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 억울함, 미안함, 애증의 모녀관계
이 책은 작가가 상담실에서 만난 여러 모녀의 이야기, 작가 본인의 결혼, 육아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으면서 나와 엄마와의 관계가 떠올라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나는 엄마로부터의 정신적 독립을 간절히 원했지만 아직 완전한 정신적 독립을 하지 못했고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모녀관계가 존재한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이상적인 모녀관계는 같이 쇼핑도 가고 목욕탕도 가고 여행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수다도 떠는 마음이 잘 통하는 단짝 친구같은 관계이다. 많은 엄마들이 이런 모녀 사이를 꿈꾼다. 하지만, 실상 많은 모녀관계는 엄마의 간섭과 잔소리와 이에 반항하는 딸이 툭하면 싸우고 화해하고 서로를 미워했다 사랑했다를 끝도 없이 반복하는 애증의 관계이다. 딸은 내 힘든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고 간섭과 잔소리를 퍼붓는 엄마가 답답하고 미웠다가 또 엄마가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엄마를 미워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양가감정으로 힘들어한다. 엄마는 행여나 딸이 잘못될까봐 더 잘 되라고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조언을 했는데, 틀린 말도 아닌데 왜 말을 듣지도 않고 무조건 간섭하지 말라고 밀어내는 딸이 괘씸하고 서운하다. 엄마의 딸이기도 하고 내 딸들의 엄마이기도 한 나는 엄마의 입장과 딸의 입장이 다 이해가 가서 더 혼란스럽다. 엄마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엄마의 딸로서 서운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내가 엄마와 나 자신을 분리하고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은 첫째 아이를 출산한 후였다. 중2병이 중2에 오는 것도 축복이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나는 서른이 넘어 철지난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었다. 나는 이렇다할 사춘기를 겪지 않고 커서 결혼해서 애 낳을 때까지 엄마 말 잘 듣는 딸이었다.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도 엄마에게서 정신적 독립을 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엄마는 외향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었고 나는 내향적이고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엄마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엄마의 아바타같은 순종적인 딸로 자랐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도 내 자유의지를 존중하지 않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이 알게 모르게 쌓여갔다. 사실, 엄마의 순종적인 딸이기도 했지만 엄마와 목욕탕도 가고 쇼핑도 가고 수다도 떠는 친구같은 딸이기도 했기에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을 외면해왔다. 그 감정이 첫째 아이 출산 후, 산후조리를 해주러 온 엄마와 두어달 가까이 하루종일 붙어지내던 어느 날 폭발해버렸다. 산후 호르몬의 노예가 된 상태에서 오랜 기간 억눌러온 감정이 한 순간에 터져나온 나는 시뻘건 용암을 내뿜는 활화산처럼 엄마에게 모진 말을 쏟아냈다. 그 날 이후로도 함께 지내는 내내 어려서부터 서운했던 일들을 줄줄이 읊어대며 엄마를 원망했다. 이런 사소한 사건들까지 다 기억하고 있었나 싶어 스스로도 놀랐고 엄마도 상당히 놀라셔서 어쩔줄 몰라하셨다. 그리고 그런 뜻이 아닌데 오해한 거라고, 네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라고 변명하시는 모습에 나는 더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었다. 그렇게까지 화가 났던 건 엄마의 칭찬과 인정을 갈구하는 어린 아이가 아직 내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시절의 많은 부모님들이 그랬듯 우리 부모님도 내가 잘한걸 인정하고 칭찬하시기보다는 잘못하고 아쉬운 점을 지적하고 더 발전시키려고 하셨지만 그건 나에게 낮은 자존감이라는 역효과만 불러왔다. 엄마의 입장은 사랑도 많이 주고 칭찬도 많이 해줬는데 너는 그건 기억 못하고 서운한 것만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서로의 입장 차는 좁히지 못했지만 엄마는 그 사건을 계기로 그래도 솔직한 네 마음을 알게 됐다. 이렇게라도 털어놔서 네 마음이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나는 엄마와 거리를 두고 엄마에게서 나를 분리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은 늘 불편했다. 엄마는 전보다 조금 조심은 하셨지만 여전히 나를 엄마 품에 있는 어린 아이로 대하셨고 나는 엄마를 밀어내기에 바빴다. 엄마는 나와 당신을 동일시하며 엄마의 꿈을 나에게 투사했고 그 꿈을 이뤄주지 못한 나는 영원히 엄마에게 부족한 딸일 수 밖에 없었다. 더 속상한 건 그렇게 엄마를 원망했으면서도 나도 사랑을 퍼주어도 늘 사랑과 칭찬에 목말라하는 내 딸에게 나도 엄마처럼 칭찬으로 시작해 지적으로 끝나는 잔소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잘하는 것만 칭찬해주고 인정해주면 될텐데 다른 것도 잘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엄마를 원망하던 내가 내 딸에게 엄마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게 너무 소름끼쳤다. 그런 내 모습에 나는 또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다. 엄마가 나에게 칭찬과 사랑만 무한정 주었다면 나도 딸에게 그렇게 해주었을텐데 하면서... 그래서 한동안 엄마에게 전화도 하지 않고 전화가 와도 그냥 안부만 간단히 묻고 매정하게 끊어버렸다. 그렇게 몇 년간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한 끝에 지금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것이 올바른 관계인지는 모르겠다.
딸들이 커서 성인이 되고 나처럼 나이들어갈 때, 내가 엄마와의 관계로 힘들어했던 일들을 내 딸들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엄마와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해서 롤모델이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엄마와 나처럼 너무 가까워서 상처를 주는 사이가 되지는 않도록 내 마음을 끊임없이 다잡아야겠다. 아이들이 꽃길만 걸어가게 모든 장애물은 없애주는 엄마가 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엄마로서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도 달라져야한다.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나와 분리된 독립적인 개체임을 잊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진로와 인생을 결정하는 사람이 되도록 한발짝 떨어져서 지켜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다만, 언제든 힘들면 쉬어갈 수 있는 나무그늘같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나는 내 일을 하고 너는 너의 일을 한다. 나는 너의 기대에 맞추려고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니며 너는 나의 기대를 이루려고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만난다면 좋을 것이다." - 프리츠 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