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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pein May 20. 2020

국내편) 3-1. 산전수전

3장. 세상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내가 백수로 돌아오며 봄도 돌아왔지만 난 다시 겨울이었다. 내 통장에는 수습 3개월 동안 모아둔 200만 원이 채 안 되는 잔고가 전부였고 한번 학생 딱지를 떼고 났더니 용돈을 받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안 없이 회사를 나왔더니 더 문제였다. 게다가 3년도 아니고 3개월 만에 나왔으니 부끄러움은 더할 나위 없었다. 마음이 답답해져서 서울로 면접 갈 때마다 집에서 재워준 절친에게 전화를 걸었다.
 
“승용아, 나 회사 때려치웠다. 백수 된 기념으로 서울 올라가서 너랑 술이나 한 잔 할까?”


“잘했어. 너랑 안 맞으면 빨리 그만두고 다른 거 하는 게 나아. 오늘 그냥 서울 올라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충동적으로 서울을 올 수 있겠냐?”
 
난 마치 부산에서 서울이 옆 집 거리인 것처럼 곧바로 기차표를 끊고 서울로 올라갔다. 면접 외의 이유로는 서울을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때 서울은 나에게 내가 백수가 되어야 갈 수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병 기간 동안 친해진 후 그 우정이 쭉 이어진 서울 토박이인 내 친구는 내가 서울을 갈 일이 생길 때마다 만사를 제쳐두고 날 챙겨주었다.
 
“야, 나 이제 뭐 해 먹고 사냐?”


구워지고 있는 곱창 연기 같은 표정으로 내가 말했다.
 
“네가 무슨 걱정이야. 중국어도 할 줄 알고 글 쓰는 재주도 있는 놈이…아, 맞다! 너 중국어 공부했으니까 중국어 무슨 자격증 있지 않냐?”


“응, HSK라고 11급이 제일 높은 건데 7급 있어.”


“그럼 너도 경찰 공무원 준비해봐. 중국어 그거 있으면 가산점 있거든. 그리고 너 유도도 2단인가 있지? 잠시만, 내가 가산점 뭐 뭐 있는지 물어볼게.”
 
나와 승용이는 군 복무를 의무 경찰로 했었고 이 녀석은 제대 후 바로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고시생 생활 2년 만에 경찰이 되었다.
 
“야, 무슨 스물여덟 살에 경찰 공무원 준비야. 지금 준비해도 서른 넘어서나 될까 말 까다.”


“요즘 경찰 4 교대에 근무 여건 엄청 많이 좋아졌어. 그리고 서른 넘어서 들어오는 사람도 많아. 물어보니까 넌 지금 가산점도 다 된 거래. 너처럼 가산점 다 채워져 있으면 훨씬 유리하지. 나 같은 놈도 됐는데 넌 금방 될걸?”


“공무원 좋지. 철밥통에 유망 직종이지. 근데 중국어 쓸 일이 없잖아. 간신히 배웠는데 썩히고 사는 건 너무 아깝다."


“너처럼 외국어 잘하면 외사과로 들어갈 수도 있지. 우리나라도 요즘 외국인들 많아져서 외국어 필요한 조직 많아. 가산점 따려고 따로 시간 투자 안 해도 되겠다, 의경 출신이라 의경 특채 시험도 있겠다, 얼마나 유리하냐?”
 
귀 얇은 내 청춘은 이렇게 경찰 공무원 고시생이 됐다. 통장에 남은 200만 원의 잔고가 다 바닥나기 전에 합격한다는 일념으로 공부했다. 첫 시험이 공부를 시작하고 4개월 만에 있었는데 첫 취업 때처럼 드라마 같은 합격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기에 의연하게 쉴 새 없이 고시생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한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 왔다. 회사는 잘 다니고 있나?”


같이 필리핀으로 가려다 혼자 갔었던 친구 재율이가 돌아왔다.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지금 경찰 공무원 준비하는 고시생이야.”


“야, 내 혼자 필리핀 보내고 들어갔으면 더 버텼어 여지.”


“그러게 말이다. 내랑 사회생활이랑 안 맞나 봐.”


“맞고 안 맞고가 어디 있노? 다 그냥 참고하는 거지. 그럼 니 지금 일은 안 하니까 시간은 좀 있겠네?"


“매일 공부는 하지만 시간 내려면 낼 수는 있지.”


“그럼 니 중국어 통역 알바 잠깐 안 할래? 어차피 니도 지금 돈 필요할 거고 기간도 일주일이라서 별로 안 길다. 그리고 회사도 대기업이라 시급도 억수로 마이 준다더라. 니 포항에 P 제철 회사 알제?”


“야, 그 회사 모르는 한국사람도 있냐?”


“그래, 내 대학 선배가 거기 다니는데 중국어 통역 알바 좀 소개해 달라고 하는데 딱 니 생각이 나더라고. 자는 건 사내 기숙사 제공해주고 밥은 회사 식당에서 먹으면 되고 하루 일당이 거의 20만 원 정도로 쳐준다카더라.”


“뭐??? 일당이 20만 원???”


“그렇다니까. 완전 꿀 알바 아니가? 내가 중국어만 할 줄 알아도 당장 내가 해뿌지.”   
 
모아 둔 돈이 넉넉지 않던 나는 곧바로 포항으로 향했다. 정말 재율이가 말해 준 그대로였다. 하루 8시간 근무, 기숙사 독실 제공, 식사 제공, 기숙사에서 근무지로 이동하는 차량 제공 그리고 높은 시급. 대기업 스케일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맡은 통역은 기술 통역이었다. 중국 지사에서 중국인 직원들이 한국 본사로 와서 교육을 받는데 그 교육 내용을 바로바로 통역해주는 것이었고 내가 접해보지 않은 분야와 내용이어서 꽤 어려움이 있었다. 말 그대로 기술 통역이라 거의 모든 용어가 기술적인 것들이었다. 철강 기술에 관련된 내용이다 보니 화학 용어와 금속 대료 관련 용어들이 엄청나게 쏟아졌고 난 일을 마치면 기숙사에서 다음 날 더 원활한 통역을 위해 이 분야 관련 용어들을 정리하고 공부해야 했다.


내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원래 일주일로 예정되었던 내 아르바이트는 1주일이 더 연장되었고 난 2주라는 단기 아르바이트로 큰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수입뿐만 아니라 대기업에서의 2주 체험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회사 기숙사 내에는 거주하는 직원들을 위해 피시방, 노래방, 목욕탕까지 갖춰져 있었고 회사 식당은 고급 뷔페 형태로 음식을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었다. 공장 단지가 워낙 커서 건물과 건물을 이동할 때에는 내부 셔틀을 부르면 와서 이동을 도와줬고 회사 근처 외부에는 집을 마련할 능력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신혼부부들이 내 집 마련 자금을 모을 때까지 싼 월세로 거주할 수 있도록 지어놓은 빌라도 있었다.


회사가 직원의 의식주 같은 생활의 기본 요소를 책임지다시피 하며 일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2주 간의 통역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가려니 너무나 아쉬웠고 나도 이런 곳에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난 경찰이 되고자 마음먹었던 것들을 곧추어 세우며 다시 고시생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고시생으로 돌아온 것도 잠시,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제주도 **호텔 카지노인데요. 잡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이력서 보고 전화드렸는데 통화 가능하세요?”
 
취업 후에 잊고 있었던 공개로 해 둔 이력서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무슨 일로 어떻게 저한테 전화를 주신 거죠?”


“이력서 보니까 중국어가 되시는 거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저희는 호텔 카지노인데 중국어 통역해 주실 분이 필요한데 혹시 지금 일하고 계신가요?”
 
제주도, 카지노, 통역. 난 이 세 가지만 봐도 사기나 스팸일 거라는 의심이 가득했다.


“일은 안 하고 있는데 지금 그쪽이 무슨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전혀 안 되네요.”


“아마 그러실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지금 좀 급해서 이력서 보자마자 연락드렸어요. 일단 자세히 소개를 드리자면 호텔 카지노에 외국인 손님들이 오시잖아요? 그 손님들 중에 중국이나 홍콩, 마카오에서 오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중화권 손님들 통역이랑 케어해주실 분이 몇 분 필요한데 제주도 내에서 찾는 게 한계가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사실 이렇게 설명드려도 뭔지 확 와 닿지 않으실 거예요. 저희가 왕복 비행기 티켓을 제공해드릴 테니까 면접 오셔서 설명도 들으시고 직접 보시는 건 어떠세요?”
 
비행기 표를 준다는 말에 백수의 얇은 귀는 다시 팔랑거렸다. 그리고 일전의 P제철 통역 아르바이트에 이어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은 역시 중국어를 쓸 수 있는 길인가?라는 물음표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비행기 표도 준다는데 밑져야 본전이고 할 만한 일이면 아르바이트 삼아 학원비라도 벌자는 생각으로 삼다도로 향했다.


면접은 중국어로만 진행됐다. 통역 업무는 중국어 회화 능력이 가장 우선이다 보니 대화 위주로 이어졌다. 면접은 약 30분이 지나서야 끝났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으세요?”


나에게 전화를 훅 걸어왔던 이 여자는 이번에도 내 훅을 쳤다.
 
“제주도가 옆 집은 아니라서 제가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거 같아요. 만약 일을 한다고 해도 집도 구해야 하고… 아무래도 제약이 많을 거 같네요.”


“집은 저희가 2인 1실로 오피스텔을 제공해 드려요. 출퇴근은 통근 승합차에 다른 직원 분들이랑 같이 타고 하시면 되고요. 아, 제일 중요한 급여를 말씀 안 드렸네요. 아무래도 카지노다 보니 야간이랑 주말 근무도 있는 교대 근무라 이런 걸 다 포함시켜서 월 280만 원이에요.”
 
숙소와 차량 제공, 월 수입 280만 원 보장. 길가에 서있는 전신주나 공중 화장실 문에 붙여진 스티커에서만 보던 근무 조건이 내 앞에 제시되고 있었다. 분명 내 눈으로 호텔 카지노와 사무실을 실사하며 사기가 아님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백수에게 이런 조건으로 대우해 준다고 하니 더더욱 믿어지지 않았다. 문자로만 만나던 김미영 팀장 같은 이 여자는 어안이 벙벙해 있는 나에게 계약서를 내밀었고 난 뭐에 홀린 듯 서명했다.

참으로 우연히 그리고 또 드라마처럼 내 제주도 생활은 시작됐고 아르바이트 삼아 한다던 일을 6개월이나 했다. 야간 근무가 있어 피곤하긴 했지만 일도 재미있었고 사람들도 또래가 대부분이라 아주 잘 지냈다. 여행이라면 모를까 살아본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는 낭만의 섬 제주도에서 반년을 살며 제주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여보세요? 니 요즘 어디있노?”


북경에서 같은 부산이라 금방 가까워졌던 준이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진짜 오랜만이네요. 저 요즘 제주도에 있어요. 한번 놀러 오세요.”


“뭐라꼬? 제주도? 거는 뭐 할라고 가 있는데?”
 
난 형에게 제주도에 오게 된 계기부터 하는 일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그라믄 인자 놀만큼 다 놀았나?”


내 설명을 듣더니 형은 격려는커녕 ‘놀았나?’라는 돌멩이를 내 가슴팍에 던졌다.
 
“형, 놀다니요. 이 일도 나름 피곤해요. 하하…”


“인마야, 니 계속 통역해가 나중에 뭐 할낀데? 내 딱 들어봐도 아무 비전 없는데? 6개월 제주도에서 놀았으면 인자 고마 됐다. 접고 부산으로 넘어 온나. 행님 회사에 니 같이 중국어 잘하는 아 필요하단다. 니도 방금 원래 아르바이트한다고 생각하고 간 거라 안 했나?”


전화를 끊고 나니 형이 던진 돌멩이는 나도 모르게 가슴팍에 박혀있었다. 원래 하겠다고 굳게 결심했던 경찰 공무원 시험도 도중에 그만두고 어쩌다 또 6개월이나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는 의문이 생기며 거울에 날 제대로 비춰 보았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 그리고 그에 비해 너무 편하고 좋은 조건에 취해 내 목표와 장기적인 계획은 까마득히 잊은 채 반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형의 말대로 이 일이 비전이 있지는 않았다. 내가 고립되어 간다는 두려움이 확 밀려왔다. 점점 내가 겪었던 치열함을 망각하고 무뎌져 있었고 제주도에서 스물아홉이 되어 있었다. 2009년 4월, 반년의 제주도 생활을 접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갔다. 백수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대안을 마련해놓고 돌아온 터라 첫 백수 리턴 때보단 마음이 훨씬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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