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니 Aug 21. 2022

문과, 30대, 비전공자, 이방인
개발에 뛰어들다

내가 개발자가 될 수 있을까?



사실 난 20년 전에 코딩을 독학했었다


각종 포털사이트가 각축을 벌이던 2000년대 초반, 우리집에도 컴퓨터 1대가 있었다. 지금은 레트로 가게에서나 볼 수 있는 뒷통수가 심하게 짱구인 모니터는 투박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때 그시절엔 최첨단을 달리던 기계였다. 엄마는 오빠와 사이좋게 컴퓨터를 나눠쓰라했지만 흔한 남매들이 그렇듯 컴퓨터는 대부분 오빠차지였고 나는 오빠가 집에 없을 때나 맘놓고 쓸 수 있었다. 그 시절 내가 가장 즐겨 들어가던 곳은 '장미가족의 태그교실'이라는 다음 카페였다. 초중딩때 이 카페를 들락거린 사람이라면 필히 나와 동년배일 것이다.


장미가족의 태그교실에는 인터넷 태그를 알려주는 게시물이 올라왔었다. 나는 혼자 게시물을 따라하면서 내가 올린 게시물의 글자 색깔을 바꿔보고, 글자를 좌우로 움직여보면서 신기해하고 재밌어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중학교 고학년이 되어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서서히 장미가족의 태그교실 카페에 발길을 끊게 됐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20년전에 코딩 독학을 했던 것이다. (그때 코딩 공부를 계속 했어야 했는데!)



30대 무경력 무기술자 


장미가족의 태그교실에 발길을 끊고나서 난 영락없는 문과의 길을 걸었고, 어쩌다보니 지금은 남편과 함께 호주에 사는 30대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 다녔지만 출퇴근은 지옥이요, 회사일은 노잼이었고 늘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2021년, 난 호주에 와서 한동안 해방감에 취해 살았다. 


5개월만에 해방감에서 깨어나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호주 렌트비를 감당하려면 나도 일을 해야했다. 하지만 호주 시장에서 나의 위치는 최하위층, 30대 무경력 무기술자일뿐이었다. 이런 내가 갈 수 있는 자리는 매우 한정적이었고 또 다시 안정적인 한인 회사에 취업해서 돈을 벌고 있다. 어느 날 보니 내 모습이 참 웃겼다. 한국에서 그렇게 회사를 벗어나고 싶어했는데 돌고돌아 비슷한 결의 한인 회사에 또 들어오다니. 전문성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어느 때보다 간절해졌다.



문과, 30대, 비전공자, 이방인


그렇게 20년만에 다시 코딩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은 20년 전과는 다르게 문과, 30대, 비전공자, 이방인이라는 악조건이 따라붙었다. 학습이란 걸 졸업한지 10년 가까이 된 내가 '꾸준히 공부할 거예요!'라는 선언도 감히 못하겠다. 


그래서 일단 가볍게 시작해보려고 한다. 새로운 걸 배운다는 건 언제나 기대되고 재미있는 일이다. 잠시 부담감은 내려놓고 일단 공부해봐야지. 1년 뒤에 내가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지 장담 못하겠다. 하지만 왠지 지금보단 재미있는 일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