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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과 도박

6 Sep 2025

by 게으른 곰

돈을 잃었다. 크다면 큰돈을, 작다면 작은 돈을 잃었다. 욕심이 화를 불러왔다.


주식 시장에서 욕심은 절대 금물이다. 다행인 점은 나는 경제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었다. 주식도, 코인도,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다른 말로, 나는 돈 버는데 재능이 없다는 말이다.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회사를 다니는 것이다. 회사나 공공 기업, 가게 직원 등 내가 주도하지 않고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일 말이다. 성실함과 책임감 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 완벽히 수행해 낸다.

나는 어려서부터 숫자에 약했다. 수학과 물리는 학창 시절 내가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었다. 놀라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과를 선택했고 그래서 내 성적은 늘 안 좋았다. 내가 이과를 선택한 이유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친한 친구가 이과를 간다고 했었던 것 같다. 인생을 어쩜 이렇게 무계획으로 살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한 점은 그래서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20대엔 회사를 다니며 돈을 벌었다. 그 덕에 여차 저차 먹고살 수 있었다. 그때는 당연한 일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일 외에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좁고 좁았던 내 세상 안에서 나름 즐겁게 살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첫 사업을 시작했다. 봉제 인형을 만들 수 있는 키트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일이었다. 친구와 함께 운영을 했는데, 친구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주된 일을 맡아했다. 처음엔 집에서 방 하나를 작업실로 사용하다가 나중엔 사무실을 얻었다. 많은 돈을 벌진 못했지만 운영이 힘들지도 않았다.


어떻게 사업을 접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출이 떨어져 힘든 이유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을지도, 큰돈이 벌리지 않아 재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갑자기 나는 그 일을 그만뒀다. 사무실을 빼면서 남은 재료들은 친구에게 모두 줘버렸다. 손해가 났는지, 이익이 남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내 첫 사업은 끝났다.


그 후에 나는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내 인생에서 꾸준히 계속 이어오고 있는 일 하나는 그림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좋아한다. 세상을 이 색 저 색으로 표현하는 일이 좋았다. 내 감정에 따라 그림도 달라지는 게 신기했다. 어느 날은 작은 그림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림은 내 평생 가장 나와 잘 어울리는 일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그림을 그리는 일은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내가 뉴질랜드로 오기 전까지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한 일 중 한 가지다. 성과도 여럿 만들어냈다. 그리고 뉴질랜드로 오면서 그 행진은 멈췄다.


뉴질랜드는, 아름다운 나라였지만 반면에 낯선 나라이기도했다. 친구도 없고 작업실도 없고 남편도 없었으니, 내가 힘들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묵묵히 버티는 느낌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니 그제야 나는 무언가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영어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고 친구도 몇 사귀었다. 영어는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 걸림돌이지만 나는 내 영어를 받아들였다. 내가 생각하는 영어 실력과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영어 실력은 차이가 컸다. 처음엔 이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힘들었다. 내 영어가 이렇게 형편없었다니. 사람은 자기 자신을 높게 평가하려는 심리가 있는 게 틀림없다. 메타 인지가 높아야 공부를 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영어에 있어 나의 메타 인지는 형편없었던 것이다. 더듬더듬 천천히 다시 실력을 쌓고 있으니, 또 정확한 내 실력을 알게 됐으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심심하고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이어지던 어느 날,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주식을 한번 해볼까?


사람이 안 하던 일을 하는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요즘 모든 일이 별 탈 없이 흘러가는 것에 지루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최고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얼마 전 생일에 받은 생일 용돈과 비상금 몇백만 원이 통장에 있었다. 그냥 가지고 있느니 투자로 돈을 불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식을 안 해봤으니 어떤 종목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 나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다. 시작부터 잘못됐다.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없으면 적어도 크고 안정적인 회사에 투자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테슬라를 샀다. 횡보가 꽤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어 조만간 상승할 것처럼 보였다. 그래프를 볼 줄 모르지만 왠지 느낌이 그랬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소셜 미디어를 보다가 어떤 사람이 주식 종목을 추천해 놓은 글을 봤다. 이 주식은 오늘 급상승할 예정이라는 말과 함께 이런저런 설명을 써놓은 글이었다. 나는 왜 욕심이 났을까. 전기 주전자를 바꾸고 싶지만 200달러 정도의 가격이라 망설이고 있었던 것에 비해 투자 결정은 숨 쉬듯 쉽게 내렸다.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욕심이 모든 생각을 마비시켰다. 가격이 점점 내려가길래 전에 샀던 테슬라 주식을 팔아 물타기를 했다. 그리고 주식 본 장이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돈을 잃었다. 돈을 잃었다기보다 돈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주식 시장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게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중에 남편은 내가 작전주에 휘말린 것이라고 했다.


글을 쓰는 지금, 창피함과 후회가 다시 고개를 든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도박과 다른 게 없는 일이었다. 가끔은 나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를 때가 있다. 의심을 하지 않고 두 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정신이 멍하다가 후회가 되다가 화가 나다가 이내 공허함이 몰려왔다.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잠을 잤고 4시간 만에 눈을 떴다. 영어 수업이 있는 날 아침이다. 영어 수업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기분이 울적했다. 잠들기 전, 아이들 점심을 학교 매점에 주문해 놨었다. 도시락을 쌀 마음도 들지 않을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간단한 아침을 차려 먹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커피를 내려 잠깐 책상에 앉았다. 세수도 안 하고 양치도 안 한 상태로 멍하게 은행 계좌를 다시 열어봤다. 꿈같이 느껴졌던 일은 현실이었다. 계좌를 확인하고 휴대폰을 내려놨다. 갑자기 영어 수업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나는 그 일 때문에 오늘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할 수 없다. 내가 바보 같았다. 다시는 이러지 말자.

영어 수업은 즐거웠고 나는 친구들에게 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바보 같았던 일을 말해줬다. 다들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웃으며 이젠 괜찮다 말했다.

앞을 보자. 충분한 반성이면 된다. 미련을 두지 말자. 그리고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수업을 마치고 코스트코에서 장을 본 뒤 집으로 돌아와 와인을 땄다. 2주 만에 돌아온 와인 데이다. 지난주엔 머리가 아파 와인을 마시지 못했다. 그래서, 더 신나게 더 즐겁게 혼자만의 와인 데이를 즐겼다. 영화도 보고,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수다도 떨었다. 주식 얘기는 하지 않았다. 나중에 한국에 가면 들려줘야지. 나를 구박할 친구들 얼굴이 상상돼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날 잠들기 전 새벽, 나는 엔비디아 주식을 2주 샀다. 어제 일만 아니었으면 20주도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잠깐 마음이 쓰렸다.

나는 해야 할 공부가 하나 늘었다. 경제 공부를 해야겠다. 나이가 들면서 관심 없던 분야에 관심이 생기는 현상은 흥미롭다. 평생 주식에 관심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재미도 없고 어렵게 느껴졌던 일에 흥미가 생기다니. 나이가 들면서 더 겸손해져야 되는 이유는 이런 것들이다. 내가 확신했던 세상은 사는 동안 계속 무너지고, 삶의 모습은 계속 바뀐다. 그러면서 마음도 같이 넓어진다. 나는 그렇게 나이가 들고 있다.


어쨌든, 엔비디아! 꾸준히 힘내주길 바란다. 엔비디아 2주는 오랫동안 팔지 않고 가지고 있을 생각이다. 주식 초보에서 중수가 될 때까지, 적어도 그때까지는 힘내주길.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가끔 열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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