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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석문 Jun 14. 2020

전시하지 않고 응시하는 삶

   영화 <조조 래빗>에는 특별한 시선이 있다.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독일의 어느 마을이다. 주인공인 어린아이 조조는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고 있다. 조조는 잘못된 관념에 사로잡혀 있지만 다행히도 현명하고 사려 깊은 엄마의 보살핌 아래 자신의 인간성을 지켜내고 있다. 어느 날 그들은 마을 광장에서 나치에 대항하다 교수형 당한 사람들의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조조는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언제나 친절하고 따듯하게 조조를 대하던 엄마는 그 순간만큼은 냉정한 표정으로 조조의 얼굴을 강제로 돌려 끔찍한 광경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한다.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폭력적인 방식으로 타인을 전시하는 태도와 부당한 죽음과 고통을 응시하는 자세의 충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전시하는 태도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타인으로부터 감정과 생각을 이끌어내 그 본래 의도를 달성하려 한다. 이에 반해 응시하는 태도는 목적과 의도 없이 그 순간의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당당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거의 모든 것들이 전시되는 세계에서 응시하는 삶은 가능할까. 목적성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 되는 오늘날, 그저 두 발로 선 채 조조와 함께 타인의 죽음을 결연한 표정으로 응시하던 그녀의 눈빛이 마음을 흔든다.




커버 이미지: 르네 마그리트, <Not To Be Reproduced>,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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