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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Feb 23. 2024

확장되는 잔물결 속 우리는 서로에게 속해있으니

<불안을 이기는 철학><우리가 작별인사를 할 때마다>

마치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책을 먹어치우고, 아니 읽어치우고 있다. 다음 주는 명절 그다음 주는 가족여행 그리고 3월. 아이의 초등 입학과 많은 것들의 시작. 읽기가 사치가 될지도 모를 가까운 미래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마음이랄까. 덕분에 어느 때보다 몰입도는 최상이다. 하, 이 집중력으로 공부를 했으면..


다정한 책생활 4기가 마무리됐다. 연말부터 두 권의 책을 스물다섯 분의 다정한 책 친구들과 함께 읽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브리짓 딜레이니의 《불안을 이기는 철학》.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두 권 다 몹시 좋았다. 특히 불안을 이기는 철학.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의 마음 수양법이라는 스토아 철학에 늘 관심 있었지만 꼼꼼히 정리한 적은 없었는데 정말 읽기를 잘했다.


“회개한 사람이 교회 뒷문으로 슬그머니 들어오거나 운동에 소홀했다가 말랑거리는 근육을 가지고 헬스장으로 돌아오는 사람처럼, 스토아 철학이란 몇 번이고 다시 실천해야겠다고 결심해야 하는 철학임을 알게 됐다. 사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_《불안을 이기는 철학》


세네카, 아우렐리우스, 에픽테토스 등 스토아철학자들의 이성적 잠언들을 단순히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 비슷한 연령대 성인 여성의 스토아 철학입문기라는 점이 더 친근했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성품과 반응, 타인을 대하는 태도뿐. 통제 테스트, 선호하는 무심, 행복보다 평온을 선택할 것. 평온은 행복보다 덜 들뜨지만 일정하게 안정감과 만족감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나의 아저씨 속 동훈 대사도 떠오르고. 지금 적용 가능한 실천적 철학이라는 점, 잠시 소원해졌다가도 언제고 되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 같은 문장들의 존재가 작지만 큰 위안이 됐다.


책 이제 그만 사겠다고 허언.. 장담한 지 일주일이 되었고 두 권의 책을 샀다.


마거릿 렌클의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리디아 데이비스 《형식과 영향력》. 에세이와 글쓰기 가이드. 알라딘 SLX로 책 두 권을 받아 들고 육아 퇴근한 밤, 달이 예뻤고 아무래도 설레서 이건 사랑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매주 수요일 빨간 책방을 기다리던 그 시절 열혈 청취자로서 이동진 책 추천을 지나칠 수 없었다. 제목마저 아름다운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이 책을 두고 그는 문장이 ‘슬픈 빛’을 띠고 있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다. 다만 내가 눈물이 났던 대목은 작가소개였다. 왜였을까. 영어권에서 다시 태어나도 이런 문장을 쓸 수 없을 거라는 사실에 가볍게 절망, 이 아름다운 글들의 몸체가 덴클의 첫 책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했기 때문이 아닐까.


절망 속에서도 봄의 빛은 반짝이고 심지도 않은 잡초는 꿋꿋하게 자라나며 둥지 꼭대기에서 수컷 파랑새는 알을 낳는 암컷 파랑새를 보호한다. 렌클은 되뇐다. 알이 되어라. 잡초가 되어라. 죽음도 인생의 과제일 뿐이라는 가르침, 자연의 경이로움은 스토아 철학의 평온예찬을 닮았다. 치열하게 먹고 먹히면서도 삶은 전과 다름없이 계속되고 밖으로 밖으로 확장되는 잔물결 속 우리는 서로에게 속해있으며 그것이 살며 사랑해야 할 단 하나의 이유라는 것.


탄생과 죽음이 공평하게 존중받는 곳, 야생의 지혜와 삶으로 쓴 문장들, 첫 책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깊이, 문학적이고 사려 깊은 사유. 하나하나 아름다워 호기롭게 원서로 읽고 싶은 충동, 읽기를 즐기는 이와 호들갑스럽게 나누고 싶은 설렘, 하릴없이 지난 사랑과 상실의 기억으로 애틋해졌던 2월의 시작.


“긴 여름날이 아름다운 햇빛을 감아올리며 끝나가고 있다. 하지만 밤에 대해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다. 죽음을 향해 가는 삶에 대해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다. 어두운 그 무엇에 대해서도 두려워할 게 없다. 아주 잠깐 동안 나무 그늘 아래 선다. 그러면 열두 개의 낙하물이 당신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_《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긴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


@luv_minyu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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