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도 출산도 처음인 초보 엄마의 난중일기
아이 낳으면
일 하시기 힘드실 수도 있어요.
출판사 미팅 때 기획팀 대리님이 지나가는 식으로 하신 우려의 말. 그분의 걱정도 이해가 된다. 기획 출판을 염두에 두고 작가를 만났는데 배가 산처럼 부른 산모가 떡 하고 나왔으니. 그것도 처음 책을 내는 예비 작가.
얼굴부터 손 끝까지 퉁퉁 부은 산모의 파이팅이 넘치는 각오 한 마디.
"대리님, 제가 야근으로 단련된 몸이라 원고 빨리 쓸 수 있어요."
"네, 걱정 안 해요. 편집팀에 작가님 상황은 전달해 놓을게요."
이미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것만으로 감지덕지인 상황. 출판 시장은 신인작가에게 까다롭기 그지없다던데 책도 내주고 마케팅도 해주겠다니. 출판사 분들이 천사처럼 보였다. 올해 귀인이 들어온다던데 이분들인가. 한 번에 출판 계약에 성공한 탓인지 그 후 며칠 동안 이유 없는 자신감에 한 껏 고양되어 있었다. 아직도 지나야 할 고비가 많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건데 출산은 물론이오 출간의 과정 또한 뼈를 갈아 넣는 고된 노동이었다.
계약 이후에도 원고를 보강해야 했다. 만삭이었던 나는 한 번에 10분 이상 글을 쓰면 통증이 왔다. 빵빵하게 부른 배 탓에 숨이 막히고 허리가 시큰거렸다. 그리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 도저히 못하겠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남편은 걱정되었는지 내가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방 문을 두드려 상태를 확인했다. 계약을 했으니 물릴 수도 없는 노릇. 원고는 어느 정도 구성을 갖췄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스멀스멀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그 불안은 산부인과 검진 때 더 커졌다.
"혹시 뭐가 잘못되었나요?"
산부인과 담당 선생님이 아무 말씀 없이 한참을 초음파만 보자 성격 급한 남편이 채근했다.
"심각한 건 아닌데요. 아이가 옆으로 누워 있어서..."
"어떡하죠? 아기는 무사한가요??"
엄청난 이야기를 이리 차분하게 말씀하시다니! 내 낯빛은 하얗게 변했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선생님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씀을 이어나갔다.
"상황에 따라 자연 분만 대신 수술을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제왕절개라니... 남편과 내 입에서 깊은 한 숨이 동시에 나왔다. 어쩐지 일이 술술 잘 풀린다 싶었다. 나는 수술을 하루 앞두고 출판사로 메일 한통을 보냈다. 수술하고 2-3일은 즉답이 힘들 수 있으니 급한 연락은 남편 메일로 연락 달라는 내용이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편집팀에서 바로 회신이 왔다.
<선생님, 출간 일정은 언제든지 조정이 가능하니 절대 무리하지 말아 주세요.>
덧붙여 책이 나오는 것보다 당신의 몸이 먼저라고 했다. 당연한 말인데 회사를 그만둔 다음에야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게 되다니... 지난 10년간 회사에서 들었던 이야기와 정반대 되는 말이었다.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회사일에 나를 갈아 넣었을까. 어쩌면 그래서 내 책을 쓰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새벽 5시, 까맣게 잠든 세상을 뚫고 병원에 도착했다. 잠을 통 못 자서 일까. 수술할 때 긴 마취 바늘이 허리에 들어가도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눈을 떠보니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배는 바람 빠진 풍선 같았다. 간호사님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아기는요?" 하고 물었다.
"건강해요. 이따가 만나실 거예요."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이제 숨 좀 고르려나 마음을 놓던 차, 메일을 확인해보니 출판사로부터 교정, 교열이 필요한 원고가 와 있었다. 출간이라는 큰 산이 남아있었다.
누가 2주간의 산후조리를 휴가라 했던가. 예상과 달리, 조리원 생활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식사 시간과 모자 동실 , 가슴 마사지, 전신 마사지 시간, 그리고 수시로 강의 시간이 있었다. 신생아들이 잘 걸리는 병이나 목욕시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시간이다. 청소 시간도 변수였다. 아침 10시마다 각 방 청소를 하면서 시트를 갈고 새 산모복을 가져다주는데 이때 자릴 비워줘야 하니 원고를 쓸 수가 없었다. 이런 식으론 정해진 출간 일정을 못 맞출 터였다.
안 되겠다 싶어 회사 다닐 때처럼 일정표를 짰다. 마사지와 강의 시간을 통합하고 그 외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청소시간에도 글을 쓸 수 있도록 남편에게 부탁해 원고를 제본하기로 했다. 제본은 출판사에서 교정할 때 쓰는 방법으로 모니터로 볼 때보다 더 많은 오탈자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몸이 너무 고될 때는 남편이 대신 오탈자 수정하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한 번은 남편의 한쪽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는 것이다. 거울 좀 보라고 채근하자 남편이 내 얼굴을 보고 정신없이 웃었다. 화장실에 가서 보니 나 또한 두 눈이 토끼눈처럼 빨갛게 변해있었다.
"아이고, 여기서도 일하는 거야? 조리원에선 무조건 쉬어야 해요. 집에 가면 못 쉬어."
매끼 식사를 가져다주시는 여사님께서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회사 일을 하는 걸로 알고 계셨다. 엄청 독한 여자라 생각하셨겠지. 하루는 새벽에 신생아실 선생님이 달려오셨다. 글 쓰는데 정신 팔려 아기가 먹을 모유를 유축하는 걸 잊었던 것이다. 책상 옆에 쌓여있는 제본을 보고 신생아 선생님이 혼내는 어조로 한 마디 하셨다.
"아니! 아기 엄마가 아기부터 챙겨야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죄책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동시에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는 엄마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슬아슬한 저글링을 하며 사는 느낌일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이 직장과 집에서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들보다 한참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수정한 원고는 조리원 퇴소 하루 전 날, 출판사로 보내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8월의 무더운 어느 날, 오랜만에 출판사로부터 메일이 왔다. 나의 첫 책이 출간되었다고. 그리고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내 책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 했다. 남편과 나는 그날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남편이 아이를 봐주는 날, 나는 광화문 교보문고로 달려가 내 책과 함께 기념사진 겸 셀카를 찍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그럼 어떠랴. 이 책은 나의 상장이었다.
모든 첫 시작은 불안하다. 불확실하고 과정이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처음'인 사람에게 필요한 건 '믿음'을 주는 사람들이다. 출산할 때 가장 믿음을 준 사람은 남편이었고 출간할 때 가장 믿음을 준 사람들은 출판사 담당자분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의 첫 출간, 첫 출산도 불안 속에서 치러야 했을 것이다. 출간 이후에 강의 문의가 쇄도했다. 난생처음 강단에 서서 많은 사람 앞에서 강의를 했다. 짜릿한 경험이었다. 게다가 조리원에서 책을 쓴 유니크한 경험은 나만 가질 수 있는 훌륭한 스토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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