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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pein May 21. 2020

국내편)  3-3. 개똥이 약에 쓰려면 없는 이유

3장. 세상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내가 백수 생활에 읽은 책 중에 위기철 작가의 ‘껌’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그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한 사람이 매일 산에 올라가 껌을 뱉는 연습을 하고 껌이 도달한 위치를 표시해둔다. 그 사람은 매일같이 껌을 뱉고 껌을 어떻게 하면 더 멀리 뱉을 수 있을지 스스로 연구한다. 입 안에서 총알처럼 모양을 만들어 뱉어 보기도 하고 몸동작을 바꿔 보기도 하면서 자신이 목표로 한 거리까지 껌을 뱉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한다. 그런 그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생각한다.
 
‘왜 저런 쓸데없는 일에 매일 시간을 낭비할까?’
 
그는 그런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마침내 목표로 한 거리에 껌을 도달시킨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에 남긴 한 구절은 마치 그가 뱉은 껌이 내 머릿속에 찰싹 붙어 지금도 떨어지지 않고 있다.
 
“주둥이를 한 번 비틀 때마다 만 원짜리 지폐가 한 장씩 나온다면 그들도 고개를 끄덕일지 모른다. 그러나 주둥이를 아무리 쥐어짜 봐야 나올 것은 침 밖에 없었다.”
 
어느새 경제적 인간이 되어 버린 우리는 돈이 되지 않는 행위에 대해 그저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제적 인간은 스스로를 경제라는 틀에 가둠으로 인해 점점 도전에 위축되고 시도를 망설이게 되었다. 뭔가 시도도 하기 전부터 ‘이게 돈이 될까?’라는 전제 조건을 달기 시작하면서 모험을 기피하고 성공의 보장되어야 움직이게 된 것이다. 만약 껌을 멀리 뱉을수록 상금이 커지는 대회라도 있었다면 소설 속의 주인공이 껌을 뱉을 때 아마도 주인공 옆에서 껌을 뱉는 사람이 줄지어 서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처럼 결국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쓸데 있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난 이 소설 속 주인공이 내 머릿속에 붙여 둔 껌을 달고 다녔다. 난 이 끈적거리는 껌을 떼어내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이 주인공처럼 쓸데없이 돈이 안 되는 일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이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어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도 주변 사람들은 작가로는 밥벌이를 할 수 없다며 나를 껌 뱉는 사람처럼 취급했고 내가 과외를 했던 초등학생도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봤었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쓸데없이 뱉었던 껌들은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여기저기 달라붙으며 아주 쓸데 있는 경험이 되는데 그 첫 번째가 식음료 대기업 S그룹 면접 때였다.
 
난 영민이가 편의점 조끼를 입고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했다. 내가 중국어를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던 때, 중국에서 해냈던 것들 그리고 중국에서 목표로 했던 주재원. 내가 중국인처럼 말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고 이걸 공부해서 돈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어도 해낼 수 있었던 언어. 그리고 언젠가 주재원이 되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보자고 마음먹었던 그때를 돌이키며 내 초심을 완벽하게 잃고 있었다는 생각에 반성하게 되었다. 또한 내가 체감을 못하고 있었을 뿐 중국어는 충분히 쓸데가 많이 생기면서 내게 스스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입을 주기적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난 다시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내게 껌 같은 존재인 중국어를 더 멀리 뱉어 예상된 선을 훨씬 넘어서는 쓸데 있는 껌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 때마침 대기업 하반기 공채 시즌이 도래하고 있었고 잡 사이트에서 식음료 S그룹 공채 모집을 보게 되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S그룹이 뭐하는 회사인지 몰랐지만 모집 요강을 보니 내가 지금까지 자주 먹고 즐겨 찾았던 브랜드들이었다. ‘P카페, D도너츠, B아이스크림’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맛집은 전부 이 회사 소속이었던 것이다. 난 ‘철 밥’ 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제품들이라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어서 서류 전형 자격을 살펴보았다.


‘4년제 졸. 전공 무관(영업), 토익 800점 이상 또는 중국어 HSK 8급 이상’
 
내가 쓸데없다고 생각했지만 초등학생의 무시에 화가 나 취득한 지 얼마 안 된 HSK 9급은 이 회사에 원서를 쓸 수 있는 쓸데 있는 자격증이 되어 있었다. 난 곧바로 입사 지원 시스템으로 접속해 이력서를 써 제출했다. 이력서는 썼지만 그동안의 실패처럼 또 실패할 거란 생각은 여전히 내 마음 깊숙이 퍼져있어 이 지원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HSK 자격증은 7급 중급에서 9급 고급으로 훌쩍 높아져 있었지만 이거 하나로 내 경쟁력이 그렇게 크게 좋아져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서류 전형 발표 날짜가 언제인지도 잊은 채 내 과외 수업과 글쓰기에 집중하며 지냈다.
 
‘축하드립니다. 귀하는 서류 전형에 합격했습니다. 1차 면접은….’
 
문자를 받았다. 혹시 스팸이 아닌지 믿어지지 않아 그룹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시 확인했다. 분명한 서류 전형 합격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인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면 안 됐다. 비록 서류 전형에 합격했지만 이제 더 어려운 면접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난 여전히 가족들에게 함구했다. 그리고 영민이에게만 얘기했다. 영민이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대기업 면접을 겪고 이겨낸 친구였기에 그의 조언이 필요했다. 왠지 그의 조언대로 하면 나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라꼬? 니 S그룹 서류 통과했다고? 와…대단하네! 근데 거기 면접 억수로 빡빡하다던데 할 수 있겠나?”
 
“그래서 네가 좀 도와줘. 나 이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합격한 네가 내 코치 좀 해줘.”
 
“내가 냉정하게 봤을 때 거기서 니를 통과시킨 이유는 단 하나, 중국어다. 니는 무조건 중국 쪽 시장으로 준비해라. P빵집도 이미 중국 진출한 거 알제? 내 상하이 있을 때 난리도 아니었는데 니한테 내가 그 빵집 브랜드가 상하이에서 성공적으로 론칭할 수 있었던 스토리를 알려줄 테니까 만나서 얘기하자.”
 
그는 정말 각종 브랜드들의 히스토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나중에 어떤 브랜드라도 매장을 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가맹 사업을 하는 브랜드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고 있었다. 난 영민이의 조언을 듣고 면접을 철저히 준비했다. 모든 면접은 서울 본사에서 진행되었는데 나는 부모님께 서울 출판사 쪽에 다녀올 일이 있다는 식으로 대충 둘러대고 면접에 참가했다.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죠?”
 
이 질문이 첫 질문이었는데 난 영민이의 조언과 내가 공부한 이 회사의 중국 시장 진출을 축약해서 내 지원 이유를 면밀하게 설명했다. 누구나 대답하는 ‘제가 빵을 좋아해서요.’라는 말은 절대 뱉지 않았고 오로지 ‘P브랜드+중국시장=성공’ 이 공식 내에서만 대답했다. 그러자 면접관은
 
“우리 브랜드 중국 진출에 대해 아주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라는 말 한마디로 내 자신감을 높여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합격을 향한 가산점이 될 수 있어도 결정타는 되지 못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뜻하지 않은 결정타를 날리게 되었다.
 
“각 지원자 별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한마디씩 하시고 면접 마칠게요.”
 
네 명이 한 조로 들어간 후보자들의 마지막 한 마디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결론은 대부분 ‘뽑아주시면 열심히 하겠다.’ 이거였을 뿐. 난 내 순서를 기다리며 이 마지막 한 마디를 결정타의 기회로 삼기 위해 열심히 내 껌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순서가 되었다.
 
“저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창의력이 좋습니다. 작가의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중국 시장의 지속적인 성공을 만들 것입니다.”
 
마지막 한 마디를 권했던 여자 면접관은 날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작가라고요? 무슨 작가죠? 책을 썼나요?”
 
난 그 순간 결정타가 들어갔다고 생각했고 확실한 마무리를 짓기 위한 순발력을 가동했다.
 
“저는 등단한 수필 작가입니다. 제가 쓴 글 내용을 지금 말씀드리기에는 너무 길어질 거 같으니 명함을 주시면 작품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여자 면접관은 면접장에서 내게 명함을 선뜻 건네주며 말했다.
 
“꼭 보내주세요. 궁금하네요.”
 

난 명함을 건네받는 순간 명함이 입사 통지서처럼 느껴질 만큼 전율이 흘렀다.
 
‘세상에, 면접장에서 면접관이 자기 명함을 주다니!’
 
난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집에 가자마자 약속한 내 등단지를 면접관에게 보내 드렸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문자까지 받았다.
 
‘마지막까지 합격해서 꼭 같은 회사에서 일할 수 있을 바랄게요.’
 
난 이렇게 1차 면접을 통과하고 3차까지의 면접, 그리고 인적성, 미각 테스트까지 아무 문제없이 해내며 식품 대기업 S그룹 공채 사원이 되었다.
 
‘쓸데없이 글이나 쓰고 과외 같은 거 하지 말고’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었다. 하지만 내가 썼던 쓸데없는 글의 이력은 면접에서의 기적을 만들어냈고 내가 했던 과외는 내가 HSK 9급을 취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는 것이 아니라 똥을 안 싸려고 하기 때문에 약으로 쓸 똥 조차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지금 당장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되던 것이 나중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사례를 보곤 한다. 쓸데없이 기타나 매고 다니고 길거리에서 노래나 한다는 핀잔을 받던 버스커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일약 스타가 되는 사례도 그중의 하나다. 세상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다만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경솔한 편견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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