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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Nov 27. 2020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는 글을 쓴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책 표지 하단 캡션중,

“잃을것이 아무것도 없을때 우리는 글을 쓴다” 무한대 공감보다는 엇? 뭐지 하고 한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한줄의 강력한 멘트는 내용은 고사하고 일단 집어 들었다. (역시 궁금하게 만들면 밀당이 된다는 정설이 여기서도 통한다.)


  장문의 글을 쓰는것도 즐기지만 메모를 많이 하는데 특별한게 이유가 아닌 습관에서 비롯 되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보고 경험하고 느끼고 인간이 갖는 여러 형태의 감정 동선을 오감을 적셔 감상적으로 때로는 분노하듯 비평하고, 가끔은 논술마냥 논리적으로 끄적여 놓을때가 있는데 시간이 꽤 흐른뒤 우연히 발견하거나 찾아서 볼때 종종 놀라고는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를 넘어 소설 알레프 속 내용처럼 시간을 점프해 순식간에 그때 당시의 나와 마주하게 되는 마법을 느끼곤 한다. 시간이란, 자신에게 최적화된 기억으로 미화 시키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경험과 감정의 글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서도 그대로 박제되어 있다. 오래전 글 속에, 내가 이런 문장을 구사했다니 하며 자뻑 감탄할 지경도 있으니..; 지금 쓰라하면 절대 그런 문장과 감성은 떠오르지 않고 어설프기 그지 없을텐데 타이밍에 맞아 떨어진 상황과 감정은 글에도 고스란히 묻어나 반짝 필력을 기어코 발산 한다. 메모 글들이 모여 모여 하나의 나의 과거가 되고 내 개인의 역사가 될테니 무언가를 쓰고 남긴다는것은 꽤나 좋은 습관이라 여겨진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는 꾸덕하다 못해 질질 끄는(내가 전문) 설명형 문장속 눈의 피로감을 주는 책이 아닌, 간결하면서 농축된 진한 풍미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책이다. 여성 25인의 강인했던 삶의 역정과 도전에 대비되는 감은 있지만 말이다.

우리가 접하는 에세이류 들은 주제에 비해 선을 넘어 심오하거나 어디선가 본듯한 문장과 단어 조합의 배열속 본인도 모르게 카피를 거듭한 카피글들 (사실 우리네 삶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인간이 갖는 감정들은 크게 광범위 하지않고 사용되는 언어는 한정적 이기에 풀어내는 방식과 표현의 차이는 있어도 문장들이 비슷한 면이 있다는건 당연한 이치이기도한것 같다.) 혹은 과하게 신변잡기 경험담을 극대화 시켜 구구절절 늘어놓는 우를 범하는 개개인 에세이 홍수 시대이다. 이책의 장점은 대단한 문호는 아니지만, 대단한 문호들을 다루며 또 아쉬운듯 싶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고 신맛은 제거된 진한 블랙 커피한잔 마시듯  단단한 메세지는 꼬박 전해주고 있으니 그게 또 좋왔다.

 

 청소년 시기에 펄벅의 ‘대지’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헤세의 ‘데미안’ 애정했던 에밀리 브론테 ‘ 폭풍의 언덕, 제인에어’  빅토르 위고 ‘노트르담 드 파리, 레미제라블’ 등등의 천재적인 문인들의 표현과 서술의 문장력은 날을 새며 책속에 파묻이게도 했던때가 있는데 그 나이 였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책도 시간의 흐름 따라 궁합이 있다고 느낄때가 있는데 가끔은 알맹이만 쏙 빼먹듯 센스있는 책도 필요하다. 마치 어릴때 시골 할머니댁에 놀러가면 제철맞은 튼실한 밤을 삶아 일일히 손수 까발라 샛노란 알맹이 밤만 한접시 내어 주시면 쏙쏙 먹기만 했듯이 말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위대한 사람은 내 삶의 한축이 혹은 내 자신을 기록한 나의 역사가 누군가 단 한사람에게라도 긍정적, 한발 더 욕심내 희망적 영향을 줄수 있는 사람 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잠시나마 여인들의 치열했고 열정적이었던 그 당시 정곡의 삶속에 들어가볼 수 있어 좋왔다. 말보다 더 강력한, 활자화 된 글의 힘을 몸소 보여준 그녀들의 위대했던 노고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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