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구 최후의 여자>를 보고
요즘의 나는 일종의 해리 증상을 겪고 있다. 분명 나는 땅에 발을 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나는 하늘에서 3인칭 시점으로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증상을 처음 겪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종종 그랬다. 나는 내가 수용할 수 없을 정도의 극한의 스트레스가 찾아오면, 내가 나를 나에게서 분리시키고 만다.
그런 나는 요즘 극장을 자주 찾는다. 극장은 2시간 동안이나마 현실의 도피처가 된다. 깜깜한 극장에서 나는 내가 아닌 존재가 되며, 그 순간만은 나의 걱정에서 자유롭다. 물론 모든 영화가 나의 도피처가 되어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영화들은 나의 도피처가 되어주기는 커녕, 내 삶의 문제를 직시하게 만든다. 전자와 후자 중 나는 어떤 영화를 더 좋아하는가. 우습게도 나는 나의 삶에서 도망치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고 말하면서도, 내 삶의 문제를 직시하게 만드는 영화를 사랑한다.
<지구 최후의 여자>는 확실히 후자에 가까운 영화이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한 남성 감독에 의해 상처 받은 남녀이다. 여자 주인공인 하나는 그 감독이 만든 작품의 조연으로서 동의 없는 전라 노출 씬이 세상에 공개되어 영화인으로서의 커리어를 망친 인물이며, 남자 주인공인 성철은 그 감독을 멘토로 삼았다가 시나리오를 도둑 맞은 인물이다.
영화 수업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다르지만 유사한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된다. 단순히 ‘여성 영화 가산점’을 받기 위해 하나를 이용하려던 성철은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동료가 되어 그에게 복수하기 위한 모큐멘터리를 만든다. 그 모큐멘터리의 끝은 영화 <Arrival>을 닮아있다. 생김새도 언어도 다른 존재와 손을 맞잡는 순간은, 어쩌면 이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진정한 동료로서 손을 맞잡는 순간과 비견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현실. 하나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감독을 찾아간다. 그에게 바랐던 것은 진정한 사과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구차한 변명만을 하며, 이 모든 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하나 덕분에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으며, 여성 영화를 찍어보겠다는 궤변까지 늘어놓는다. 하나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듣는 듯하다가 자신이 숨겨놓은 고프로를 꺼내 보여주며 자리를 떠난다.
또 다른 영화를 찍기 위해 현장으로 돌아온 하나에겐 하나가 창조한 하나의 클론이 눈 앞에 나타난다. 자신을 이제는 죽여도 된다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는 하나의 클론. 성철은 이제 현장에 들어와야 한다며 하나를 재촉한다. 하나는 망설임 끝에 클론을 죽이고, 현장에 간다. 아마 사람에게 상처 받았지만, 동시에 사람에게 위로를 받고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하나에겐 더이상 그녀가 필요하지 않아진 것이 아닐까.
최근 권김현영 선생님의 강연을 들었다. 마지막 강의에서 권김현영 선생님은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 말했다.
이 작품은 감독의 그런 재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의 아픔에 분명 눈물 짓게 되지만, 허술한 SF적인 순간과 뜬금 없는 뮤지컬은 분명 우리를 웃음 짓게 만든다. 눈물 지으며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이 영화가 나는 좋다.
많이 울었던 어떤 날, 주먹조차 쥐어보지 못하고 넘어간 일들, 이기지 못한 싸움들이 떠올랐지만 그럼에도 내 곁에는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 일들을 이제 웃으며 말할 수 있다.
나의 해리 증상은 끝날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극의 말미에 등장하는 하나의 클론은 내가 해리 증상으로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나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견딜 수 없는 나머지 나를 현실에서 유리시켜 만들어낸 또다른 나라는 존재. 그것이 하나의 클론이자, 나의 클론이 아닐까. 나는 하나처럼 나의 클론을 죽일 생각은 없다. 그냥 같이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니까.
하나와 성철 두 사람은 지구의 종말이 오면 무엇을 할 것이냐는 대화를 나눈다. 하나는 영화를 보겠다 말하고, 성철은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말한다. 나는 지구 종말이 온다면 무엇을 하려나 오랜만에 생각해봤다. 아마 나도 영화를 보지 않을까. 그런 가정을 해본다면, 이 영화와 함께 영화의 끝을, 지구의 종말을 맞이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