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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E May 11. 2024

‘대안’ 없는 ‘낙인’은 무엇도 바꿀 수 없다

영화 <데이비 스트리트의 창녀들>을 보고

이 영화는 랜디 크로포드의 ‘Street life’가 흘러나오며 시작된다. 음악에 맞춰 펼쳐지는 캐나다 ’성매매의 수도‘로 알려진 데이비 스트리트의 풍경. 노래의 가사는 앞으로 펼쳐질 이들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축약해낸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없고, 갈 곳도 없어 거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 신나는 리듬에 얹히는 슬픈 가사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밝게 웃으며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쉽게 위험한 상황에 놓이며 최악의 상황에는 죽음의 위협도 받고 마는 그들의 삶을 요약하는 듯하다.


이들의 노동의 현장을 담은 짧은 인서트들 사이 사이 삽입되는 인터뷰들에 어떤 말을 얹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인상 깊었던 말은 있다. ’성노동자‘ 당사자인 한 인터뷰이는 데이비 스트리트에 대해 “있으면 안 될 존재들이 한 데 모여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남성, 여성, 크로스드레서, 트렌스젠더가 함께하며 모종의 커뮤니티를 이루며 서로 연대하는 곳이 이곳 데이비 스트리트다. 여느 인간관계가 그렇듯 서로 미워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위험의 순간에 서로를 구하는 것은 서로다.


여전히 단순히 낙인의 대상이 되고 마는 ‘성노동자’들의 삶을 1980년대에 입체적으로 담아낸 작품이 무척이나 좋았다. 이들이 ‘성노동’에 종사하게 된 배경부터 ’성노동‘ 또한 ’노동‘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성노동’ 현장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의 현실까지 짚어내는 게 이 영화다.


나아가 ASP라는 운동 단체에 속해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과 노동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 또한 담아낸 점 또한 돋보였다. ’성매매 비범죄화‘라는 법적인 노력만을 제시하는 국가에 대해 ’법안‘이 아닌 ’대안‘을 달라며 집회를 여는 모습이 이 영화의 끝이다. ‘대안’ 없는 ‘낙인’은 무엇도 바꿀 수 없다. 그저 상처만을 낳을 뿐이다.


1984년에 지금의 변화를 외치던 ‘성노동자’들의 삶에 어떤 대안이 마련되었는가? 캐나다의 지금과 한국의 지금은 어떤 모습인가. 오랜 기간 미뤄온 책 김주희 선생의 <레이디 크레딧>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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