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는 65년생 부터 81년생까지 X세대라는 상징적 아이콘을 탄생시켰다. 인구학자 조영태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X세대는 75년생~84년생 정도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75년생부터 수능(첫 수능은 2번 치렀다!)이 시작되었고, 문화적으로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기성세대와 다른 성향을 보였다. 그 밖에도 몇몇 중요한 사회적 변화의 기점이 있다. X세대인 내가 군입대 신체검사를 앞두고 단기사병(6~18개월 출퇴근 군 복무) 제도가 75년생부터 없어졌다는 사실에 낙담한 기억이 있다.
X세대가10대 시절에 서울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이 치러졌다. 그 당시 선생님들은 우리나라 미래에 대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서울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나에게 이 말은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고 나도 잘 살게 될 수 있다로 받아들여졌다. 그당시 대부분의 어른들은 X세대 청소년의 장밋빛 미래를 그려주었다.
그러나 누구도 암울한 미래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1993년 대전엑스포가 열렸을 당시 '선진국 대한민국'이라는 자부심은 고등학생이었던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TV에서 얼마나 홍보에 열을 올렸는지 어른들은 밝은 미래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의 자부심은 1998년 IMF사태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필 이때 X세대가 대학을 졸업할 시기와 맞물였다. 세상은 겉으로 평화로웠지만 X세대는 직장과 가정이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는 걸 지켜봐야 했다.
다행히 IMF로 인한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고, 이후 찾아온 2002 한일월드컵은 대한민국이 거대한 단일공동체라는 점을 확인시켰다. 월드컵 이후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IT 선진국이라는 찬사를 듣기 시작한 시기가 이때부터다. 우리나라는 기술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으로 달려왔고, 특히 디지털 기술에 국운을 걸만큼 그 역량을 집중적으로 키웠다. 그 기술 덕분에 현재의 삼만오천불의 GNP를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X세대는 대한민국의 가장 화려한 시기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한국전쟁 이후 가족과 국가를 우선했던 근면한 부모세대와 달리 개인주의 성향이 더 강한 X세대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있다는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의 미래를 낙관하기보다 걱정과 우려를 더 많이 쏟아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미래 세대의 일자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전망은
디지털 기술 덕분에 발전한 우리나라에는 정말 뼈아픈 말이다.
이미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달라졌다.
기업은 대량 생산과 관리를 하는 시스템에서 기술집약적 노동환경으로 변했고, 그에 맞는 인재를 원한다.
결정적으로 기술집약적 기업은 공채가 필요 없다. 다수를 한꺼번에 뽑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채용할 직원 자체가 적어지기도 하다. 그리고 기업은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대학은 그런 인재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왜? 대학 시스템과 기업의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네르바스쿨 같은 학교가 등장했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성적은 성실함을 측정하는 도구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성적이 좋고 자기 관리를 잘하는 학생이 꼭 창의적인 학생은 아니라고 한다.
왜 그럴까?
내 생각에는 창의성은 도전과 실패 그리고 열정의 산물이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은 셈법이 확실하다. 실패할 확률이 높은 일은 아무리 좋아 보이고 흥미 있어 보여도 시도하지 않는다. 물론 해볼까 생각은 한다. 하려는 계획을 세워보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면 행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안정적인 일을 준비하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학생이 창의적이지 못한 이유이다. 기업이 자기 셈법에 확실한 인재보다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중고 교육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도 뚜렷이 변했다.
X세대 학부모는 자녀의 개인적 행복에 신경 쓰지만, 경쟁을 돌파하길 원하는 이중적 잣대로 인해 늘 흔들린다. 가슴은 아이의 행복이 우선인데, 머리에서는 아이가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하라는 명령어가 끊임없이 전달된다. 가슴으로 아이를 보듬어 주다가도 자녀의 부족한 성적을 보면 부랴부랴 사교육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결국 X세대 교사와 부모는 자신의 성공방식을 아이에게 은연중 적용하게 된다. X세대의 성공방식이 구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쓸만하다고 믿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직은 쓸만한 방식이다. 다만 아이들이 경쟁에 치여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을 똑같은 경험을 겪은 부모가 모를 리 없다.
그만한 가치가 지금도 있을까?
어차피 1,2등급은 한 반에 두어 명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실패할 수 있는 길을 가라고 떠밀 수 있을까? 쉽지 않다!
내 아이가 안정적인 성공 경로를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X세대나 그 윗 세대나 자식의 성공을 위한 공통분모이다. 문제는 X세대의 성공 경험과 자녀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서로 충돌을 빚으며 복잡한 부모 마음이 소용돌이친다는 점이다.
입시 경쟁에서 성공하는 학생은 어차피 소수이다. 나의 자녀가 입시 경쟁에서 밀릴 확률이 훨씬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