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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Mar 28. 2023

태국 산골의 겨울은 한국보다 춥다

차라리 우기가 나았던 치앙다오

언젠가 개그맨 김용명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내 팬들은 내가 더 유명해지길 바라지 않는다. 자기만 알고 싶다고.”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니. 인정한다. 유치하고 이기적인 팬심이란 걸. 하지만 대중은 안다. 국민 가수, 국민 여동생 같은 딱지가 붙거나 빅스타가 되면 덜 유명했던 시절의 기개와 감성 따위를 잃는다는 걸. 명성은 많은 희생과 변화를 요구하니까. 김용명만이 아니라 몇몇 뮤지션에 대한 마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다행히 김용명은 4차원 매력과 촌스러운 감성을 유지하고 있다.


여행지 중에도 그런 곳이 있다. 나만 알았으면, 더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곳 말이다. 태국 치앙다오가 그렇다. 치앙마이가 아니라 치앙다오. 한국인 사이에서 한달살기 여행지로 인기인 치앙마이는 치앙마이 주의 대표 도시다. 그러니까 치앙마이 주에는 다른 도시, 다른 마을도 많다는 뜻. 치앙다오는 치앙마이 시내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북부 산골마을이다. 태국 여행 깨나해봤다는 이 중에도 치앙다오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5년 전 여름휴가 때, 아내가 치앙다오에 딱 내 취향 숙소가 있다며 덥석 예약을 했다. 그리고 치앙마이 여행 중 사흘을 떼내 치앙다오에서 지냈다. 바로 그 숙소 얘기부터 해보자. 네스트(nest). 이름부터 감각적인데 숙소에 들어서면 정말 둥지처럼 포근하다. 태국에서 네 번째로 높은 치앙다오 산(2175m) 동쪽 500m 자락에 들어앉아 산의 보필을 받는 듯 아늑하다. 야자수와 사철나무 우거진 정원에 독채형 나무집이 뚝뚝 떨어져 있다. 객실 내부는 넓지 않다. 딱 필요한 것만 있다. 그래도 괜찮았다. 잘 때 말고는 밖에 있었으니까. 낮에는 카페 야외석에 앉아 새소리 들으며 커피를 마셨고, 부겐베리아와 온갖 꽃이 흐드러진 정원을 산책했다. 밤에는 푹신한 쿠션 의자에 널브러져 풀벌레 소리 벗 삼아 책을 읽었다. 하늘을 수놓은 별도 기막혔다. 치앙다오는 태국에서도 손꼽히는 별 관측 명소다.


음식 맛도 출중했다. 태국 전통음식부터 퓨전 서양식, 독특한 디저트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식당이 마땅치 않은 벽촌이기에 밥만 먹으러 네스트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대장부 같은 포스의 여자 주방장 손맛이 꽤나 정평이 나 있었다. 영어는 못해도 친절한 직원과 아양을 떠는 고양이도 정겨웠다. 그러니까 화려한 부대시설을 갖춘 호화 리조트가 아닌데도 먹고 놀고 쉬는 걸 다 해결할 수 있는 숙소였다.

그래도 숙소에만 머물다 갈 순 없었다. 유명 관광지 몇 곳은 가봐야 할 것 같았다. 하루는 썽테우를 타고 천연온천을 다녀왔다. 깊은 산속에 얕은 계곡물이 흐르는데 거짓말처럼 40도가 넘어 뜨끈뜨끈했다. 입장료도 안 내고 현지인 틈에서 몸을 지졌다. 다른 여행객은 모두 모터사이클을 타고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도?” 이륜차라면 학창 시절, 이모네 식당에 있던 걸 재미 삼아 몇 번 타본 게 전부였다. 다행히 변속이 필요 없는 스쿠터가 숙소에 있어서 싼값으로 빌렸다.


뭐든지 예쁜 게 좋은 법. 하늘색 스쿠터를 골랐다. 헬멧도 하늘색으로 맞춰 썼다. 첫 번째 목적지는 또 온천으로 정했다. 구글맵을 보며 찾아가는데 느닷없이 소나기가 퍼부었다. 금방 그칠 조짐이 안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살이 아플 정도로 비가 내리 꽂혔다. 한 해 중 가장 비가 많이 내린다는 8월 우기였다.

우리는 오토바이를 탄 채로 흠뻑 젖었다. 처음엔 이게 뭔 꼴인가 싶었지만 곧 ‘에라 모르겠다. 이 순간도 즐기자’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배꼽에서부터 짜릿한 기분이 차올랐다. 더위가 가셔 시원하기도 했다. 갑자기 텔레파시가 통한 듯 아내와 나는 2차선 시골길을 달리며 미친 듯이 큰 소리로 웃었다. 살짝 정신이 나간 광남이, 광년이가 된 것처럼 말이다. 비에 흠뻑 젖어본 게 언제였던가. 학창 시절, 아내는 비 맞으며 운동장을 하염없이 뛰는 걸 좋아했다던데, 그때로 되돌아간 기분이 아니었을까. 뭔진 몰라도 억누르고 있던 모든 것에서 일순간 해방된 듯한 쾌감. 우리는 목적지에 가보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렸고, 비에 젖은 생쥐 같은 몰골이었지만 어떤 여행의 순간보다 즐겁고 기뻤다. 꿉꿉한 몬순 날씨에는 이렇게 홀딱 젖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 같다. 밉고 괴로운 존재(습기, 습도)도 정면으로 맞닥뜨리면 겁냈던 것보다 시시한 것처럼.

이후 치앙다오에서 특별히 더 한 건 없었다. 터미널 근처의 저렴한 숙소에서 며칠 더 묵었고, 관광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식당에서 싸고 맛난 밥을 사 먹었다. 치앙마이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갔던 순간도 아련하다. 에어컨은 없고 천장에 선풍기가 달린 버스 안에서 야채호빵 비슷한 간식을 까먹었다. 승객 중에는 고산족도 더러 보였다. 1980년대 전원일기 그 자체였다.  


5년 뒤인 올해 2월, 다시 치앙다오를 찾았다. 네스트 객실이 일찌감치 동나 그때 묵었던 저렴한 숙소 ‘아잘레아 빌리지’를 2박 예약했다. 네스트 같은 감성은 없고 음식 맛도 훨씬 처졌지만 수영장이 있고 나름 전망도 준수한 숙소였다. 오랜만에 찾은 치앙다오는 그대로였다. 처음 왔을 때는 한산했는데, 팬데믹의 그늘이 걷히지 않은 이번에는 썰렁했다.

5년 전보다 더 무계획이었다. 체크인하자마자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영하 10도가 일상인 한국을 벗어나 따스한 햇볕을 쬐고 야자수 늘어진 수영장에 몸을 담글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공짜 바나나와 귤을 까먹으며 일광욕과 수영을 번갈아 즐겼다. 아내는 조금 춥다며 발만 담근 채 책을 읽었다. 스위스 노부부를 수영장에서 만났는데 그들과 한창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한데 아내의 표정이 안 좋았다.

“이제 그만하고 방으로 가자.”

“이분들 스위스 베른에서 오셨대. 우리 신혼여행 때 잠깐 머물렀던 도시 기억나지?”

“알았어. 근데 추워. 그만 가자.”

“이분들 이제 치앙마이로 가신대. 가볼 만한 곳 좀 추천해 줄게.”

“가자고! 제! 발!!”

“아… 미.. 미안해. 많이 안 좋았구나.“

이렇듯, 여행지에서 난 가끔 눈치를 상실한다. 아내가 한기가 들어 안색이 확연히 안 좋아진 걸 보고서야 나는 어색한 미소로 스위스 부부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자기는 외국인하고 수다 떠는 게 그렇게 좋아? 내가 그만 가자고 세 번, 네 번 말했잖아!!”

두통과 몸살로 기운이 뚝 떨어진 아내는 객실에서 타이레놀을 먹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아내는 계속 오들오들 떨었다. 약 기운 덕인지 아내는 잠깐 낮잠을 잤고 조금 회복한 것 같았다. 숙소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볶음밥과 똠카카이(코코넛밀크를 넣고 끓인 닭고기 수프)를 주문했다. 비위가 강한 나한테도 수프가 좀 비렸다. 아내는 몇 입 맛보고는 숟갈을 내려놓았다. 레스토랑을 나와 객실로 가는 길, 하늘에 별이 총총 박혀 있었다. 아내는 기운 없이 “별 참 많다”라고 말했다. 별을 볼 때만 해도 우리에게 최악의 밤이 몰려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내는 회복한 게 아니었다. 구토와 설사를 동반한 몸살로 사경을 헤맸다. 흐으으으으. 이빨이 덜덜 부딪칠 정도로 오한도 찾아왔다. 문제는 난방시설이 전혀 없는 숙소라는 점이었다. 프런트에 부탁해 이불을 한 겹 더 받았지만 서늘한 방 공기는 어쩌지 못했다. 나무집은 단열이 전혀 안 됐다. 밤 기온이 13도였는데, 노숙하는 기분이었다. 양말을 덧 신어도 발이 시렸다. 아무리 동남아라 해도 겨울인 데다 산골이어서 체감 기온은 훨씬 낮았다. 서울 집에선 한겨울에도 실내온도가 21~23도인데 말이다. 다운재킷, 핫팩을 안 가져온 걸 후회했다. 자, 여기서 꿀팁 하나. 겨울에 치앙마이나 더 북쪽으로 간다면 방한 채비를 단단히 하는 게 좋다. 냉난방시설을 잘 갖춘 호텔이나 고급 리조트라면 몰라도 독채형 숙소는 정말 춥다는 사실. 이상기후로 대만 같은 따뜻한 나라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람이 죽는 일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다.


날이 밝았다. 우리는 다시 수영장으로 갔다. 아침부터 수영하려는 건 아니었고 수영장이 볕이 가장 잘 들어서였다. 볕을 쬐니 살 것 같았다. 그래도 몸이 축난 아내가 하루만에 온전히 회복되는 건 불가능했다. 남은 1박을 취소하고 치앙마이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숙박비 환불이 안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치앙마이 도심의 싼 호텔을 예약했고, 다시 짐을 꾸렸다. 5년 전 그렇게 좋은 추억을 안겨줬던 곳인데, 두 번째 여행은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다니. 세상에는 아름다운 재회만 있는 게 아닐 거라 위무했다. 보고 싶던 친구를 십수년만에 만났는데 정작 서먹하고, 너무 달라진 모습에 ‘괜히 만났나?’ 후회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랄까.


“우리 그냥 가기 아쉬운데, 네스트나 가볼까? 밥 안 먹고 정원 산책만 해도 되고.”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썽테우를 타고 네스트로 갔다. 반가웠다. 네스트도 그대로였다. 그때는 여름이었고, 이번엔 겨울이었는데도 정원은 푸릇푸릇했고 온갖 꽃으로 화사했다. 아내의 얼굴이 밝아졌다. 한시름 마음이 놓였다.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직원을 보고 깜짝 놀랐다. 5년 전, 웃는 모습이 유난히 귀여워 아내와 기념사진을 찍었던 직원이었다. 그녀는 우리를 못 알아봤지만 우린 괜히 반가워 핸드폰 속 옛날 사진을 들춰 보여줬다. 직원은 쑥스러워했다. 그 모습이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근데 뭘 먹지? 아내는 속이 뒤집어진 상태였고, 나도 입맛이 없었다. 나는 비건 음식인 두부채소볶음을 주문했다. 아내는 태국에서 흔히 먹는 닭 육수로 끓인 죽 말고 흰쌀죽이 가능한지 물었다. 직원이 셰프에게 물어보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또 한 번 감격을 경험했다. 이렇게 맛있는 비건 음식은 처음이어서 놀랐고, 흰쌀죽은 생강을 넣어 정성껏 끓여서 내주었다. 5년 전 그 대장부 주방장이 주방에서 나왔다. “속 안 좋을 때는 생강을 넣어서 먹는 게 훨씬 좋을 거야. 내가 그렇게 먹거든.” 아내는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며 ‘코쿤카(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계산하면서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흰쌀죽 가격이 25밧(약 1000원). 그러니까 그냥 공깃밥 가격만 받았다.


우리는 정원을 찬찬히 산책하고 벤치에 앉아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햇볕을 쬈다.

“아, 여기 오니까 다 나은 것 같아. 근데 이제 치앙다오는 다시 오지 말자.”

“훗, 그래.”


자, 이상이 ‘나만 알고 싶은 여행지’인 치앙다오를 순순히 소개한 배경이다. 치앙다오는 너무 멋진 산골마을이다. 누군가는 혹할 만한 요소가 없다고, 너무 심심한 동네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게 도리어 이 마을의 매력이다. 한가로운 산촌의 정취가 그득한 동네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추천한다고 해서 선뜻 찾아갈 만한 곳도 아니다. 이 동네에 애정을 가졌던 우리도 마냥 아름다운 추억만 얻은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첫 여행 때는 더운 여름이자 습한 우기였다. 그때보다 나은 여행을 기대하며, 게다가 펜데믹 이후 첫 여행으로 야심차게 치앙다오를 찾았다. 한데 결과적으로 우기가 더 좋았다. 여행이 인생의 은유라는 말을 제대로 실감했다. 예상과 기대는 어긋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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