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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현 Dec 26. 2022

실존이란, 울리는 천둥을 가만히 느끼는 것

국립현대미술관, 임옥상, <임옥상 : 여기, 일어서는 땅>




<흙의 소리>(2022)


전시정보


전시명ㅣ<임옥상: 여기, 일어서는 땅>

작가ㅣ임옥상

전시기간ㅣ2022-10-21 ~ 2023-03-12

장소ㅣ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관람료ㅣ서울관통합권 4,000원




예측불능과 통제불능은 인간에게 위협인가.


땅을 향해 으름장을 놓듯, 하늘이 공명하는 그 순간 우리는 미물이 되어 속절없이 동요한다. 본래 언어의 성질을 반증하듯, '천둥'으로 명명해둔 그 자연 현상은 늘 천둥 그 이상의 것이 되어 군림한다. 문명이란, 인간의 입장에서 예측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의 것들을 모아 세워놓은 왕국이다. 앞으로 점점 더 인간은 자신들을 요동케 할 것들의 통제권을 손에 쥐려 한다. 허나 매번 다르게 증식하며 도사리는 문명 밖의 힘에 우리는 여전히 온몸이 경직하고, 넘실대는 불규칙의 생동함에 여전히 휩쓸린다.


본질은, 휩쓸리지 않도록 발버둥하는 것에서 기인하는가.


임옥상 작가는 그 의문을 일찍이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들판 저 멀리 보였던 타오르는 불의 무작위한 형상을 잊을 수 없었고, 청년 시절에는 들과 산으로 들어가 직접 자신의 신체로 자연과 접촉하고 호흡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에 물, 불, 흙, 철, 대기 등의 물질적 요소들이 소재로써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다.


특히 흙은 작가 초기 회화에서부터 나오는 핵심 모티브이다. 미술재료용으로 흔히 가공되어 쓰이는 정제된 흙이 아니라, 순수 자연의 흙을 만지며 빚는다. 모든 문명의 태초격 단위인 그 숨쉬는 재료들을 마주하며 작가는 땅의 웅변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고요했다가도 몰아치고, 정의하기 어려운 수많은 빛깔을 띠며 늘 달리 촉감된다. 그렇게 맹렬히 뒤척이는 땅을, 작가는 기어이 미술관에 일으켜 세운다.


나는 감정과 감성이 물질적인 성질을 띤다는 것을 처음으로 분명히 알게 되었고, 온몸으로 그것들의 밀도와 형태뿐만 아니라, 내 의식의 제재를 받지 않는 그들의 독립성과 완벽한 행동의 자유를 느꼈다.

날뛰는 바다, 깎아지른 절벽의 붕괴, 심연, 해조류의 증식. 난 물과 불에 빗댄 비유와 은유의 필연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심지어 가장 닳고 닳은 표현조차도, 어느 날 그 누군가가 실제 겪었던 것이다. 
[아니에르노 '집착(2002)' 중]


<여기, 일어서는 땅>(2022)


본질은, 대체가 불가능하기에 본질이다. 압도적으로 일어선 모양의 저 땅을 그 무엇이 대체하랴. 장단평야 논에서 고스란히 일어선 땅은 배고 남은 볏단의 아래 둥치, 농부와 농기계가 밟고 지나간 자국, 논에 내려앉은 이름 모를 생물들의 흔적, 그리고 여전히 베어 있는 땅 냄새, 숨 냄새를 그대로 담은 채, 자연의 원초성을 대변한다. 작가는 <여기, 일어서는 땅(2022)>으로 이야기 한다. 문명 밖 순수 자연만이, 즉각적이고 예측불가능하다. 원초적인 것만이 생동하여 일어선다. 일어서는 것들만이 대체 불가능하다. 본질은, 바로 자연스러움에 있다.


육체적이고, 사회적인 다른 고통에 비해 내 고통이 비이성적이고 심지어 물의를 일으킨다고 여겨졌더라도, 내게는 그것이 하나의 사치로 여겨졌더라도, 그 고통이 생의 평온하고 유익했던 몇몇 순간보다 더 좋았다. …
드디어 청소년기 이래 시야에서 놓쳐버린 본질적인 것에 몰두하게 된 듯했다. 
[아니에르노 '집착(2002)' 중]


<4.3 레퀴엠>(2018)


우리 내면에도 자연스러운, 맹렬히 뒤척이고 일어서는 원초적 감정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자아의 본질 요소이다. 그러나 자연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온 인간 문명의 건설처럼, 원초적 감정은 즉각적이고 예측불가능하기에 되려 억제해야할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는 순수 감정을 애시당초 배격하여 없는 것처럼 하도록 배운 자아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하여 현대의 우리는 건강히 표현함에 서툴다. 자기 내면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진정한 페이소스(pathos)와 카타르시스를 모른다.


실존이란, 불현듯 굉음을 토하는 하늘의 천둥을 듣고 있는 것이다.


넘실대는 불규칙의 생동함에 올라타는 자만이 인간다울 것이니, 예측과 억제 그 이전에 들여다보아라, 여기, 일어서는 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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