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루머가 가출한 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바쁘게 학교에 루머의 장기무단결석 사실을 통보하고 별도의 가정방문 및 상담 요청을 신청한다. 아직까지 루머의 행방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루머는 학교에 늘 말없이 조용히 왔다가는 그런 아이였기 때문에 주변의 친구들도 루머가 어디로 갔는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집에 전화를 해 봐도 이상하게 루머의 행방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하루 이틀 루머의 존재를 묻다가 일상의 흐름 속에 묻혀 더는 그의 안부를 묻지 않는다. 텅 빈 책상의 한 공간이 어딘지 모를 깊은 공허함 속에 묻혀가지만 교실속 아이들은 그의 사라짐과 상관없이 대학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어지러운 항해를 지속하고 있다. 늘 그렇듯 관계의 연결성에 깊이 들어와 있지 않은 존재의 망각은 쉽게 이루어진다.
루머는 왜 가출을 했을까? 루머는 늘 학교에 등교하면 힘없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거나 책을 읽곤 했다. 그리고 좀처럼 다른 친구들과 장난을 치거나 대화를 나누는 행동 없이 그의 작은 공간 안에서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가곤 했다. 상담 할 때도 루머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이런저런 질문에도 짧막한 답변 몇 마디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곤 했다. 입시 위주의 고등학교 담임에 익숙해진 나로선, 이러한 루머의 내면 세계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그와 상담을 하기 보다는 다른 아이들의 점수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대학이 어디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또한, 루머는 사람들의 시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수업시간에도 혹시나 눈빛이 마주치면 바로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리고 나서는 볼펜 끝머리로 책상 위에 무언가를 그리거나 책을 읽곤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갈수록 루머는 더욱더 말이 없어졌고, 수업시간에 더 침묵하거나 고개를 들지 않았다.
루머는 어디로 간 것일까?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하며 루머를 향한 복잡한 감정을 지우지 못한 채 루머의 행방을 찾아 떠나보기로 마음을 정해 본다. 설령 이러한 발걸음이 교사로서 자존감과 책임을 다하기 위한 몸짓일지라도 그 행동이 루머에게 적어도 상처가 아닌, 잃어버린 관계의 소중함을 깨우쳐 줄 수 있다면 그를 향한 발걸음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 학교도 내일부터 방학에 들어가니, 그를 찾는 발걸음도 비교적 자유롭게 다가온다.
어디서부터 루머의 행방을 찾아야 할까? 일단 루머의 유일한 보호자인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는 게 좋을까? 그러나 아버지는 루머의 존재나 행방에 대해 그렇게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얼마 전 루머가 가출하던 날, 아버지에게 가출 사실을 알렸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후, 더 이상 아버지에게 루머에 대한 고민을 말할 수가 없었다. 자식이 가출을 했다는데,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어떻게 담임의 전화를 그렇게 끊을 수가 있을까라는 실망은 그 후 좀처럼 사그라들지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아버지는 루머의 행방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루머의 가족사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에 대해서 루머에게 구체적으로 묻거나 상담한 적은 없다. 다만, 그는 현재 어머니 없이 아버지하고 단 둘이 살고 있다. 루머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초등학교때 집을 나갔다고 한다. 왜 어머니가 집을 나갔고 그의 마음에 어떠한 상처와 아픔이 남아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못했다. 어쩌면 그건 가장 감추고 싶은 비밀을 상담이라는 목적하에 끄집어 내는 또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문계 고등학교의 현실 속에서 대학입시가 아닌 학생들 개인의 인성상담과 고민상담 등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각 대학의 정보를 확인하고, 아이들의 내신을 체크하면서 한 명 한 명에게 해당하는 대학과 학과를 알려주고 그에 맞게 얼마만큼 더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모든 지도와 관심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루머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걷다.
"아버님, 저 루머 담임인데요. 혹시 루머한테 연락은 왔나요?"
"그 자식은, 또, 왜, 찾아요? 지가 가봤자, 어디를 갔겠어요. 나둬요. 지 알아서 하라고. 지가, 뭐, 어떻게, 하겠어요? 지가 나를 무시하는 데, 내 말을 듣기나 하겠어요? 지, 알아서 살라고 해요."
"그래도 일단 루머를 찾아야죠?"
"찾지, 마세요. 찾으면, 뭐해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갸, 들어오면 또 나가요. 찾지 마요."
"아버지, 그래도 자식은 자식이잖아요. 아버지 아니면 누가 루머를 챙기겠어요."
"띠, 띠, 띠....."
또다시 통화가 일방적으로 끊긴다. 전화 통화 속에서 보여준 아버지의 음성은 톤이 낮은 리듬으로 자주 끊김과 이어짐이 반복되었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반 즈음 술에 취한 정신과 짧게 끊어지는 몇 마디 속에는 대화를 통해 루머의 행방에 대해 같이 공유하며 이해하고자 했던 여백의 공간이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말과 말 사이에는 비교적 긴 쉼표와 마침표가 이어지면서 부족한 자신의 모습과 엇나가는 아들에 대한 미움이 진흙탕처럼 물컹하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정말 루머의 행방이 궁금하지 않은걸까? 그러면 담임으로서 내가 루머를 찾는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아버지조차 찾지를 않는데, 담임이라는 명목으로 그에게 다가간다해도 이 잘못된 방황의 길이 풀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