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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Jun 12. 2021

Backspace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6월 11일


 평소에도 노트북 앞에서 하루를 거의 다 보내는 편이지만, 누워서 핸드폰을 보는 시간도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침대에 한 번 누울 틈도 없이 종일 노트북만 붙들고 있었다. 스터디를 하기 전에 모든 과제를 꼭 끝내야 하기도 했고, 내가 늦게 일어나기도 했고.


 문서 작업을 할 때 버릇이 있는데, 막히면 그때 생각나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친다음 Backspace키를 눌러 다다다 지운다. 키패드를 연달아 빠르게 누를 때에 들리는 소리와 일이 진척된 건 아니지만, 막힘없이 뭔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좋아서 자주 나오게 되는 버릇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한 것들이 새삼 눈에 밟히는 때가 있다. 평소엔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으로 누르던 게 오늘따라 괜히 눈에 걸렸다. 내가 무언가를 의미 없이 쓰고 지우는 과정을 함께 겪는 동료이자 지우개인데. 화면 속에 활자들이 나타났다 지워지고, 그만큼의 압력을 견뎌야 하는 이 키는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이 없는 존재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습관이다.


 지난 기억들이 미화되거나, 혹은 그 기억에 지나치게 상처 받는 이유는 역시 시간은 'backspace'를 누를 수 없어서겠지. 아무렇지 않게 쓴 후에 지워낼 수 없으니까 순간순간이 의미를 갖는 거겠지. 당연한 것인데 새삼. 새삼이라는 말 뒤에 묻힌 수많은 것들이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이 글을 쓰면서도 수없이 누른 키. 몇 시간도 채 눈을 붙이지 못하겠지만 정신은 또렷하다. 일어나서는 이 순간을 지우고 싶어 질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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