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스트 리폼드>를 보고
#에세이인증 - 10월 영화 <퍼스트 리폼드>(폴 슈레이더, 2017) 에세이
영화는 흔히들 종합예술이라 일컬어진다. 일전에 있던 다양한 예술의 양태가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핵심은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일컫는 주요한 몇가지 영어 단어 중, ‘movie’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뜻한다. 모든 영화는 움직이는 이미지의 결합이다. 그렇기에 이미지에 천착해서 작품을 분석하는 것은 어떤 작품에나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으나, 이 작품은 특히 이미지를 중심으로 살폈을 때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달의 영화가 <퍼스트 리폼드>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몇 년 전 이 영화를 처음으로 본 순간이 떠올랐다. 에단 호크와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나오는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에 큰 흥미를 가지고 영화를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당시의 솔직한 감상은 실망이었다. 느린 템포에 현학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 영화는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저 에단 호크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는 점이 이 영화의 의의로 느껴졌다.
실망으로 남은 첫 관람 이후 몇 년이 흘렀다. 어떤 좋았던 작품은 시간이 흐른 뒤 보면 최악의 작품이 되기도 하고, 어떤 최악의 작품은 시간이 흐른 뒤 보면 그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후자를 기대하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두 번째로 영화를 감상하니,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였다’. 일전에는 단순히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카메라의 움직임에 의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의 중반까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 고정된 카메라는 톨러의 마음의 벽을 보여준다. 변화의 순간은 찾아온다.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고 살아왔음에도, 메리에게만은 마음을 열며 카메라도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톨러는 왜 메리에게 마음을 열었을까. 본능적 끌림으로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톨러를 다르게 바라보는 것은 오직 메리이다. 사실 영화에서 보여지는 톨러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의 핵심은 연민이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기념품 가게’에서 일하는 그를 모두가 연민한다. 그러나 메리는 톨러를 믿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다. 톨러에게 위태로운 남편의 삶을 살펴주기를, 결국 자살을 선택한 남편이 부재한 자리를 채워주기를 부탁한다. 톨러는 이에 흔쾌히 응한다. 어쩌면 톨러는 특별한 것을 바랐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순히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길 바란 것이 아닐까.
오직 톨러가 메리를 좇아 움직일 때만 움직이던 카메라는, 두 사람이 키스를 나누자 아크샷을 통해 최대한 드라마틱하게 움직인다. 자신이 만든 옹벽 속에 살던 톨러는 이제 그 벽을 깨고 나올 수 있을까. 아크샷의 핵심은 회전이다. 어쩌면 둘의 주위를 끝없이 동그랗게 도는 카메라는 두 사람이 벽을 깨고 나오기보다는 둘만의 세계로 침잠할 것을 암시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톨러는 혼자 침잠하는 사람이었다면, 메리와 함께 침잠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기를 쓰고 자살 테러를 시도했을 뿐, 메리를 제외한 그 어떤 사람과도 제대로 된 교류를 시도하지 않는 톨러의 모습에서 그런 부정적인 가능성도 읽힌다.
무엇이 옳은 해석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작품은 감독의 손을 떠난 순간, 관객의 것이니 틀린 해석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을 어떻게 읽어내든 이 작품의 특장점은 관조하는 카메라가 만드는 이미지와 움직이는 카메라가 만드는 이미지의 대비는 주인공의 심경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카메라가 만드는 이미지가 눈과 정신을 피로케할 때 만난 이 작품은 반갑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