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OE Aug 27. 2024

사랑하고 미워하는 당신에게

영화 <딸에 대하여>를 보고

모녀 관계를 다룬 이야기는 고통스럽다. 당신과 나는 분명 다른 존재이나, 너무나 닮아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그러나 미워한다. 모든 딸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딸들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이다.


‘일반적인’ 모녀 관계에서도 이런 문법은 적용되지만, 이 작품 속의 모녀 관계에는 커다란 걸림돌이 하나 더 작용한다. 엄마는 딸이 ’정상 가족‘을 이루길 바라며, 딸은 레즈비언으로서 7년 간 관계를 유지해온 애인이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된다. 혈연 관계라는 점, 대학 ’강사‘로서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지 못한 점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다. 엄마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주지 않음에도, 딸은 쉽사리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다.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을 때 이 갈등은 폭발되지 않는다. 부모자식 관계는 멀어져있을 때 가장 가깝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경제적 문제로 딸이 집을 잃게 되며 두 사람은 함께 살게 된다. 그리고 이 불안한 동거에는 딸의 동거인인 애인이 함께 개입되며, 세 사람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이에 덧붙여지는 레이어가 있다. 자신과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부당 해고를 당한 교수를 위해 싸우는 딸 그린. 엄마는 그런 그린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린은 말한다. 그것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고. 그러니 나는 싸울 수밖에 없다고.


그린의 엄마는 그린을 이해하지 못한다 말하지만, 그린의 엄마는 딸인 그린과 닮은 사람이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그녀는 오랜 기간 자신이 케어해온 할머니를 병원에서 내치려 하자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그린처럼 투쟁을 벌인다. 그녀의 당위는 그린의 당위와 닮았다. 미래의 나의 일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말이 그녀의 당위다.


무척이나 달라 보이는 모녀는 무척이나 닮아있다. 투쟁의 DNA가 그녀들의 몸에 새겨진 것일까. 부당한 일을 두고 보지 못하는 것, 아직 닥치지 않은 일에도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며 싸우는 것은 그녀들의 특성이다. 나 또한 나의 엄마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유전이라는 것은 이런 것일까. 나는 엄마의 외형만 닮은 것이 아니다. 그녀의 어떤 특질은 나에게 그대로 옮아온 것만 같다. 이런 감각을 느낄 때마다 내 마음은 끝없이 복잡해진다.


그린의 엄마는 그린에게 미래를 상상해보라고 말한다. 미래에 가족 없는 혼자인 삶이 괜찮겠냐고 묻는다. 지금의 관계는 소꿉놀이에 불과한 거라고 그린을 비난한다. 그러나 그린은 말한다. 나에겐 애인인 레인이 남편이자 자식이라며,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린의 엄마는 그린이 혼자가 되지 않길 바랐을 거다. 전사는 나오지 않지만,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된 자신을 비추어보며 그린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린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린의 엄마는 알게 된다. 자신이 돌보던 할머니의 죽음, 그 죽음을 곁에서 지켜준 그린의 친구들과 레인을 보며 그린의 엄마는 작품 속에서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잔다.


이 작품의 완성도가 좋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촬영과 편집에 있어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샷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레인과 그린의 엄마와의 몇 번의 대화 씬에서 컷이 튄다는 느낌을 참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간절한 이야기가 나에게 와닿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적절히 전한 게 아닐까 싶어 일람을 추천한다.

작가의 이전글 믿을 수 있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