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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니와 여행 시 3편

by 전종호

당신에게 가는 길

- 오키나와 고혼孤魂들의 앞바다에서


바다, 잔잔하거나 출렁이거나

아니면

거친 까치노을로 덤벼들더라도

당신에게

돌아갈 수 없는 건 아니다

대륙 사막 끝 초원에서

반도의 변방까지

하늘이 스스로 바람길을 내어

새들을 날게 하듯

사람들이

재를 넘고 강을 이어

나와 너 사이

마음 길을 뚫고 살아가듯

바다 밑 물길 따라

물고기가 떼를 이루고

그 위에 뗏목을 띄워

이 민족 저 민족이 이동하듯

큰 바람 불어

바다를 뒤집고 배를 덮쳐도

깊은, 아주 아래

깊은 곳으로

물길을 내고

오키나와에서 제주 앞바다까지

쿠로시오 검은 물길을 따라

돌아가고 싶다.

아, 이방에 나를 팔아넘긴 비루한 조국!

그래도 결코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그리운 나라

두 날개 다 찢기더라도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이 바다 검은 물길을 거슬러

절절한 걸음으로

당신에게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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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거리라는 이름의 거리를 걸으며


폭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동굴의 밤중에

간당거리는 자식들의 목숨줄을 붙잡고

함포를 쏘지 말라 바다 건너온 미군이여

꺼져가는 부모형제의 몸을 찌르지 말라

집단자결을 부추기는 비겁한 일본군이여

가슴속 통곡과 절규를 피고름 뱉어내듯

통증을 깊숙이 허파로 삼키던 말씀 평화


평화 평화여 함부로 가볍게 말하지 말라

평화라는 말은 전쟁과 학살 속에서

마른기침처럼 터져 나오는 간절함

평화는 마치 평화라는 말에서 오는 것인냥

심심풀이처럼 쉽게 주절거릴 수 없는 말


도대체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전쟁이 끝나 포탄의 불바다는 그치고

풀 한 포기 나지 않던 불임의 땅 위에

풀들은 뿌리를 뻗어 나무는 다시 푸르고

살아남은 자들은 새끼를 낳고 낳고

다시 집을 짓고 길을 내고 도시를 만들어

잊지 말자고 평화의 거리를 만들었지만


평화는 전쟁과 학살에서 총 맞고 불타

죽은 자들을 조용히 기억해야 하는 말

장사 속에 평화의 거리의 이름을 짓고

희희낙락 너무도 입이 가벼운 자들이여

죽어 바람이 된 사람들을 잊지 말고

죽인 자들의 총칼을 기억하는 것이다


* 평화의 거리라는 이름의 거리를 걸으며,

오키나와 작가 메도루마 슌의 소설 제목.

‘평화의 거리’는 오키나와 나하시 국제거리

뒷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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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애가哀歌


세워도 망하는 것이 나라라고 하지만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어렵듯 나라를

세우는 것보다 경영하는 일이 더 힘들다

경영한다는 건 무언가를 다스린다는 것

다스린다는 것은 비록 유柔한 것이라도

이쪽 또는 저쪽으로 휘게 하는 일이어서

반동은 위아래서 항상 터지기 마련이다


나라 경영은 국경과 제도를 정하는 일

성을 높이 쌓고 용맹한 군사를 세워도

성을 넘어오는 침략자를 다 막지 못한다

사면의 바다를 경계 삼고 성을 쌓아도

침략의 낌새를 미리 알아채지 못해서

이 나라가 저 나라가 되기도 하고

큰 나라에 붙어 영혼을 팔기도 했다


왕궁은 침략자의 군사 사령부가 되고

사령부는 또 다른 공격의 타깃이 되었다

모두가 죽어야 끝날 미군의 철의 폭풍과

시사에게나 비는 나라를 전쟁터로 삼아

집단자살을 강요한 일본군의 파렴치로

성은 개박살이 나고 이국의 젊은이들과

섬사람 절반이 죽어 섬을 떠나야 했다


시간 지나 복원된 성에 다시 불이 켜지고

방문객이 넋을 놓는 환상의 섬 풍경이지만

조상의 오랜 신앙은 오늘에 전해지지 않고

이익에 눈먼 언어는 서로 통하지 않았다

풀밭에서처럼 흥망이 자연의 법칙이라지만

어찌 알았으랴 산 자들이 까닭 없이 스러지고

무너진 섬에 꽃들이 또 이렇게 피어나는 것을



*시사 : 담장이나 문 앞에 세워놓고 복을 비는

오키나와의 수호신. 사자와 개가 혼합된 형태의

동물 모습이다. *철의 폭풍 : 태평양 전쟁 당시의

미군의 대규모 폭격작전 *환상의 섬 : 전쟁 상흔을

지우고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전후 오키나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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