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모의 영화 <자유부인>을 보고
<자유부인>은 반세기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아무래도 더욱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풍조가 짙었을 것이라 예측하는 그 과거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보여주는 여성 주인공의 모습은 예상과 다르다. 주인공 선영의 모습은 자신의 욕망을 알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자유부인‘ 그 자체인 것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양품점에서 일하게 된 선영과 사장의 남편이 모종의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이다. 사장의 남편은 애인에게 줄 것이라며 화장품을 사면서 화장품을 좋아하는 여성들을 비하한다. 처음에는 ”화장품의 노예“라는 말로 시작하여, 고작 화장품을 쓴다는 이유로 ”누구를 위해서든 아름답게 꾸며야 하는 현대여성일수록 점점 매춘부적 성격이 농후해간다“라는 말을 쏟아내기까지 한다. 이때 선영의 대사가 흥미롭다. 먼저 그녀는 ”화장이란 여성의 생활과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절대적인 조건이지요“라는 말로 자기주장을 분명히 드러낸다. 나아가 ”그건 선생님의 너무 비문화적인 관찰인 탓이에요“라며 사장의 남편을 아슬아슬하게 깎아내리며 비판할 수 있는 용기가 좋았다. 이런 대화는 지금의 창작물들에도 등장하기 어려운 솔직한 대화다. 게다가 이 순간의 긴장감이 기점이 된 것인지 어느새 두 사람은 가끔 데이트를 하는 사이로 발전하는데, 이 지점도 흥미로웠다. ‘날 이렇게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로 시작되는 러브스토리는 유구한 전통인가 보다.
선영이 가정주부일 때의 모습은 특별하게 비춰주지 않아 그녀의 과거를 알 순 없지만, 영화의 서사를 좇다 보면 지금 선영이 무엇을 원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해내고자 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가정에서 사회로 나온 그녀는 새롭게 알게 된 재미를 누리길 원한다. 그것은 애인, 댄스, 양장 등등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차차 하나씩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누리는 사람으로 변모해 간다.
이 작품에서 주목하는 것은 선영의 마음이고 선영의 행동일 따름이다. 그녀가 연애를 원하기에 남성 인물들이 종종 등장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서사는 알 수 없다. 그저 그들은 선영의 인생에 등장한 조연으로 보이며, 여자라면 작업을 걸고 보는 ‘픽업 아티스트’ 정도의 존재로 보일 뿐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여성 주인공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묘사해 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남성의 서사를 이끌기 위해 여성이 도구로 쓰인 것이 아닌, 반대의 작품인 것이다.
선영이 가정으로 회귀하는 듯한 결말은 아쉽지만, 사실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이미 일탈을 꿈꾸는 여성이 주인공인 몇몇 고전 영화를 보며, 2시간짜리 영화라면 마지막 20분은 그 여성이 죗값을 치르거나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클리셰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아마 당대 사회적 분위기를 따라 가정 파괴를 독려한다는 둥 하는 비판과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런 보수적인 결말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알아둬야 한다. 영화의 결말부에 한복을 입은 선영과 영화의 시작부에 한복을 입은 선영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양장을 경험했고, 다른 세계를 경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꾸려나가는 삶은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보수적인 결말만을 놓고 이 작품을 마냥 아쉽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