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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구름 Mar 16. 2024

불확실의 시대에 확실한 웃음을 주는 것도, 핑계고!

핑계고, 유튜브 패러다임을 부수다

우리는 지금 불확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개천에서 나는 용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육각형 인간을 추앙하는 시대.


그래서인지 보장되지 않는 성공을 위해 

피땀 흘릴지언정,

'차라리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게 낫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게된다.


회빙환, 회귀 빙의 환생이라는 세가지 인기 장르는

우리의 이 자조적인 포기를 

먹고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이토록 안개가 드리운듯 불투명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핑계고'라는 

콘텐츠에 빠져든게 된걸까?


핑계고의 첫 컨텐츠 무려 '공원'에서 떠들어 제끼는 영상이다.


2022년 11월, 유튜브 생태계에 혜성처럼 

유느님이 강림하셨다.


사실 이 자체는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유재석이라는 시대의 아이콘이 

유튜브 콘텐츠를 할 것이란 건

누가 나서서 말은 안해도 언제가 그럴 수 있다는 

무언의 짐작을 다들 했으리라.


그런데 이럴 줄은 몰랐겠지.

어떤 특이한 포맷도, 컨셉도 없이

"산책은 핑계고" 라는 말에서 

핑계고라는 제목과 핑크색 닭 캐릭터가 등장해버린다.


사실 처음엔 좀 의아스럽기도 했다.

'핑계고'라는 단어가 신선하긴 했지만 

키치한 스타일의 로고와 유재석이라는 캐릭터가

어딘가 맞지 않아 보였고, 


주기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닌 

시간 날 때만 올리겠다는 말에서

제작진 또한 이 콘텐츠의 수명을 

예측하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대되긴 했다.

유재석이라는 사람이 편하게 떠들어 제끼겠다니,

그동안 수없는 방송에서 큐카드를 들거나 

작가가 써준 스케치북을 훑어 읽는 게 아니라

정말 '진짜 모습'을 더 볼 수 있으려나? 했다.



그렇게 '진짜'가 터졌다.


아침 8시에, 

어느 회사에 조촐하게 마련된 사무실 한 구석.


멀끔히 정장을 차려입은 채로 

유재석과 조세호, 남창희가 만나니

안봐도 벌써 재밌는 격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스타 유재석도

저렇게 소박한 곳에서 아무 이야기나 

다 한다고 하니까

왠지 모르게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거다.


참 이상한게 어디 화려한 스튜디오에서

격식을 갖추고, 제작진이 정해주는 

처음 본 얼굴의 누군가를 만난다면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잘됐으면 하는 마음' 같은 것.


대놓고 우리가 아직 PPL이 없고, 

제작비가 부족해서 사무실을 촬영장소로 쓰며

게스트에게 출연료 대신 소정의 선물을 드리겠다, 

라고 말해주니까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이 처음 살림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며 응원하게 되는 심리가 일었다.


출처: 뜬뜬, <설 연휴는 핑계고> (무려 1182만회)


그러던 중, 

가장 빵 터졌던 건 바로 <설 연휴는 핑계고>


배우 이동욱이 핑계고에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다. 


'누가 나오느냐'가 조회수를 만드는 유튜브 세계에서의 

법칙이 제대로 통했다.

이동욱이 후줄근한 후드티를 입고 

사무실 방바닥에 앉아 

본연의 모습 그자체를 드러내며 떠들어 제끼는 

상에 많은 이들이 재미를 느꼈다.


여기서 포인트는 이 모습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라는 것.


전형적인 토크쇼라 하면,

-하얗고 부담스러우리만큼 밝은 스튜디오

-의자 두개 놓고 

-잔뜩 빼입은 MC와 게스트가

-뻔한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는 것

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모습은 그런게 아니다.

'진짜' 스타의 편한 모습. 

정말 우리처럼 방구석에 앉아

떡라면에 스프가 먼저니 면이 먼저니 하면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는게 우리의 진짜 욕망이었다.


핑계고는 무려 최초로, 

이 진짜 토크쇼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핑계고는 

최초의 진짜 토크쇼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았다.


더 작은 편집실 구석에서 

짧게 진행하는 'mini핑계고',

남창희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요리에 집중하는 '실비집'과 같은

스핀오프를 내보이는 것도 알뜰살뜰히 챙겨나갔다. 


(마치 세일이며 쿠폰이며 

다 잘 챙기는 살림꾼의 모습을 보는 기분이었달까)


이뿐 아니다. 

(정말 가히 천재라 불러드리고 싶은 제작진)



스타가 토크를 하는데, '쿠폰제'라니.

그러니까 3번 나올 때부터 

소정의 출연료를 지급해드린다는 시스템은 사실

부족한 제작비에서 나온 운명적인 재미 포인트다.


돈이 없으니, 유느님의 인맥을 

활용하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지만


쿠폰을 활용하니 게스트들이 2번째 방문까지는 

출연료도 받지 않은 채 정말 대화를 하게되는거다.


'출연료 없는 토크'이기 때문에, 

본인이 꼭 해야하는 말이나

제작사나 방송국에서 정해준 틀이 더 사라지게된다.


또한 '동심'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초등학교 때 사물함 앞에 

칭찬 포도알 스티커를 붙이듯이

하나씩 소중하게 모으는 돈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1개 공짜도 아닌 어떤 무형의 가치.


예를 들면 만남이라든지, 

교류와 같은 것을 형상화한 결과물이

쿠폰에 찍어주는 도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상하게 저 쿠폰이란 존재에

게스트들도, 구독자들도 묘한 재미를 느낀다고 본다.


출처: 뜬뜬, <커피 두세 잔은 핑계고>



말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종이 만화를 연상케 하는 자막 효과.


처음 봤을 땐 충격이었다.

기껏해야 궁서체를 활용하면 

창의적이었던 유튜브 판에

만화 자막이라니 (?) 이 덕분에

보고있으면 정말 잘 만들어진 

코믹 만화를 보는 기분이 든다.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까지 디테일을 챙겨주시니

핑계고만의 정체성이 더 살아나버림을 느꼈다.

봉준호 감독이 봉테일로 불리듯이, 

핑테일이라 불러드리고 싶을 정도..


이밖에도

-미드폼이 마치 유튜브 성공의 법칙이 된 것 같았던 판에

'1시간' 내외의 롱폼을 들고 온 것

-취향의 시대임에도 취향을 타지 않는 '떠들어 제낀다'는 소재를 표방하는 것


이것들이 <핑계고>가 결국

어떻게 보면 가장 소박하고 작아보이는 외관으로

유튜브 생태계를 한번에 파괴해버린 '작은 거인'이 된 비결이 아닐까.



핑계고는 끝없이 발전 중이다.


어떻게 이런 성실한 달란트를 주셨을까 싶을 정도로,

게스트들의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스핀오프를 만들어낸다.


이동휘의 <산책의 효능>, 

이상이의 <핑계고 1열 직관> 등등은

핑계고라는 오리지널 콘텐츠와 비슷한 무드 안에서

게스트의 매력을 진한 사골 우리듯 더 깊이 파고들어 보여준다.


술도 마시지 않고, 이른 아침에 촬영해도

'진짜'를 담을 줄 아는 <핑계고>는

결국 무자극과 무논리를 적절하게 버무려

유튜브 콘텐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면

불확실의 시대에

이렇게 건강하고 확실한 웃음을 주는 핑계고는

굳이 머리 쓸 필요 없이

무장해제한 채로 긴 러닝타임을 다 볼 때까지

N번 재생하게 만드는 편안한 재미를 주고 있다.


말하자면 마라탕과 포케가 

동시에 유행하게 된 것처럼,

도파민을 달라!!!! 외치는 우리들이 

지쳐 돌아갈 수 있는

편안하고 건강한 콘텐츠가 바로 <핑계고>가 아닐까.


중심이 완고히 잡혀서는 자랑 한 점 없이

무해한 웃음을 주시는 <핑계고> 제작진과 유재석 님께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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