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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Feb 12. 2023

1100원짜리 볶음국수, 좋아만 할 수 없었던 이유

다시, 치앙마이 ①

치앙마이를 다녀왔다. 코로나 시국에 출장으로 국제선 비행기를 탄 적은 몇 차례 있지만 아내와 휴가로 해외를 나간 건 3년만이다. 겨울 치앙마이는 처음이어서 기대가 컸다. 한창 추운 한국을 탈출해 따뜻한 남국으로 간다는 사실만으로 벅찼다.


해외여행은 3년만이고, 치앙마이 여행은 5년만이었다. 궁금했다. 태국이, 치앙마이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5년이란 시간이, 코로나 펜데믹이 내가 애정을 품었던 도시를 어떻게 바꿨을까. 일주일을 지낸 소감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변한 것도 있지만 그대로인 것이 훨씬 많았다. 크리스마스부터 음력설까지, 겨울 여행 성수기가 지나서인지 치앙마이는 한가로웠고 편한 마음으로 휴가다운 휴가를 누릴 수 있었다.

변한 것부터 얘기해 볼까? 그랩, 그러니까 동남아판 우버라 불리는 택시비가 크게 올랐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유가상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공급망 위기, 플랫폼 기업의 이익 독점. 국제 뉴스, 경제 뉴스에서 본 여러 용어가 떠올랐다. 정확히 어떤 원인인지, 그리고 펜데믹 이전보다 얼마나 비싸졌는지 따져보진 못했다. 다만 아내와 여행 경비를 정산해 보니 예전보다 택시비 지출이 상당히 컸다는 것은 확실했다. 다음엔 오토바이를 빌려 타는 게 낫겠다 싶었다(조금 무섭지만 베트남보단 낫겠지?).


그랩보다 조금 저렴한 차량 공유 앱이 또 있었다. 볼트. 에스토니아 탈린에 본사를 둔 우버 비스무리한 회사다. 지난해 스페인 출장 가서도 볼트 앱을 통해 택시나 공유자전거를 잘 이용했다. 치앙마이에서는 볼트가 그랩보다 차는 많지 않아도 30% 정도(역시 체감 기준) 저렴했다. 결제는 현금으로만 됐는데 싼맛에 종종 이용했다. 볼트 기사에게 “그랩보다 볼트가 뭐가 좋아? 수수료가 적어?”라고 물었더니 영어가 잘 안 통했는지 “그랩보다 지도가 더 정확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름 취재력을 발휘해보려고 했는데 역시 에스토니아가 IT 강국이란 사실만 확인했다.

여행 경비로만 따지자면 치솟은 택시비 외에는 드라미틱한 물가 상승을 체감하긴 어려웠다. 큰 식당은 음식 값이 좀 비싸다 싶었지만 현지인이 주로 찾는 허름한 동네 식당이나 야시장 음식 값은 거의 그대로였다. 일요일 야시장에서 팟타이(볶음국수)와 팟카파우무쌉(돼지고기바질덮밥)을 각각 30바트(약 1100원)에 사 먹은 게 가장 저렴한 한 끼였다. 양은 살짝 적었지만 맛은 훌륭했다. 숙소 직원이 추천한 식당에서 카오소이(닭도리탕국수? 비슷한 맛)를 2000원도 안 되는 45바트에 사 먹었다. 물론 맛은 대감동이었고. 가장 비싸게 사 먹은 한 끼는 번듯한 북부음식 전문식당에서 음료를 곁들여 2만원을 쓴 게 다였다. 너무 엥겔지수가 낮은 여행을 한 걸까?


마사지도 몇 차례 받았는데 5년 전과 큰 가격 차이를 못 느꼈다. 저렴한 곳에서 발 마사지 1시간에 250바트(9400원)를 냈고, 그보다 조금 비싼 곳에서는 90분 전신 마사지를 받고 400바트(1만5000원)를 계산했다. 팁을 따로 건네긴 했다. 만족도가 높은 곳은 100바트, 조금 아쉬운 곳은 50바트. 얼마가 됐든 마사지사들은 밝은 미소와 함께 두 손을 모으고 “싸와디카(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100바트면 두 끼 식사 값은 되니까 박한 건 아닐 거라 생각했다. 저들의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고려하진 않았다.


그런데 식당이나 마사지숍에서 계산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식 값이나 마사지 값이 오르지 않은 게 저들에게도 좋은 걸가? 그게 훌륭한 여행지의 조건이라도 되는 듯 감탄하고 소셜미디어에 자랑하는 게 맞는 건가? 다시 뉴스 용어를 호출해보자. 글로벌 인플레이션, 펜데믹으로 인한 물가 상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공급망 위기. 이게 다가 아니다. 한국은 소폭이라도 최저 임금이 상승하는데 태국은 그런 변화도 없었나? 아니, 마땅히 인건비가 오르고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개선돼야 하는 것 아닌가? 택시비는 크게 올라서 정유회사와 글로벌 플랫폼 기업은 배가 부를 텐데, 땀을 뻘뻘 흘리며 육수를 끓이고 국수를 볶고 외국인의 발을 주무르는 사람은 왜 5년간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걸까. 저들의 삶은 더 쪼들리는 건 아닐까. 어쩌면 ‘싸고 편한 동남아', ‘가성비 여행지' ‘가난해도 늘 웃는 사람들' 같은 이미지가 저들을 저임금 구조로 고착화시키고 저개발을 합리화하는 국제 관광산업의 딜레마이자 여행의 불편한 그림자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치앙마이를 몹시 좋아하고, 머지않아 또 갈지도 모른다. 몇 년 안(아니 몇 십년)에 내가 엄청난 자산가가 될 공산이 크지 않은 현실을 봤을 때, 여전히 최저가 항공권을 찾고 숙소도 식당도 싸면서 만족도 높은 곳을 찾아 구글맵을 뒤질 것이다. 치앙마이 사람들의 친절과 미소가 변치 않았으면 좋겠지만 식당 종사자든 마사지사든 그들의 삶도 나아져 있길 바란다. 임금이 오르든 물건 값이 오르든, 마땅히 올라야 할 것들이 올라야 그들의 삶도 자연스럽게 나아지지 않을까? 3년 뒤, 5년 뒤 치앙마이 야시장을 갔는데 팟타이 한 그릇 값이 여전히 35바트라면, 신난다고 손뼉을 칠 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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