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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pein May 20. 2020

국내편) 3-2. 공중전

3장. 세상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베이징 올림픽이라는 경제 성장 호르몬을 맞은 중국은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처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어가면서 동시에 세계의 소비 시장도 함께 되어가고 있었다. 한마디로 경제의 기본인 생산과 소비 이 양 극을 극대화시키며 거대한 경제 배터리로 진화해 나갔다. 그리고 이 초대형, 초강력 배터리는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에 신생 경제 에너지를 불어넣음과 동시에 양분을 빨아들였다.

부산으로 돌아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로 들어오라고 했던 준이 형을 만났다. 형의 회사는 인터넷 검색으로도 소위 뜨고 있는 업종의 뜨고 있는 중소기업이었다. 그 회사는 풍력 발전기의 중요한 부품들을 만드는 단조 회사였는데 조선 업체와 같은 ‘철 밥’ 먹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었다. 난 간략한 면접을 보고 출근을 최대한 빨리 시작했다.


회사가 양산에 있어서 아침 7시에 통근 버스를 타야 해 6시 전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회사는 1개월 만에 그만두게 된다. 난 이 회사를 다니면서 ‘철 밥’ 먹는 사람들의 보수성과 수직적 문화는 나와 철저히 맞지 않음을 확인했고 나아가 나는 회사를 다닐 수 없는, 회사와 맞지 않는 성격이라고 단정 지었다. 또다시 1개월 만에 회사를 나온 나는 부모님께 말씀드릴 자신도 없어 한 동안 출근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하루는 찜질방에서, 또 하루는 피시방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고 퇴근 시간이 되면 집에 들어갔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지만 갈 곳이 없는 기분은 집을 나가는 순간 오히려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혀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예전 중국어 학원에서 친해져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온 친구 영민이에게 전화를 했다.
 
“영민아, 너 지금 혼자 산다고 했지?”


“응, 왜?”


“나 아침부터 퇴근 때까지만 너네 집에 가 있으면 안 되냐?”


“무슨 일이고? 니 출근 안 하나?”


“응. 나 또 회사 때려치웠는데 부모님한테 말을 못 하겠다. 그래서 지금도 출근한 척하고 나와있어.”


“고마 잘됐네. 내도 지금 회사 때려치우고 방구석에서 논다. 지금 온나.”
 
영민이는 갈 곳 없는 나에게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다. 난 매일 아침 나와 영민이 집으로 출근했다. 영민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상하이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다시 귀국해 한참 부산에 있는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전도 없고 낮은 급여에 비해 많은 업무량에 질려 퇴사한 상태였다.


영민이는 나와 처지가 비슷했다. 둘 다 소위 말하는 ‘지잡대(지방에 있는 잡다한 대학)’을 나왔고 특별한 스펙도 없었다. 같은 처지의 무일푼인 우리는 돈을 아끼기 위해 주로 라면과 편의점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이제 뭐 해 먹고살까?’라는 평생 숙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몰라 계속되는 낙담과 암담한 현실에 좌절하고 있었다.


“니 인자 집에 얘기하고 집에 들어가라. 니 우째 계속 이래 지낼래? 부모님도 이해해주실 거야. 니도 내도 어떻게든 뭐든 해보자. 일단 집에는 말씀드리라. 내도 인자 금방 월세도 못 낼 거 같은  이 방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갈란다.”
 
나도 영민이도 그렇게 집 백수로 돌아갔다. 부모님은 내 사직 얘기에 마치 알고 있으셨던 분들처럼 아무런 동요도 없으셨다. 난 중국에 막 도착했을 때처럼 생각했다.
 
‘지금 내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자.’
 
난 중국어 과외를 결심했다. 내가 잘하는 중국어를 가르쳐 보기로 마음먹었다. 곧바로 전단지를 만들고 차가 있던 영민이에게 부탁해 여기저기를 돌며 전단지를 뿌렸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글쓰기를 활용했다. 글쓰기 공모전에 출품해 상금이나 상품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터넷 신문 기자와 시청 시민 기자로 뽑혀 기사 기고를 통해 수입을 만들었고 급기야 문예지 등단까지 시도했다.


중국어 과외는 입소문을 타고 학생들이 모였고 2개 중학교 방과 후 교사도 겸할 수 있었다. 수업이 빡빡해지면서 저녁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수업을 해야 했다. 글쓰기 대회 입상은 크고 작은 대회를 합해 약 10개 정도 해냈고 수필 작품으로 문예지 등단도 해내면서 정식 등단 작가도 되었다. 이렇게 수입도 생기고 글쓰기 능력도 인정을 받다 보니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살아보고 싶어 졌다. 중국어 과외로 글을 기고하면서 내 수입을 만들어내고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워 글을 쓰기에도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계속 순조롭지 만은 않았다.
 
“선생님, 선생님은 왜 이런 일해요?”


내가 가르쳤던 학생 중 제일 어리고 무례했던 초등학생 5학년 제자가 물었다.
 
“이런 일이 어떤 일인데?”


“지금 저 가르치는 일이요. 왜 선생님은 회사 안 다니고 과외 같은 걸 해요?”


“과외가 어때서?”


“회사 못 가서 하는 저 같은 애들 가르치는 거 아니에요?”
 
이 무례한 초딩 녀석은 초딩답지 않은 현실 펀치로 날 휘청거리게 만들더니
 
“선생님 HSK(중국어 능력시험) 몇 급이에요?”


“7급.”


“선생님인데 7급 밖에 안 된다고요? 와… 내 친구 선생님은 9급이라던데.”


“HSK 급수가 높다고 해서 중국어를 더 잘하는 건 아냐.”


“그래도 높은 게 좋잖아요.”


“내가 9급 따려면 금방 따는데 시험 칠 시간도 없고 별 필요가 없어서 안 딴 거다.”


난 이 고작 초등학생 5학년에게 발끈하며 심리적으로 말려가고 있었다.
 
“선생님, 내 같은 어린애들 가르치니까 편하죠? 그냥 이렇게 수업 안 하고 대충 말로 때우고 시간만 보내면 되잖아요. 솔직히 저 같은 애가 돈 벌기 쉽잖아요?”


난 결국 이 쥐 톨 만한 녀석이 연속으로 뿜어내는 현실 펀치에 심리적 K.O를 당하며 이 녀석의 수업을 잘라내고 곧바로 HSK 고급 시험 대비 교재를 사 독학에 들어갔다. 그렇게 고급 시험을 공부한 지 1개월 만에 9급을 취득했고 그 버르장머리는 없지만 현실적인 초딩 녀석 덕분에 중국어 강사로서 더욱 당당해질 수 있었다. 비록 초딩이 준 충격이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이것이 현실이 내 들려주는 목소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글 쓰는 건 잘 돼 가나?"


영민이가 나에게 전화했다.
 
“이제 시작이지 뭐. 책 한 권 내는 게 소원인데 언제 될지는 모르겠네.”


“우리 곧 서른이다. 우리 올해 취업 못하면 취업이랑 영영 안녕될 수도 있는데 괜찮나?”


“난 그냥 이렇게 살면서 작가로 가보려고. 어차피 회사 생활은 나랑 안 맞잖아.”


“니 그러다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데이. 내는 이번에 대기업 들어가 볼라고 원서 넣었다.”


“원서 넣는다고 우리 같은 지잡대 출신이 대기업에 취업이 되겠냐?”
 
사실 영민이는 명문대 출신은 아니지만 이름 그대로 ‘영민’했다. 상식도 풍부했고 사회나 경제에 대한 지식도 또래들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중국 상하이 해외 근무 경험과 국내 근무 경험도 갖춰져 있었다.


“내 원서 통과됐다!!! 면접 보러 오란다!!!”
 
어느 날 영민이는 서류 전형 합격의 희소식을 내게 알렸다. 난 한편으로는 영민이를 축하했고 또 한편으로는 이게 가능한 일인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난 서류는 어떻게 운 좋게 통과했지만 최종 합격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영민이는 예상을 뒤엎고 3차 면접까지 통과하며 편의점의 빅 브랜드였던 ‘By the way’(향후 더 큰 대기업 편의점 S 브랜드에 인수됨.) 점포개발 담당으로 당당히 입사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내 지금 해운대 건널목 편의점에서 실습하는데 니 함 놀러 온나.”
 
영민이의 목소리는 활기찼고 뭔가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난 편의점 조끼를 입고 일하는 영민이를 놀려줄 겸 녀석이 일하는 매장을 찾았다.
 
“이런…이런…이런… 이게 누구야? 대기업 사원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구분이 안 가는데?”


난 영민이에게 장난을 걸며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아, 왔나? 내 지금 이 편의점 조끼 입고 있어도 자랑스럽다. 하나도 안 쪽팔리고 너무 기분 좋다.”
 
영민이가 한참 바쁠 시간이어서 한 10분 정도 얼굴을 보고 편의점을 나왔다. 편의점을 나와 길 건너편에서 계산 중인 영민이의 모습이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같이 느껴졌다. 나는 해내지 못한다고 생각한 걸 해낸 영민이는 그날 나에게 다시 큰 자극과 격려가 되었다.
 
“영민이도 됐는데 나도 다시 해보자.”
 
편의점 조끼를 명품 조끼보다 자랑스러워하던 영민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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