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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맘 Nov 20. 2023

2 우리 감정은 데칼코마니

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을 그렇게 즐겼던 것 같지는 않지만,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순간이 몇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데칼코마니 작품을 만들던 시간이었다. 8절 스케치북의 반 쪽 면에만 내가 원하는 색깔의 물감을 마음대로 칠하고 반을 접어 꾹꾹 눌렀다 펴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과물이 눈 앞에 펼쳐진다. 내가 그렸지만 엄밀히 내가 그렸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주체가 불명확한 자연적인 창조 행위에 매료되어 과제로 요구됐던 것 보다 몇 장을 더 그려보았던 기억이 있다.  


우리의 감정의 모양도 딱 데칼코마니와 같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느끼면 그 마음은 고스란히 내 안에 남는다. 사랑하는 마음 역시 그렇다. 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내면 그 긍정적이고 행복한 생명 에너지가 내 안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은 주변 사람들이 내가 마음을 어떤 감정으로 채우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본다는 것이다(!). 나의 감정 상태는 내 입 근처에 붙은 김 조각, 길어져버린 손톱처럼 결코 숨길레야 숨길 수 없는 물리적 현실로 실제 세계에서 기능한다.


‘세계를 사랑하세요’라고 하면 뭔가 위대한 사람만 하는 그런 성스러운 행위처럼 느껴지는데 그렇지 않다. 누구나 지금 당장 여기 이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내가 접하는 것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마음 뿐이다. 내 몸이 수집하는 모든 감각 정보 전체가 결국 나임을 알고, 내가 처해있는 세계 안 모든 것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려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내가 가 닿고 싶은 마지막 목적지,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명제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게 된다. 아침 출근길 내가 겪었던 실제 마음 작용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캐롤을 들으면서 오전에 할 일을 기분 좋게 처리하기 위해 작업실 대신 샛강역 스타벅스를 찾아가는 길. 11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한겨울 뺨치는 한파가 불어닥쳐서 며칠 째 몸을 잔뜩 웅크리고 걸었었는데, 오늘은 약간 그 기세가 누그러졌다. 수축했던 몸이 약간은 펴지면서 움직임이 더욱 말랑말랑해진것 같아서 저절로 기분이 가벼워진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충분히 물들지도 못하고 반은 초록색 반은 노란색인 채로 바닥에 떨어진 은행잎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가을도 가는 건가.’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아침부터 바지런히 쓸어내 길 한 쪽에 모아둔 낙엽 더미를 일부러 몇 번 밟아본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낙엽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온다. 맞은 편 건널목에서 힘차게 걸어오는 4살 정도의 남자아이가 입은 청록색 호랑이 기모 트레이닝 팬츠가 깜찍하다. 남자 아이들의 걸음 걸이는 늘 생명력이 넘친다. 이 아이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들이 씩씩한 표정으로 힘을 합쳐서 움직이고 있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기분이다. 아이처럼, 나도 여의도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긴다.


내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면 나는 사랑의 존재가 되고, 내 마음을 분노로 가득 채우면 나는 분노의 존재가 된다. 하지만 요즘 사회 곳곳에는 개독교, 급식충, 맘충, 좌빨, 2찍, 국뽕, 맘충, 지잡대 등등 혐오의 표현이 넘쳐나 염려스럽다. 상대방에게 칼날 같은 마음을 품으면 결국 그 칼날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강도로 나를 찌른다. 자존감을 북돋우기 위해 아무리 거울을 보며 나를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명품 가방으로 나를 치장하고, 혼자 여행을 떠나서 맛있는 주스를 마셔봐도 소용이 없다. 나를 제외한 모든 세계를 혐오한다면 결국 나의 감각 작용, 전체로서의 나는 헤어나올 수 없는 괴로움으로 물들게 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제멋대로 뛰노는 망아지 위에 올라탄 사람처럼, 아무리 고삐를 다시 고쳐 잡아도 내 마음은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이쪽 저쪽으로 출렁인다. 스타벅스에서 콘센트 두 개를 모두 차지하고 핸드폰과 노트북을 충전하고 있는 사람에게 눈을 흘기게 되고, 몇 달 만에 다시 1000원이 오른 단골 백반집 메뉴판에 상심하게 되며, 버스에서 하이힐에 발을 밟혀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그러진다. ‘도대체나는 뭐가 문제인 걸까. 내 마음 하나도 다잡지 못해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모습이 한심해.’ 세계를 사랑해보려 시작한 노력인데, 이런 자기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뇌과학이다. 우리 마음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과학적 이유가 있다는 사실!


다음 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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