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버스 탈 때는 하차벨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버스의 종류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식빵처럼 생긴 봉고차보다 조금 더 큰 버스이고, 다른 하나는 큰 사각형처럼 생긴 한국의 일반버스보다는 1.5배 정도 큰 저상용 버스이다.
처음 내가 탔던 버스는 '식빵 버스'였다. 식빵 버스를 타려면 정류장에서 택시를 부르듯이 손을 흔들어야 한다. 탈 때는 5 마오짜리 동전을 내야 한다. 버스 안에는 옛날 한국 버스처럼 직접 돈을 받고 하차까지 시켜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5 마오를 내고 한 자리에 앉아 내가 내릴 정류장까지 기다렸다.
"下一站有没有下的? (다음 정류장에 내릴 사람 있어요?) "라고 말하면 있다고 말해야 내려준다.
내가 내릴 정류장이 다가오자 " 有人下! (내릴 사람 있다)"며 운전기사한테 말을 하는 아저씨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有!(내릴 사람 있어요! )"라고 말해버렸다. 그때가 중국에 온 지 한 달 차였다. 내 귀에는 내릴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는 걸로 들렸던 것이다. 그때 그 아저씨는 나를 몇 초간은 바라보면서 '저 아이는 뭐지?' 이런 표정을 지었다.
우여곡절 끝에 버스에서 내렸다. 아직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 다음 정류장에 내리게 되면 한참은 길을 헤맬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는데, 긴장감이 풀렸다. 다음번에는 저 버스는 절대 타지 말아야겠다 마음먹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나서는 매번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그때 학교 근처는 식빵 버스가 없는 구역이라 큰 버스만 탈 수 있었다. 큰 버스는 재밌게도 모든 버스 정류장에 멈추었다. 하차벨이 없는 대신 타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애초에 매 정류장마다 선다. 그래서 나같이 소심한 사람이 식빵 버스를 탈 때처럼 내리냐는 질문에 대답을 안 해도 돼서 좋았다.
버스비는 1위안만 내면 됐다. (도시마다 버스비가 다른데 보통은 2위안 정도 한다) 간혹 1위안이 없어서 5위안짜리를 낼까 했다. (중국의 화폐는 1/5/10/20/50/100 단위로 되어있다) 한 번은 옆에서 친구가 보더니 이 버스는 거스름 돈도 안 준다면서 1위안을 빌려준 적도 있다. 당시에는 교통카드라는 게 없어서 무조건 현금을 내야 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12번, 19번 버스가 있었는데 하교할 때 느긋하게 바깥 풍경을 보고 싶으면 19번 버스를 타고는 했다. 둘러서 가서 15분 정도 더 바깥을 구경할 수 있었다. 다른 학교도 거쳐가서 교복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때는 공부만 해야 하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게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하차벨이 없어서 빠르게 달리지는 않았다. 하차벨이 없는 덕분일까, 거북이처럼 가는 버스 안에서 밖을 구경하는 재미로 느긋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한국으로 와서 타는 버스는 하차할 때가 되면 하차벨을 누르고 빨리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빠른 속도로 달려서 밖이 어떤지 잘 볼 수는 없었고, 정말 교통수단으로써 버스를 타는 게 전부이다.
반면에 내가 중국을 떠나기 전까지도 중국 버스는 정류장마다 멈춰서 급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나를 느긋하게 만들어 주고는 했다. 그때는 마음의 여유로움을 버스를 통해서 배우고는 했는데, 지금도 가끔은 일상의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버스를 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