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오래동안 널리 알려진 스테디셀러에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믿고 읽으며 책 선택의 후회를 남기지 않기위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골랐다.
1942년 출간된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78년된 책을 지금 읽으며 어떨까. 이해가 될까 아니며 그 시대의 상황과 배경 그리고 이국적인 작가와 지금의 나에게 처한 상황과 맞을까 그런생각이 들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 지금도 널리 읽히는 책에는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찾아 그리고 그 책의 의미를 나도 뽑아 이해하려고 한다. 지식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얻기를 바라면 읽기 시작했다.
길지 않은 내용지만 쉽지 않은 책이다. 외국이 쓴 책을 한국인이 번역했으니 번역체에서 오는 매끄럽지 않은 느낌들이 불편함을 느낀다. 술술 읽히기를 바란 건 아니지만 길지 않은 내용치고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책의 뒤편에 저자의 해설을 읽어도 쉬운 책은 아니었다. 유명하고 널리 읽혀다고 하는 책이지만 각자가 살아온 환경이나 배경 그리고 나이 등에 따라 달리 이해되면 남과 같은 공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을 덮은 후 유튜브에서 이 책의 리뷰의 동영상을 몇 개 보았다. 내가 이해 하지 못한 부분들을 친절히 알려준다. 심오한 철학적 주제와 카뮈의 살아온 나라와 시대적 배경, 자라온 환경까지 이 책의 뒤 배경을 이해하면 책의 내용을 다시 훑어 본다.
책을 출간한 후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알베르 카뮈에 대해 우호적으로, 그리고 이책의 내용에 대해 두 세 번 읽기를 권한는 유튜버를 보면서 추천할 수 있는 책일 수 도 있지만 이 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책의 주인공 뫼르소는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인다. 총 다섯발을 쏘는데 첫 발은 우발적일 수 있지만 네발을 총은 첫발은 쏜 이후 확인 사살을 한다. 이 부분을 언급하는 사람은 없다. 살인을 미화할 수 있는 부분이다. 통상적인 사회적 인식으로 바라보면 사형이 당연 할 수 있다. 잔인무도 하며 사람을 죽었는데도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아마도 정신감정까지 받아야하는 요즘 말로 하면 소시오패스다. 이 살인 사건과 별개로 엄마가 죽었는데 울지 않았으며 엄마가 죽었는데도 아무렇치 않게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낸다. 물론 이러한 행동과 태도가 사형에 영향을 미친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냥 그렇고 싶은 것 뿐인데 엄마 죽은것과 관련하여 슬프지 않으데 슬픈척하고 엄마가 죽었지만 여자친구와 있고 싶었지만 사회적 통념에 따라 거지 코스프레를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판사와 검사는 그걸 문제 삼는다. 그래서 사형의 판결을 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사형의 판결에 뫼르소는 점점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과 고뇌는 현대 살아가는 이에게 현명한 지혜를 안겨주기에 이 책이 지금도 널리 읽히는 것 같다.
누구나 사형수라는 것, 번역자가 작품의 해설에 나오는 내용이다. 죽을 날이 정해지지 않는 사형수.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이책에서 다시 인지하게 된다. 내일 죽을지 모래 죽을지 모르는 인생, 어쩌면 교통사고로 곧 죽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가. 그래서 현재를 알차게 즐기면서 살고싶은 자에게 “욜로”라는 말이 한 때 유행했고 공감했으며 실천하는 사람들이 매스컴을 많이 탔다. 요즘은 그 유행이 잠잠했지만.
한편으로 언제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대충 미래를 기약없이 베짱이처럼 살 수 도 있지만 인간은 내일 죽을 확률보다 20년,30년 이상 살 확률이 더 높다. 현대의학이 더 발달했고 회사에서는 2년에 한 번씩 고가의 비용으로 내 몸 건강검진을 받게 한다. 이래 저래 죽을 확률보다 살 확률이 높다. 그래서 생명보험, 암보험, 자동차보험, 저축, 적금 등을 통해 앞으로의 살아 갈 준비를 한다. 힘들고 고되더라도 말이다.
카뮈가 전하는 교훈은 우리는 기약없는 사형수지만 현재를 충실히 살라는 뜻일 것이다. 어려운 실존주의와 허무주의라는 철학적 내용을 신경쓰지말고 우리가 지금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이 평범한 일상에 충실하라는 일반적인 명제에 확고한 내 생각을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