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전혀 모르는 사람의 무신경한 언사인 것 같기도 하다. 삶의 괴로움을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의 자신감 같기도 하고, 술자리에서 흰소리나 하며 허장성세를 즐기는 사람의 뻥카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시를 읽어보면 20년이나 살던 집을 팔고 나오면서 ‘아이들 다니던 학교 담장 밑에 산국’ 고운 것이 눈에 띌 정도로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섭섭함과 쓸쓸함을 한 마디로 ‘집, 그까짓 것!’ 하는 마음을 ‘사는 거, 그깟’ 하는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는 것이 그깟인 게 아니라 사는 거 그깟으로 치자는 호기나 달관이라고 할 수 있다. ‘들보 하나 얹은 적 없어도 환하게 웃는’ 저 꽃과 ‘재산세 같은 건 잊고 살아도 되니 얼마나 좋으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사는 거, 그깟’이라는 두 단어는 시에서 중요한 것 두 가지를 직설적으로 알려준다. 하나는 시의 대상, 또 하나는 대상에 대한 시인의 해석이다. 시는 삶을 대상으로 한다. 삶에서 만나는 사건, 사람, 사물이 시의 대상이다. 사랑과 이별, 행복과 불행, 분노와 좌절, 성취와 실패 등등. 이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표현하는가 하는 것이 시인이 할 일이다. 그러므로 시에서 중요한 것은 쓰는 기술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절절히 살아내고 그 절절한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시인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갖은 비유와 상징과 복선을 동원하지 않고라도 진실하고 절절한 삶의 서사가 있다면 언제라도 누구에게도 그 의미는 전달되리라고 믿는다. 이 시인의 페북에서 그의 호탕함과 그리스인 조르바와 같은 자유인으로서의 기질을 읽으면서 근거리에 사는 그를 한 번은 만날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술집이나 국밥집에서 갈 때마다 두리번거렸으나, 결국은 그의 북토크에 가서 실물을 알현하였다. 생각했던 것처럼 그는 자유인이었다. 뭐 사는 거, 그깟 하며 들로 산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오늘도 유유자적할 것이다. 그의 모습에서 수경자적隨境自適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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