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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기아빠 Apr 29. 2020

전지적 남편 시점에서의 정액검사

자꾸 하면 요령이 생긴다.

우리 부부는 난임이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잘한다는 병원을 여러 곳 찾아다녔다.

새로운 병원을 갈 때마다 남편은 한 가지만 하면 된다.

그래서 비교적 간단하지만.... 매번 어려웠다.

 

- 정액검사 -


"또각... 또각..."

"000 산모님! 들어오세요"

"띵똥! 2층입니다."

대충 산부인과 정액검사실에서 들리는 소리들이다. 사실... 그냥 병원 대기실에서 들리는 일반적인 소리들이 다 들린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나는 혼자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ㅠㅠ

 

처음 정액검사를 한 곳은 산부인과가 아니었다. 첫 번째 유산을 한 후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보기 위해 나 스스로 비뇨기과의 문을 열었다. 회사에서 업무를 보는 중간 잠시 나와서 그냥 검사를 했다. 크게 걱정을 안 했다.

결과는 나중에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다. 정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걸려온 전화 내용은...

"선생님! 아... 정자 활동량이 살짝 모자라네요. "

이런... 젠장. ㅠㅠ

누구를 원망할 상황이 아니었다. 전화를 받는 내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구레나룻을 타고 땀방울이 점점 커지면서 내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난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는데... 아직 20대인데...'

전화를 하면서 병원 원장님과 몸상태를 묻는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사실 전날 당직근무를 하고 바로 검사를 한 것으로 피곤했다는 핑계가 성립이 되었다.


"아마 피곤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며칠 후에 다시 한번 검사를 해보시죠."


난 꼭 피곤했어야 했다. 정말 많이 피곤해서 몸의 기능들이 엉망이어야 했다.

꼭 그래야만 했다.

 

이번에는 예약된 검사일 2일 전부터 회사에 휴가를 내고 집에서 컨디션 조절을 했다. 마음은 재판선고를 기다리는 미결수처럼 불안했지만 억지로 많이 자고 평상시에 먹지도 않았던 몸에 좋다는 것을 많이 먹고 푹 쉬었다.

재검사일이 밝았다. 불안했지만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 병원문을 다시 열고 며칠 전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따르르르릉"

"네! 선생님!"

"정자 활동량이 매우 좋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ㅠㅠ"


나는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정액검사를 더 받았다.


그런데... 비뇨기과랑 산부인과는 분위기가 참 많이 다르다.

비뇨기과는 남자 환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부분이 있었는데 산부인과는 다르다. 일단 남자들이 별로 없다. 그리고 산부인과는 검사실에 투자를 안 하는 것 같다. 오래된 VHS 테이프와 브라운관 TV가 웬 말인가...

검사실에 앉아있으면 밖 상황이 고스란히 다 들린다.

검사실에 혼자 앉아서 내 취향도 아닌 이상한 영화를 보면 머릿속에 별 생각이 다 든다.  


'아... 이건 진짜 할 짓이 아닌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빨리 나가야 하는데...'


한 번은 도저히 힘들어서 간호사 선생님에게... 부탁을 했다.

"선생님! 집에 가서 해오면 안 될까요?" ㅠㅠ

이런 부탁을 하는 것도 참 이상하기는 한데... 어쩔 수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오셔야 합니다. "

"네...."

차를 몰고 다시 집에 오는 길이 참 처량했다.


몇 번의 검사를 하면서 경험한 부분은 남자의 몸은 참 단순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몸에 좋다고 알려진 홍삼, 전복, 장어 등을 검사 전날 먹으면 검사 결과가 참 잘 나온다. (지극히 개인적 의견입니다. )

그래서 나중에는 검사 전날 마트에서 그냥 떨이로 파는 장어나 전복을 사서 먹고 검사를 대비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지금 이렇게 편하게 지난날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

사람 사는 것이 이렇게 단순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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