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한 파스텔톤의 책 표지에 엄마와 딸로 보이는 두 여인이 그려져 있다. 붉은 장미를 손에 든 이들은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분위기를 풍긴다. 흔히 모녀지간이라고 하면 살갑고 다정한 관계를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의외로 애정보다는 애증으로 엮인 사이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표지 속 인물들 역시 그러한 관계가 아닐까 짐작하며 책을 펴 들었다.
이 소설에는 한 가족이 등장한다. 사랑받고 싶은 딸과 외면하는 엄마, 그리고 이를 철저히 방관하는 아빠. 이들은 상처로 얼룩진 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누구보다 가까워야 할 가족의 사이가 어쩌다 이렇게 어긋나버린 걸까.
사고인지 자살인지 모를, 공영주택 4층에서 추락한 17세 여고생의 사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엄마의 고백과 딸의 독백이 번갈아 나오며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의 화자 중 한 명인 엄마는 어른이지만 내면은 아직 성장하지 못한 유약하고 의존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딸'의 자리에 남아 있길 원했지만 친정엄마의 바람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집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정원을 가꾸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것도 잠시, 비극이 그녀를 덮친다.
산사태로 집이 무너지며 불이 난 것이다. 사랑하는 엄마와 어린 딸 가운데 한 명밖에 구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여자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결과적으로는 딸이 살아남았지만 그 밤의 일은 침묵에 묻히고 모녀 사이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읍내로 장을 보러 갈 때면, 언덕집에서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길을 타도코로, 딸아이와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게 좋았습니다. (중략) 슬며시 뒤로 고개를 돌려 세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뻗어있는 것을 보면 마치 아버지, 어머니와 제가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 147p
'나한테는 어머니가 없는데, 이 아이에겐 있다. 엄마! 하고 부르면 대답해 주는 사람이 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사람이 있다. 어째서 이 아이에겐 있고 나한테는 없는 걸까? 난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 아이는 어머니를 잃은 내 마음 따윈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나한테 어리광을 부리는 걸까?'
- 147p, 148p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딸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사고로 엄마를 잃고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는 여자의 처지가 안타까우면서도 유아적인 사고에 갇혀 제대로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고 딸을 오해하며 미워하는 그녀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모녀의 위태로운 관계를 보면서 모른 척하는 남편도 비호감이긴 마찬가지였다.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 말투가 마음에 안 든다,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 소리 내서 설거지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 등. 할머니에게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화는 나도 풀이 죽은 적은 없었는데, 어머니에게 혼날 때면 내 존재 자체가 사라져 가는 것만 같았다. '나를 칭찬해 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내 존재를 인정해 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거울을 보면 여드름투성이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죽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엄마가 죽길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엄마가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엄마가 싫어하는 내가 나도 싫었을 뿐이다. (중략) 언젠가, 엄마도 날 좋아해 줄까?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다. 어느 쪽에서 무슨 생각을 하든, 다다르는 결론은 늘 똑같았다. - 347p, 348p
간절하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딸이 애처로웠다. 연년생 동생에게 부모님의 관심과 손길을 양보해야 했던 어린 내 모습이 떠올라 더 감정이입을 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내내 행복을 바랐건만 자기중심적인 부모 사이에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던 딸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독자들의 분노를 상승시키며 빠르게 비극으로 치닫던 이야기는 결말 부분에서 급선회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해체되었던 가족이 옛 모습을 되찾고 상처가 봉합되는 과정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아마도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딸의 모습과 현실 속 인물들이 겹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해서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고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현실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전무결하고 이상적인 존재가 아니기에 이런 결핍을 가진 자녀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왜 우리는 헌신적인 부모와 화목한 가족만을 모범답안처럼 여기는 걸까.
이는 우리가 지나치게 모성과 부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임신, 출산의 주체가 여성이다 보니 어머니에게 양육을 전담시키고 전적인 사랑과 희생을 강요해 왔다.
아버지에게는 가정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울타리로써의 역할을 요구했고 사회가 정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각종 미디어를 통해 노출시켰다. 이는 사람들에게 가족에 대한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를 갖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요즘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이런 획일적 관념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 책의 작가 역시 딸 같은 엄마와 엄마 같은 딸을 통해 모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모성은 자연스럽게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며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후천적으로 생성되는 것이라는 걸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부성도 마찬가지여서 현실을 회피하기 급급했던 남자 역시 시간이 흐르자 아버지의 자리로 돌아온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유년시절로 생각이 달음질쳤다. 어릴 때 내 눈에 비친 엄마와 아빠는 세상 그 자체였다. 바다처럼 넓은 품으로 날 보듬어주길 바랐지만 부모님은 늘 바쁘고 피곤하셨다. 모성과 부성이 없는 분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넘치게 사랑을 표현하시지도 않았다.
자라면서 크고 작은 서운함들이 쌓여갔고 한때 마음속에 원망이 자리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당신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고 미숙해서 아이의 마음까지 헤아릴만한 여력이 없으셨던 것 같다. 가끔 과거를 회상하시며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실 때면 괜찮다고 말씀드린다. 세월과 함께 부모뿐 아니라 자식의 마음도 크고 깊어지는 것 같다.
소설 속 인물들도 아픔을 겪으며 비로소 진짜 '가족'으로 거듭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성장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가족도 사람 간의 관계이기에 갈등이 있게 마련이고 이를 극복해 가면서 좀 더 성숙하고 단단해지는 것 같다.
책을 덮으며 절망의 끝에서 다시 생을 피워낸 딸, 사야카에게 마음으로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세상의 다른 모든 사야카들도 암흑의 시간을 벗어나 광명으로 한 발짝 다가서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