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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춘 May 26. 2022

새벽의 이방인

 나는 새벽이 싫었다. 기본적으로 밤을 무서워했던 것 같다. 어릴 땐 어느 할 일 없는 외계인이 나를 UFO로 납치해 내가 자는 사이 요리조리 해부를 해본 다음 내 몸뚱이가 필요 없어지면 세렝게티 초원이나 아마존 열대우림 같은 곳에다 던져놓고 갈 줄 알았다. 철이 좀 들고 나서부턴 귀신이 무서웠고 불안장애에 걸리고 나서는 새벽의 우울함이 무서웠다. 밤은 나를 집어삼킨다.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자주 우울하고 괴로웠다.


 어릴 적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엄마, 나는 밤이 오는 게 싫어! 나는 아침이 좋아!"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아침이 오는 게 싫은데. 일 하러 가야 해서."


 지금쯤 엄마는 아침 저녁이 상관없는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나만 또 무한히 되돌아오는 밤을 맞이할 뿐이다.


 엄마는 영정사진을 준비해 두지 않았다. 본인이 말기암이란 걸 알면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면서도 그랬다. 그래서 남은 가족들끼리 부랴부랴 영정사진을 준비해야 했다. 가족 행사에서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찍었던 스냅사진으로 할까 하였으나 사진기사가 초점을 죄다 흐릿하게 찍어놓았다. 흐리멍텅한 얼굴은 영정사진으로 쓸 수 없대서 할 수 없이 몇 년 전 사진관에서 찍었던 여권 사진으로 대체했다. 엄마의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여행을 위한 사진이었다. 사진 속 그녀는 차가웠고…… 머리카락이 없어 기이하게 너비가 넓은 머리띠를 쓴 채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급하게 찍은 게 티나는 사진이었다. 나는 그게 못내 속이 상했었다. 엄마도 이런 사진으로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나는 나를 보러 올 손님들한텐 예쁜 모습을 보여주기로 다짐했다. 환하고 반짝반짝한 모습을 담아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비싼 사진관에 예약을 해서 평소엔 쓸 곳도 없는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그러니까 가성비 '0'인 사진인 셈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사진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해 주었다. 이 사진이 내 장례식에 걸려있어도 다들 똑같은 반응을 해주길 바랐다.


 나는 물리적으로 사람들과 떨어진 영종도 한 켠에 나를 가둬두고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옭아맸다. 친구들이 있는 서울로 놀러 가는 건 참 재밌었다. 유명하다는 맛집도 가고 매연도 먹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참 잘 갔다. 시간은 잘 갔으나 나는 노는 순간까지도 불안했다. 또다시 밤이 오는 섬으로 되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밤이 온다는 건, 무수한 밤의 유혹들로부터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루는 크게 상심하여 모든 걸 놓아버릴까 하였으나 바보 같은 나는 용기가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창틀에서 내려와 방충망을 닫았다. 그러고 나선 침대에 엎어져 엉엉 울었다. 바보다. 나는 참 바보다.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어두운 새벽 거리를 뚫고 출근을 할 때면 참 우울하고 추웠기 때문에 가끔은 복작복작한 지옥철 출근길이 그리웠다. 지하철에서 그렇게 밥 먹듯 발작을 일으켜놓고 이제 와서 지하철이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아마 나는 공황발작보다 새벽의 쓸쓸함이 더 무서웠나 보다.


 택시를 타고 출근을 하면 새벽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공항에 와있었다. 나는 이 사람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런 쓰잘데기없는 것들이 궁금했지만 그런 것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표정을 짓고서 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티켓 쪼가리를 제공하기 위해 카운터에 앉았다.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xx항공 탑승 수속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도 저희 xx항공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즐거운 여행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의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리면 카운터 앞은 이내 복작복작 활기가 돌며 캐리어를 끄는 손길들이 분주해진다.


 서울에서도 서쪽으로 40km가량 떨어진 한 섬에서는 유독 한 곳만이 눈이 부시게 밝았다.

 나는 어쩌면 그 새벽의 와글와글한 밝음이 좋아 공항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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