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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선생 Nov 30. 2021

브런치에 글쓰기가 싫어졌다.

브런치 글쓰기 파업 1년을 맞아



"너 요즘 왜 글 안써?”

“나 글 쓰는데? 올해도 문학지에 투고 했어.”

“아니, 브런치 말이야. 가끔 네 글 올라오면 나름 흥미롭게 읽었는데 통 안 쓰더라?”

“아...브런치. 이제  써.”

“왜?”

“거기다 글 쓰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서. 일 년에 한 두 편 써서 문학지에나 내려고.”

“요새 문학지를 누가 보냐. 등단작가들끼리 자기가 쓰고 자기들끼리 돌려 읽는 그들만의 리그지 그게. 카톡 프로필 들여다보다 니가 쓴 음악 얘기 읽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좀 써 .

“참나, 음악도 별로 안 좋아하는 녀석이 갑자기 생떼냐...노동하기 힘들어.”



  얼마 전 친구 녀석과 나눈 대화를 듣기라도 했는지, 요즘 브런치 알람이 요란하게 울린다. 새 글, 새 브런치 등 대부분의 알람을 꺼놓고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지도 거의 1년이 지났지만, 브런치 공지 알람은 그대로 살려두었던 모양이다. 하긴 가끔 "작가님 글을 본지 xxx일이 지났어요 ㅜㅜ" 따위의 오글거리는 멘트들을 봤던게 기억난다. 요즘은 뭘 결산해서 리포트 같은 걸 준다나. 오랜만에 메세지도 받은 김에 친구 녀석의 닦달도 있고 해서 묵혀놨던 글 하나를 완성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몇 년간 가장 뜨거운 사회적 담론인 젠더 문제에 대해 이것저것 느낀 것도 있고, 언젠가 마돈나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던 터라 글감으로 끄적여두었던 파일을 열었다.


  글을 쓰다 10분쯤 지났을까. 지난 1년간 그랬듯 또 나는 브런치 글쓰기가 싫어졌다. 역시나 이 플랫폼은 더 이상 내게 ‘글을 쓰고 싶은 곳’이 아닌 모양이다. 과장을 좀 붙여 말하자면, 언제부턴가 내가 브런치의 이름없는 ‘노동자’중 한 명일 뿐이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이곳이 어떠한 대가없이 작가가 되고 싶은 이들을 위해 출판 플랫폼과 연결하고, 일반인에 소개하는 ‘봉사’를 위한 고마운 플랫폼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 아닌가 싶다.


  브런치는 거대한 <카카오>브랜드의 중요한 콘텐츠 공급소다. 이들이(이들의 자유라곤 하지만 대체 무슨기준, 근거와 자격으로 하나 싶었던)자격 심사까지 하며 작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자들을 가려내는 거다. 브런치가 개인 광고를 붙이는 행위를 허용하지 않고, 브런치 내의 상업 활동을 금하는 이유도 자신들의 브랜드를 통해 나갈 ‘순수한 창작 콘텐츠’의 생산을 위해서다. 이들의 최초의도가 어땠든, 적어도 지금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들이 자의든 타의든 포털사이트 다음, 카카오톡 채널 등 전 국민의 대다수가 이용하는 거대한 플랫폼을 통해 유통될 콘텐츠의 생산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이 플랫폼이 지향하는 일련의 목적에 흔쾌히 자발적 노동참여를 결정이들이 원하는 대가는 각양각색이다. 누군가는 출판사와의 계약을 통해 출간을 원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전문성을 어필해 다른 플랫폼 및 조직과 연결되어 협업을 구상하기도 한다. 물론 자신이 양질의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데 의의를 두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들마저도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글이 보여지길 원하고 그런 글을 쓰기 위해 애쓴다. 이 플랫폼이 요구하는 콘텐츠를 생산해 낼때까지, 노동자들은 자신이 바라는 대가를 얻기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여한. 그렇다면 수십 수백만의 콘텐츠를 무상으로 공급받 이 거대한 플랫폼 자본가는 그저 시스템과 UI나 만들어 제공해 고작 출판 브로커 노릇이나 하는 둥 마는 둥 할 아니라,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노동자 수 만명의 노력에 대한 대가지불을 위해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닌가? 굳이  어떤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메이저 출판사 10군데 모아서 수 개월에 한번 잘 쓰인 글들을 갖다 바쳐 고작 10명의 작가를 배출하는 것(이건 노력이라도 했다), 넷플릭스 시청 경험을 투고 받아 무료 이용권 몇 장 풀겠다는 발상 따위가 이 플랫폼이 거창하게 떠드는 이벤트의 수준이며 노동에 대한 대가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례하.


  플랫폼이 글의 주제와 작가분들의 다양성 확보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긴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를 떠나는 이들 중 많은 작가분들이 일상 에세이 중심의 장르 편향을 이유로 꼽는다. 브런치 이용자들은 생산자이기도 하지만, 곧 브런치에서 생산되는 글의 첫 번째 소비자이기도 하다. 다른 이들의 관심사가 반영된 글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글 구성이나 문법적 기교를 탐닉하기도 한다. 글 쓰는 이들이 죄다 일상에세이를 쓰는 것이야 어떻게 하겠냐마는 적어도 그렇다면 다양한 장르, 분야의 글들을 생산하도록 유도하려는 노력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브런치가 추천하는 글이란게  죄다 ‘일상’, ‘퇴직’, '육아', '먹방'을 다루는 글로 도배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그런 글을 쓰는 것이 나쁘다거나, 폄훼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어떤 때는 그런 글들만 알고리즘이 추천할 것 같아, 그 중 호기심이 가는 글이 있어도 클릭해서 읽기가 겁이 난다. 그뿐이랴, 관심 키워드로 검색을 해도 상관없는 글들이 수두룩하다. “음악”을 키워드로 추천, 정렬된 작가와 글들이 실제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다. 이놈의 알고리즘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건지 '나를 위한 브런치 Pick'이라는데 내가 원하는 분야의 글 한 편이 없을 때가 있다는게 당최 말이 되는건가. 나는 남의 가정사와 식성에 관심이 없다. '우리 엄마', '우리 딸' 이야기를 내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왜 나만 여지껏 모르고 있었냔 말이다. 어쩌다 잘못 클릭 한 번 했다고 해서, 그게 내 취향이라는 알고리즘의 확신에 기가 찰 뿐이다.


  종종 같은 관심분야를 가진 작가분들이 매거진 형식의 도서를 출판하기 위해 브런치 글을 통해 참여자를 모으는 것을 봤다. 참 멋있고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걸 왜 노동자들이 직접 해야 하나. 함께 브런치북을 발간할 수 있는 시스템과 UI가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저들이 저토록 수고로워야 한다는 걸 모르는건지. 실질적으로 여러 관심 분야에 대한 협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들의 협업을 독려하는 이벤트와 시스템 보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는지 모르겠다. 콘텐츠를 공급하는 다음이나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이런 협업과 관련된, 이를테면 매거진 카테고리를 만들어 이들의 협업을 독려하고, 자체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온라인 매거진을 공모받아 이를 채운다면? 이를 통해 독자인 일반인들도 브런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유도함으로써 질적 양적 외연을 넓히는 시도를 해본다면? 이로 인해 더욱 다양한 관심사를 다른 관점에서 다룰 수 있다면? 더 다양한 작가들이 브런치로 유입되어 다채로운 분야의 글들이 생산되지 않겠냔 말이다.


  주저리주저리 떠들다 보니 역설적이지만 그래도 한때 이 플랫폼을 통해 몇 개의 글을 쓰고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느꼈던 이로서, 브런치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남아있어 이러 싶기도 하다. 이미지 과포화에 짓눌려 지독한 피로를 느끼던 SNS를 탈퇴하고 머물 곳 없던 내게 자리를 내주었던 이 텍스트 중심의 플랫폼에 대한 고마움이 여전한 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앞으로도 이곳에 글을 쓰고 싶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 플랫폼이 이런 내 짧은 생각보다 나은 고민과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적어도 브런치에서 생산되는 콘텐츠가 카카오의 세계관을 풍요롭게 만드는 콘텐츠로서 가치가 있다면, 브런치가 심사를 통해 선별한 “글 쓰고 싶어 안달난” 양질의 작가들을 적당한 시스템 안에 모아놓기만 해도 저절로 콘텐츠가 쌓인다는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났으면 싶다. 베스트셀러의 요람으로, 독보적인 글쓰기 플랫폼으로서의 영광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작가라 불리는 노동자뿐만이 아니라 이 거대한 플랫폼 자본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 시대의 진리일테니까.



P.S 비록 이곳에 글을 쓰진 않지만, 가끔 이웃(친구)분들의 좋은 글을 탐독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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