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리우드 입문기는 톰 크루즈의 영화를 보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늦은 오후 해 질 녘쯤 딱 어울리는 노래 'Take my breath away'가 울려 퍼지던 <탑건>을 본 적이 있는가. 잘생긴 배우, 파일럿이라는 생소한 직업, 고공비행의 아찔한 영상미가 웅장한 OST와 함께 어우러진 이 영화는 어린 내게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그 후 톰 크루즈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되었다. 그리고 뒤이어 개봉한 <칵테일>과 <레인맨> 역시 그의 잘생김 못지않은 선 굵은 연기와 주옥같은 OST로 또 한 번 뭉클했던 기억...
이렇듯 누구에게나 할리우드 영화에 꽂히는 시점과 작품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톰 크루즈로 시작해서 멕 라이언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는데, 여자인 내가 봐도 선녀 같은 외모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다양한 표정 연기도 압권이었지만, 그녀의 영화가 특히 좋았던 이유는 바로 '해피 엔딩'이라는 데 있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에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결말은 비록 지금은 입시지옥일지라도 종국에는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종래의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와 달리 '새드 엔딩'으로 끝나는 <시티 오브 엔젤>이 준 충격은 거의 배신에 가까웠다.
도대체 감독은 이 순수한 두 영혼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두고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지금 현재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거였을까? 아무튼 영화의 결말은 어이없이 끝나버렸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인생 영화로 등극할 수 있었던 건 두 배우의 애절한 연기와 아름다운 영상미, 그리고 감미로운 배경 음악이라는 세 요소가 잘 버무려졌기 때문이리라. 나는 이것을 '할리우드의 마법'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로스앤젤레스가 설레는 가장 큰 이유다. 바로 여기에 영화 산업의 성지, 할리우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로 인류의 보편적인 취미가 되어버린 영화 산업은 로스앤젤레스의 이 조그만 동네와 역사를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세기 뉴저지의 영화 특허 독점과 횡포에 대한 반발로 따뜻한 남쪽지역으로 밀려난 영화 산업은 오히려 이곳 할리우드에서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저렴한 임대료와 사시사철 온화한 날씨, 그리고 천혜의 대자연으로 둘러싸인 주변 환경은 영화 촬영에 더없이 적합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가 미국 영화를 통칭하는 건 아니지만, 20세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100년이 넘도록 영화를 만들어온 유구한 역사가 할리우드를 일개 지역명에서 영화계의 메카로 거듭나게 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 이름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세계적으로 할리우드 풍의 영화가 유행하는 소위 '할리우드 신드롬'을 낳았는데, 인도 영화를 일컫는 발리우드(Bollywood, 봄베이 영화)나 파키스탄의 롤리우드(Lollywood, 라호르 영화), 그리고 아프리카의 놀리우드(Nollywood, 나이지리아 영화)도 여기서 파생된 말이다.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할리우드가 있는 북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매체에서나 봐왔던 하얀색의 'Hollywood' 사인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파라마운트 픽처스 같은 대형 영화사 건물도 간간이 눈에 띄는데, 부산이나 전주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 갔을 때에도 이렇게 설레지는 않았건만, 이상하게 여기서는 나대는 심장을 당최 주체할 수가 없다. 이런 걸 보면 내가 생긴 건 이래도 어릴 때부터 (어쩌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축적되어 온 사상과 문화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비롯되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할리우드 대로에는 영화,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공헌한 유명인들의 이름이 바닥의 별 위로 촘촘하게 박혀 있다. 이 별들의 행진은 할리우드 스타의 손발 도장이 찍혀 있는 TCL 차이니즈 극장(TCL Chinese Theatre)까지 이어진다. 배우는 없는데 마치 그 배우를 직접 만나서 악수하고 사인까지 받은 기분이다.
TCL 차이니즈 극장 옆에는 그 유명한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돌비 극장(Dolby Theatre)이 있다. 입구의 좌우로 늘어선 기둥에는 그 해의 수상 작품이 새겨져 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영화 <기생충>이 4관왕을 휩쓸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동시에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덮치면서 극장가를 꽁꽁 얼게 만들 줄도 몰랐고. 극장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공간을 필요로 하는 업장의 대부분이 그럴 테지만, 한마디로 오프라인 공간계의 빙하기가 온 것이다.
하지만 영화계는 오히려 기존의 극장가에서 OTT 서비스로 발 빠른 패러다임의 전환을 일으켰다. 그 대표적인 수혜자가 바로 넷플릭스가 아닐까. 디즈니 플러스와 애플TV플러스가 뒤늦게 가격 경쟁으로 넷플릭스를 저지하고 있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관건은 플랫폼이 아니라 콘텐츠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플랫폼이 대세였지만, 이제는 여기저기 널려 있는 플랫폼에 어떤 정보를 올리느냐가 중요한 경쟁력이 된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아카데미 감독상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리스펙트하며 인용한 말이다. 거장의 영화를 보며 공부했던 봉 감독은 저 말의 힘을 믿었고, 그만의 창의적인 시도를 계속해왔다. 영화 자체의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제작하고 감상하는 방식까지도. 일찍이 '디지털 스튜디오'라 불리는 넷플릭스와의 합작을 시도한 것도 그의 선견지명 중 하나가 아니었을지.
나는 가끔 아날로그적인 정서가 그립다. 이는 오프라인이냐 온라인이냐 하는 플랫폼의 문제가 아니라, 할리우드가 '마법'을 보여줬던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그때 그 감성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초연결 시대가 되고, 셋톱박스를 넘어서는 서비스가 구현된다 해도 콘텐츠의 감동은 어디 가는 게 아니다. 영화 <기생충>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이유도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빈부격차를 '상징적으로 시의적절하게'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콘텐츠의 출발을 여기서부터 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