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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동윤 Mar 25. 2023

뭍에 오른 바다거북

독서가 갖는 느림과 거북의 걸음은 맞닿아 있다.


거북은 날 때부터 거북이걸음으로 걷는데 가끔은 몇몇 동물들이 찾아와 저들 걸음을 따라 하라며 건든다. 그들과 나의 방황이 같다. 거북은 입을 꾹 닫는다.


고백하자면 물을 벗어나 뭍에 오르는 다른 거북들을 보면 저들은 왜 육지로 오를까, 하는 궁금증으로 고행하는 그들의 짧은 뒷다리를 째려본 적이 있다. 헤엄칠 운명을 지고 태어난 이들이 온몸으로 중력을 받으며 걸음을 내딛는 모습들. 등딱지를 이고 내딛는 걸음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궁금증을 참기 어려울 때면 같은 거북임에도 그들 가장 가까이로―이를테면 뭍과 가장 가까운 해안가―다가가 그들 꽁무니에 대고 외쳤다.


"무엇을 위해 걷습니까. 당신은 거북입니다!"


거북들은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기어갔다. 돌아보는 이는 없었다. 간간이 하얀 모래언덕 위로 거북들이 토하는 작은 신음이 들렸다. 뭍에 나오니 등딱지가 무거웠다. 잠시 바닷속으로 들어가 휴식했다. 무시당한 나는 약이 올랐다. 수면 위로 머리만 내놓고 더 크게 외쳤다.


"당신은 거북이라고요!"


매일같이 뭍 가장 가까이에서 외치길 수어 번. 여전히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중력에 적응했는지 몇몇 거북들은 등딱지가 짓누르는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근육이 생긴 듯 더욱 힘차게 앞으로 내닫았다. 간혹 오랜 시간을 제 자리에 처박힌 거북도 있었는데 낮과 밤이 바뀌길 수어 번 그들은 같은 자리에 바위처럼 가만히 존재했다. 햇빛과 달빛이 메마른 거북의 등딱지 위로 우주의 나선을 새겼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이어갔다.


뭍으로 나간 거북들은 각기 다른 시간을 부유하다 해안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들에게 더는 기대가 생기지 않았다. 모래톱을 당당히 건넌 거북들 중 내 가장 가까이로 지나간 거북이 자신의 지혜를 나누고 싶은 양 나를 쳐다보다 물음이 없자 그대로 바다 저 멀리 헤엄쳐 들어갔다. 가득 낀 눈곱과 터진 실핏줄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그 눈망울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게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질투는 나를 잠식했고 그 낯선 웅덩이 속에서 내가 가진 물갈퀴는 쓸모없어 보였다. 악에 받쳐 외쳐댄 탓에 스스로 고립된 나의 주변으로. 물아래로 돌아가는 거북들이 있고 뭍 위로 걸음을 내닫는 거북들이 있다. 그들은 아랑곳 않고 자신의 걸음을 뻗었다. 순간 오기 때문인지 지느러미가 까딱 움직였다. 이까짓게 뭐라고. 해안 위를 정복하고 싶은 모종의 욕구가 생겼다. 


거북들이 오르내리는 이유는 중요치 않았다. 이제 내가 뭍을 오르길 바랐다. 단단히 약이 오른 나는 그들처럼 뭍 위로 발을 뻗었다. 바닷속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던 새로운 오감이 엄습했다. 발바닥으로 따갑게 느껴지는 수백 개의 모래 알갱이, 물속에서 느낄 수 없었던 벽돌색 지면의 축축함. 나를 짓누르는 등딱지의 무게. 뭍으로 기어 나온 이상 평생을 저항해야 할 책임이었다. 산산한 바람이 얼굴 피부를 스치며 수분을 빼앗았다. 메마른 피부에 얼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살갗이 뜯기는 고통. 등딱지를 이는 경추가 조여 점점 호흡이 가빴고 그럴수록 고개는 아래로 처졌다.


불현듯 대답 않고 침묵했던 고개 숙인 거북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이 모든 새로운 감각에 적응하며 힘겹게 한 걸음 내닫을 때에 나는. 어디에 에너지를 쏟고 있었나.


"당신, 무엇을 위해 걷습니까. 당신은 거북입니다!"


뭍을 오른 지 삽 시간도 채 안 돼서 답변을 채근하는 외침이 있었다. 뒤돌아볼 여력이 없어 대답을 강제로 유보했다. 언젠가 고행을 마치고 뭍으로 돌아올 때는 일러주리라. 결국 당신 스스로가 짊어질 물음이라고.


성장과 안정, 욕심과 멈춤. 꿈과 나이. 수많은 명사들이 순환하며 선택을 강요하는 혼란한 세상에서. 거대한 컴퍼스 바늘 가장 뾰족한 부분이 꽂힌 중심을 당신은 알고 있다. 축의 가장 윗부분, 그러니까 작은 원기둥으로 봉긋 솟은 손잡이를 집게손가락으로 눌러 휘돌리면 호를 그릴 수 있다. 흑연이 지나간 자국 안쪽 부분은 당신이 경험한 세계다. 명사와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들은 그 안에 갇혀있다. 선택보다 중요한 건 호의 지름을 넓히는 것. 다행히 당신의 첨탑은 굳건하다.


여전히 아침이면 집 앞 스타벅스로 출근해 책을 편다. 그곳에는 거북들이 많다. 나는 느리게 책장을 넘기고 두 귀로는 거북들의 걸음 소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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