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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Mar 09. 2024

우리는 문장을 읽지만, 그 문장을 살아낸다

<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삶은 휘청거리고 삐걱거리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테고, 방향을 스스로 잡는 편이 낫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시 말해 내 삶은 여러 챕터로 되어 있고, 현재의 챕터를 언제라도 끝낼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삶의 일부로서의 상실을 겸허히 수용하고 예술로 치유해가는 담담한 희망의 기록. 마지막 장은 특히 좋았다. 개인적인 애도 기간이라 더욱. 애정을 쏟던 북스타그램 계정을 해킹으로 잃고 멀쩡하다도 별안간 마음이 내려앉는다.


언제까지 애도할 수 없다는 것도, 새로운 챕터를 시작해야 하는 것도 알지만.


사랑을 시작하기에는 분주한 날들의 연속이다. 아이의 초등 입학, 이른 하교, 수십 개의 알림에 치이며 아이의 오후 스케쥴을 고심해 짜고 나도 새로운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도 아닌데 새 학기는 매번 긴장되고.


그나마 위안이 되는 일은 연말에 시작한 달리기다. 잡생각을 덜어주는 아침 루틴은 오늘로 67일째. 가끔 러너스하이가 있지만 달리기가 너무 좋아서는 당연히 아니고, 귀찮고 힘든데 그냥 집착하는 중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으니까.


틈틈이 호흡을 고른다. 환희지 명상 안내자에게 배운 기술인데 하루 중 마음이 바쁘게 올라올 때마다 길게 호흡하면 평온 유지에 도움이 된다. 후-하-


최고의 신경 안정제는 바쁘게 사는 것이라던데, 빈틈없이 분주한 3월은 하늘의 도우심인가 위안해보지만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다.


생계와 육아 사이, 가능한 많은 위로의 문장을 읽으려고 한다. 그 문장을 살아내기 바라며. 좋은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마치 3년간 절절히 사랑한 연인과 헤어진 기분이다. 이별 이주 차..이참에 나도 미술관 경비원으로 이직을..


결실 없는 사랑은 쓸모가 없나.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랑은 과정이 전부다. 치열하게 사랑한 시간은 내가 되어 남으니까.


삶은 언제나처럼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고 영원한 사랑이 없듯 상실의 고통도 곧 잊히겠지만, 패트릭 브링리가 그랬듯 애도의 끝을 애도해야 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24. 03.08.

온라인 독서모임 다정한 책생활5기

첫 책 완독 기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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