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비가 옵니다.
어느덧 2024년도의 반이 지났습니다. 한 달 전과 똑같이 달력 한 장을 넘겼을 뿐인데 종이 한 장의 무게가 그때와는 다릅니다. 마치 한꺼번에 반년을 넘겨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새로 맞이할 반년의 시작! 장화 한 켤레를 챙겨들고 숲길로 향합니다. 풀향기 베인 비에 젖은 도둑놈의지팡이(고삼)와 자귀나무 꽃들은 나비가 날아오길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네요. 며칠째 계속되던 비가 잠시 그친 사이 남방노랑나비, 작은주홍부전나비, 흰점팔랑나비, 흰줄표범나비가 발 빠르게, 아니 날갯짓 빠르게 꽃꿀에 모입니다. 낮게 드리운 구름을 예의 주시하던 남방부전나비 커플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는지 신속하게 짝짓기를 나누고 헤어집니다. 설마 나의 육중한 장화 소리에 놀라 날아간 걸까 싶어 괜히 미안해지네요.
며칠째 내린 비에 흠뻑 젖은 숲길을 장화 발로 걸으려니 걸음걸이가 무거워집니다. 게다가 방목한 말들이 싸질러놓은 똥을 피하느라 걸음걸이는 더디기만 하네요. 숲 바닥만 내려보며 느릿느릿 걸은 덕에 말똥 위에서 하얗게 피어난 흰가루두엄먹물버섯(추정)을 만났습니다. 마치 누가 말똥에다 소금을 뿌려놓은 듯하네요. 질퍽질퍽 냄새가 흥건한 똥에서 어쩜 저리 투명하고 영롱한 생명체가 나올 수 있을까요? 저 작고 앙증맞은 버섯들 앞에 쪼그려 앉아 있노라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내느라 무척이나 애썼던 지난 주말의 쓰린 기억이 말끔히 사라집니다. 쓰린 기억 퇴치에는 ‘꽃멍’, ‘나비멍’ 보다 ‘똥멍’, 아니 ‘버섯멍’이 특효인가 봅니다.
말똥 앞에 다소곳이 앉아 두 손 모아 카메라를 들고는 맘에 새겨봅니다.
‘인생은 장마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비 오는 숲길에서 말똥 위에 핀 버섯을 만나는 것이다.’
남은 반년도 느리지만 영롱하게, 무겁지만 반듯하게 맞으렵니다.
#제주의숲 #제주의나비 #비오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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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초록의 산야에 비가 내려, 빗물에서도 풀향기가 묻어나는 듯 합니다. 초록의 땀 냄새일까요? 무더위에 쉬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비에 젖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도 그립습니다,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