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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윤슬 Sep 08. 2020

[윤슬 날적이] 해외 원서를 고르는 재미

넓은 바다에서 맛있는 물고기 찾기

학창시절, 영어 선생님께서는 아주 쉬운 영어 동화책부터 차근차근 원서 읽기에 습관을 들여 보라고 권하신 적이 있다.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되고 우리와 다른 문화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고 말이다. 

지금도 학창시절에 사두고 챕터 한 장도 못 넘긴 채 그냥 덮어두었던 원서가 몇 권 있다. 지금 출판사에서 책을 기획하는 일을 하며 아직 한국에 출간되지 않은 책을 골라내는 작업을 할 때면 ‘학교 다닐 때부터 원서를 더 많이 읽어 둘 걸’하는 아쉬움이 조금 생기도 한다.      


‘책방윤슬’에서 첫 책을 출간하면서 누군가가 ‘왜 첫 책을 번역서로 선택했나요?’라고 물어올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해외에는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좋은 책들이 많아요. 다른 나라 사람들만 그런 좋은 책을 읽는다면 좀 아쉽잖아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해외 원서를 번역하여 한국어판으로 출간하는 것이 얼마나 재밌는데요!” 덧붙인 말은 물론 지극히 출판사 입장에서의 대답이다. 


실제로 해외 원서를 고르는 재미는 넓은 바다에서 맛있는 물고기를 찾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며, 또 한편으로는 세계 출판 시장에 나온 책들의 종류를 보고 정말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넓은 바다에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있을까? 수천 마리? 수만 마리? 진짜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맛있는’ 물고기를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독자들의 입맛에 딱 맞는 맛있는 물고기!   

   

사실 아마존이나 저작권사에서 보내주는 가이드북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고 재밌어 보이는 책들도 많다. 하지만 내 개인 입맛이 아니라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예로, 희귀 유전병에 걸린 한 소년이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내용의 미국 소설이 있었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이 한국에도 드물지 않게 있고, 또 내용이 교훈적이라 한국어판으로 출간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하지만 자칫 독자의 타깃층이 제한적일 수 있고, 이 내용이 실화이지만 진부한 스토리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일단 계약까지는 보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책도 적절한 시기가 찾아온다면 다시 한 번 검토해 볼 예정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예로, 전쟁 같은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열심히 살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에세이집이었다. 제목이 끌리고, 대체 이 작가는 왜 열심히 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걸까 궁금해 하며 리뷰 원고를 검토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지금 출판계에 많이 출간되어 있는, 퇴사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들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많은 책이 나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런 류의 책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지만, 이 책은 해외 원서이기에 이 책이 번역되어 한국어로 나온다면 한국 독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다독여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패스하기로 했다.   


지금도 원서를 고를 때 늘 설렌다. 어느 날은 시간가는 줄 모른다. 이런 책이 한국어판으로 나오면 어떨까를 생각하면서 이리저리 생각하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난다. 이렇게 검토하는 시간이 쌓이다 보면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한국 독자들의 입맛에 딱 맞는 물고기를 성공적으로 들어 올리는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처음이라는 기념적인 의미를 가진 첫 책으로 어떤 원서를 골라야 할까 고민했을 때, 원래는 소설도 생각했었고, 에세이집도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첫 책으로 고른 책은 자기계발서인 <Limitless>였다. 저작권사에서 제공해 준 리뷰 원고를 살펴봤을 때 큰 기대 없이 서문부터 보게 되었다. 점차 이 책을 검토하면서 이 책의 저자가 “자기계발서로는 진짜 ‘자기’를 발전시킬 수는 없어! 지금부터 내가 자기계발서 없이도 너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줄게!”하고 말하는 듯했다. 사실 조금 웃겼다! 자기도 자기계발서이면서 이런 느낌이 들게 하다니. 하지만 이런 점이 어쩌면 한국 독자와 더 잘 맞지 않을까 싶었다. 서점에 가면 자기계발서 코너에 빽빽하게 꽂힌, 그리고 매일 수백 권씩 나오는 신간 중에 자기계발서가 그렇게 많은데, 정작 자기를 계발할 수 있는 책은 몇 권이나 될까? 


지인 중에는 “난 절대 자기계발서는 안 읽어! 내 다리가 가려운데, 남의 다리 긁는 느낌이야. 읽을 땐 속이 시원하고 나도 다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막상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길을 잃게 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은 이런 사람에게 꼭 필요한 자기계발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튼 그렇게 많은 검토 끝에 <Limitless>를 계약하게 되었다. 

현재 서점에서 팔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리미트리스>가 한국 독자들에게 맛있는 물고기가 되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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