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 대부분의 SNS를 이용하지 않는다. 지금은 SNS 이용을안하지만 회원가입 경험은 많다. 10여 년 전만 해도 페이스북에 푹 빠져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연결의 피로감은 내 우울한 감정을 층층이 쌓을 뿐이었다. 결국 탈퇴하고서야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다.
소셜미디어는 많은 불특정 다수와 연결되는 속성 덕분에 순식간에 대세 미디어가 되었다. 사람들과 연결을 원했던 내가 SNS를 안 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연결의 속성 때문이다.SNS로 연결된 수많은 사람 덕분에 내가 몰라도 될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게 되지만, 더 많이 연결될수록 댓글이나 좋아요 등의 피드백에 대한 피로감은 높아만 갔다. 특히나 그들의 멋진 여행 사진과 행복한 일상이 전해질 수록 나는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년 전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이 SNS가 주는 피로감의 문제를 깨달았는지 SNS 가입자 수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SNS는 피드백의 피로감과 우울한 감정만 남기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문제가 있다.
SNS에서 연결된 이들이 서로 어떤 콘텐츠를 보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단지 그들이 올리는 글과 사진 또는 영상으로 그 결과만 알 수 있을 뿐이다.
SNS 등장 이전에 사람들은 매스미디어로 다양한 정보를 함께 접했다. 동시에 같은 정보를 접하다 보니 그 사람이 어떤 미디어의 영향을 받았는지 눈치챌 수 있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즉, 그 사람이 어떤 정보를 근거로 이야기하는지 이해하고 대응이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SNS가 확산하던 시절에는 누구에게나 열어놓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했지만, 이제는 SNS에서 내가 연결한 사람이 아니라면 외부에서 접근하기 어렵다. 이는 내가 선택한 취향, 신념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접근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우리끼리 전하는 정보와 소식은 우리 주위를 돌고 돈다. 이렇게 비슷한 생각과 정보가 돌고 돌다 보면 서로의 의식을 강화시켜 주는 효과가 발생한다.
혹여라도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SNS에서 의견을 나누게 되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즉, 타협이 어렵다.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인식하게 되는데, 그 이유와 근거를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신념이 다른 집단의 양극단에 이르면 몇몇이 사고를 치기도 한다. 이들은 강화된 신념을 무기로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그게 언어폭력이든 물리적 폭력이든, 어쨌든 폭력적 성향을 보인다. 더 안 좋은 상황은 이 극단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인이나 기업과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질 때 발생한다. 정치인들의 부채질은 정치적 극단의 사람들을 불타오르게 한다. 그들의 폭력적인 언행과 거짓 정보는사회를혼란에 빠뜨린다.
작년에 페이스북 전 직원의 내부고발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페이스북이 인종차별, 성차별 등의 혐오 콘텐츠를 묵인했다고 한다. 극단적 성향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정보의 조회수가 페이스북에게는 이익이 된다고 여겼나 보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애초에 그런 혐오 콘텐츠를 지나치도록 설계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