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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맘 Dec 06. 2023

7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들어도 괜찮아

<3 ‘완벽한 엄마’라는 완벽한 허상>이라는 글 이후 그 다음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좀 뜸을 들였다. 아직까지도 곧바로 뛰어들기에는 조심스러워지는 이야기였나 보다.

 

나 자신에게 질문해보았다. “나는 어떻게 머릿속에서 계속 나 스스로를 공격하는 ‘육아의 정답’을 내려놓을 수 있었지?” 내 안에서 떠오른 대답은 이거다. “그때였잖아.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들어도 된다는 걸 인정했을 때. 그런 마음이 들어도 정말로 괜찮다는 걸 알았을 때 말이야.”


아이를 출산한 이후 초기 육아 과정은 정말 혼돈의 도가니였다. 나는 잠이 부족하면 기본적인 일상생활이 전혀 되지 않는 유명한 잠순이였는데, 아이는 생후 40일부터 분유 수유를 거부했다. 딱딱한 젖병의 질감이 실은 건지, 분유 뿐만 아니라 모유를 유축해 젖병에 담아 먹이는 것도 절대로 싫다며 아이는 자지러졌다. 분유도 먹지 않고, 모유를 모아둘 수도 없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나와 아이는 사바나 초원의 포유동물처럼 12개월 동안 딱 붙어서 24시간을 함께 지냈다. 밤낮 구분 없이 두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젖을 찾는 아이에게 수유를 하고 30분 동안 잠투정을 하는 아이를 달래 재우는 고난의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나서는 이 에너지 넘치는 사내아이를 계속 살려두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즐겁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롯데리아로 들어가는 도중 갑자기 손을 뿌리치고 방향을 유턴해 ‘꺄하하, 나 잡아봐라!’ 외치며 차도로 뛰어드는 일도 있었다. (다행히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오,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주차장 맨 바닥에 드러눕는 일 또한 예사였다.


아이는 예뻤지만, 동시에 미웠다.


그런데 나는 내 아이에게 이런 부정적인 마음을 품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나의 이런 마음이 아이의 마음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것 같아서 불안했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자책하고, 그런 동시에 이런 마음을 아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억지로 웃을 때가 있었다. 꾹꾹 화를 누르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이 넘으면 분노가 폭발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런데 나의 이런 불안과는 아무런 관계 없이 시간은 흘렀고, 아이는 잘 자랐다. 11살이 된 아이는 반골 기질을 타고난 나와 무욕의 사나이인 남편을 거의 닮지 않았다. 직설적인 표현 대신 자신의 의사를 돌려 말하는 어투와 사회적 & 물적 성공에 대한 욕망, 군중 속에서 돋보이고 싶어하는 마음까지 시아버님과 남편의 남동생 성격을 무척 닮았다. 아이는 안달복달하는 내 마음과는 전혀 관계 없이 딱 자기가 타고난 대로 자라고 있다.


어느 날은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있는 아들의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 아이가 지속적으로 너를 낮추는 말을 계속하면 너한테 영향이 갈 수 밖에 없어.’라며 걱정을 했더니 아이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엄마, 나는 낮춰질 수가 없어!”


아이는 난대로 큰다. 나의 역할은 그냥 난대로 크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옆에서 바라보고 즐겁게 감상하는 것 뿐. 엄마의 역할을 과장하고 그 무게에 힘들어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의 고유한 생명력, 아이의 타고난 성향, 아이의 무의식 작용을 믿고 맡겨 놓으면 무조건 엄마에게 개이득이다. 나는 내 삶의 과업에 집중할 수 있고, 동시에 아이는 자유로워진다. 불안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이것 저것 사교육을 쏟아붓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돈도 적게 든다. 아이와의 갈등이 줄어들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진다.  


“얘는 결국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될테니까, 흥!”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갔고, 나는 오늘도 이렇게 중얼거리며 샛강역 스타벅스로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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