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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Feb 02. 2023

욕망이 한 일

타인의 욕망이 아닌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사는 법

욕망’ 이야기는 늘 재밌다. 정확히 말하면 규범과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 이야기.


안정된 가정이라는 빛의 세계에 살던 『데미안』 속 싱클레어는 잘 보이고 싶은 치기로 크로머가 있는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이며 괴로워지고, 대의명분을 갖고 ‘색’의 세계로 뛰어든 ‘계’의 인간 탕웨이는 양조위를 향한 사랑 앞에서 처절하게 고민하며, ‘성(聖)’의 화신인 나르치스와 대비된 골드문트는 ‘속(俗)’을 따라 수도원을 탈출해 예술가가 된다.


빛과 어둠, 색과 계, 지와 사랑. 그 외에도 수많은 예술작품을 낳은 사회화된 인간의 욕망. 그것은 필연적 번뇌의 시작이다.




인간이 바람직한 행동만 한다면 세상에 종교도 예술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 기독교에서는 이브와 사과로 발현된 욕망을 인간의 원죄로, 불교에서는 괴로움의 근원으로 본다. 그러나 『가치 있는 삶』의 저자 마리 루티는 교리나 자기 계발 논리, 금욕주의에 동의하지 않으며 “욕망을 기질로 인정할 것”을 주장한다. 이 책의 원제가 <The Call of Character>인 이유다. 직역하면 ‘기질의 부름’ 정도 되겠다.



욕망이 대체 ‘가치 있는 삶’과 무슨 관계인가.


마리 루티는 말한다. ‘결핍’에서 시작된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며 세상에 완전히 같은 욕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욕망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이 ‘타인의 욕망이 아닌 스스로가 원하는 삶’의 시작이다.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에서 수도원장으로서 존경받는 나르치스는 아주 이상적이다. 그러나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골드문트도 나름 행복하고 가치있는 삶을 살았을 것을 우리은 안다. 스스로의 선택에 가끔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게 자신의 기질인 것을 어쩌겠는가.




모두가 아는 이효리 이야기를 해 볼까. 1세대 아이돌이었던 그녀는 돌연 이상순과 결혼해 제주로 떠난다. 화려함 뒤에서 사실 진짜 자아는 괴로웠다며. 대중도 이제는 그 진정성과 매력을 인정한다. 원하는 삶을 찾은 그녀는 이제부터 마냥 행복할까. 때때로 잊힐까 두려울 것이며 그 또한 고통일 것이다. 다만 요가 수련으로 아름다운 매일을 가꿔갈 것이고 차를 마시며 스스로의 선택에 만족하기도 하겠지. 잘은 모르지만 말이다.


나다운 삶”은 사실 흔해서 별 감흥이 없다. 그러나 내 일이라 생각하면 얘기가 다르다. 내 인생의 화두가 사랑이긴 하지만 생계형 워킹맘으로서 사랑 타령을 하며 철학책을 붙들고 있는 게 최선은 아닐 것이다. ‘엄마표 영어 비법’ 카드 뉴스 1일 1 피드로 인스타그램을 키우고 ‘외고 나온 영어 강사 엄마 추천 영어 그림책’ 같은 썸네일로 유튜브를 시작하고 소위 ‘온라인 건물주’를 목표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아이 둘 뒷바라지하고도 길고 긴 노후를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쓰고 보니 와 정말 그래야겠.. 지만, 현실은 잠을 줄여가며 인스타그램에 누가 읽을까 싶은 긴 글을 설레며 쓰고 있는 중이다. 하 눈물이.. 그러나 이 또한 내 결핍과 욕망의 발로인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마리 루티는 결핍이 이끄는 기질을 인정하라면서도 ‘절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욕망은 사회 안에서 ‘잘’ 발현돼야 한다는 것.


인생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미셸 윌리엄스)는 결혼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이웃집 남자를 만난다. 중간에 아름다운 개연성이 있기는 하나 한마디로 그렇다. 한때 마고에 깊게 감정 이입했던 결혼 N년차 여성은 언젠가 작가 이봄의 책 <영화 여자를 말하다>를 읽고 깨달았다. 마고의 결핍은 관계가 아니라 글쓰기로 채웠어야 한다는 것을. 고뇌하는 인간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일품인 영화 『색, 계』 이야기는 아쉽지만 공간 부족으로 생략..


여튼, 그것이 마리 루티가 말하는 “결핍이 창조적 삶의 원천”인 이유다.



알랭 드 보통도 말했듯 인간은 욕망하는 한 불안하다. 요즘 말로 하면 ‘지금 힘들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정도 될까, 결핍, 욕망, 불안마저 인정하고 모든 열과 성을 바치는 삶, 그것은 ‘고통이 삶을 의미 있게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이를 위해 문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 정신분석학을 섭렵한 저자가 니체, 아렌트, 라캉, 아도르노 등 묵직한 철학자들의 이론을 ‘비교적’ 쉽게 풀어쓴 것이 이 책 『가치 있는 삶』이다. (방점은 ‘비교적’에 있는데 이따금 혼미해지는 정신줄을 꼭 잡고 끝까지 읽고 나면 묘하게 차오르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진짜임..)



지금 확고한 목적의식을 갖고 자신과 주변을 사랑하며 활기차게 살고 계시다면 이 책을 권해드리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은 실존이나 삶의 의미 따위를 묻지 않으니까. 불행한 사람을 위한 책이라는 뜻도 물론 아니다. 자본주의 시대의 현대인에게 기대되는 것은 ‘사색’보다 ‘생산성’이며, 속세의 중심에 있는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한편 시간 낭비 아닌가 고민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 결핍과 욕망 때문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됐다. 내가 늘 경쟁과 불안을 교묘히 피하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가치 있는 삶을 정의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다만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삶의 혼란을 피하는 능력이 아니라 혼란에 맞설 수 있는 능력”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저자는 쉽게 썼다고 주장하지만 읽음이 짧은 독자에겐 어려운 책이었는데, 그것은 아마 인생이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말대로 인생에 정답은 없으며 다만 선택한 길을 정답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우리에겐 그럴 능력이 충분하다. 그것이 당신의 진정한 욕망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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