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OE Aug 16. 2024

믿을 수 있는 사람

드라마 <언멧>을 보고

어떤 고난에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은 없다지만, 유독 단단한 사람들이 있다. 자신에게 매일 같이 다가오는 불안 속에서도 그럼에도 ”잃지 않는 것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 그 사람은 <언멧>의 주인공 미야비이다.


그녀는 사고로 기억 상실증을 앓게 된 뇌외과의이다. 약 2년 전을 마지막으로 하루를 채 가지 않는 기억을 지켜내기 위해 그녀는 매일을 기록한다. 매일 아침 그녀에게 삶은 새롭다. 그러나 그녀의 두꺼운 일기장이 증명하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채워지는 삶의 조각들은 그녀의 삶에 흔적을 남긴다. 그녀의 일기장에 “나는 산페이 선생님을 믿는다”라는 말이 적히기 전과 적힌 후의 삶은 온전히 다르다. 산페이는 미야비의 약혼자로 미국에서 의사 일을 하다가 미야비의 병을 고치기 위해 돌아온 자이다. 그런 그가 그녀의 삶에 개입되며 <언멧>은 시작된다.


나는 이 작품을 ‘믿음’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냈다. 주인공 미야비는 자신의 운명을 수용하며 의사로서의 업무를 포기하고 간호 보조로 근무한다. 하지만 산페이는 사실은 의사로서 계속 일하고 싶지 않냐며 그녀의 복귀를 독려한다. “할 수 있다”는 말, ’기억‘은 잊혀져도 ’기술‘은 잊혀지지 않는다는 말은 미야비에게 힘이 되며, 결국 미야비는 한 수술의 집도의를 맡을 정도의 성과를 내게 된다.


그녀의 곁엔 산페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야비의 뜻을 항상 지지하며, 일이 끝나면 단골 술집에 모여 왁자한 시간을 보내는 동료들은 미야비의 힘이 된다.


물론 그녀의 삶에 역경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그녀의 기억 상실증엔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암시가 나온다. 이 작품의 핵심은 그 비밀을 파헤지는 것이기도 하다. 비밀이 있다면, 그 비밀을 숨기는 자도 있는 법. 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이 선인은 아니기에, 믿었던 자에게 그녀는 배신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찌 보면 그녀의 삶은 시샘이 날 정도로 따뜻한 삶이다. 처음 드라마를 보며 나는 그녀의 삶을 질투했다. 그녀가 겪는 매일의 불안을 지우고 본다면, 저렇게 따뜻한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며 생각은 달라졌다. 그녀는 단순히 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분명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불안 속에서도 다정을 베풀며 신뢰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었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사람을 믿지 못했던, 어쩌면 자신마저 믿지 못하게 된 부장은 어제를 기억하지 못함에도 오늘을 살아가며 타인에게 따뜻함을 잃지 않는 미야비로 인해 타인을 믿을 힘을 다시금 얻지 않는가. 그녀는 그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상호 신뢰는 이 드라마 속에서 미야비가 맺는 모든 관계의 밑바탕이다.


떠올려보면 나에게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불안과 고독에 같이 맞서 싸워줄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형이다. 내가 그를 잃은 이유는 아마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일테다.


이 글은 작품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제대로 글을 써내지 못하는 작품에 빚을 지고 글이다. 내가 이 글이 가닿기를 바라는 곳에 닿을 수 있을까 알지 못하지만,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기에 쓴다.


폴 발레리는 “비평이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평이라 부르기엔 졸문이지만, 나의 글 또한 다르지 않다. 나는 나를 이야기하기 위해 작품을 경유하여 글을 남긴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언멧’은 산페이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말이다. ‘다 채워지지 않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에 대해 산페이와 미야비가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있다. ”빛을 비추면, 그림자가 생겨요“라며 세상에 그림자지는 곳을 없애고자 하는 산페이에게 미야비는 대답한다. “자기 안에 빛이 있으면 어둠도 밝게 보이지 않을까요?“ 이 말은 내 안에 단단한 빛을 품고 싶게 만들었다.


미야비처럼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보다는 내가 먼저 타인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손을 뻗고 싶다. 그렇게 손과 손을 맞잡을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러브 라이즈 블리딩> 이전에 <바운드>가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