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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Aug 02. 2022

꼭 그렇게 애 셋을 낳아야 속이 시원하겠냐

라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나는 자타공인 "하고 싶은 일은 다하는 여자"이다. 주중에는 풀타임으로 일하고(주말에도 가끔 일하고) 주말엔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틈틈이(퍽 자주) 골프 라운딩까지 다니다 보니 시간을 초단위로 쪼개도 부족하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여자"가, "애엄마"가 저렇게 하고 싶은걸 다 하고 다니는 게 신기한가 보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 부지런해야 하기도 하고, 주변의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보든 집에서 보든 "선택과 집중"하지 못한 처사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친정부모님이나 남편, 아이들과 같은 주변 사람들을 혹사시키는 사람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한다. 


사실 그런 말들을 신경 쓰지 않을지는 좀 되었다. 둘째를 낳고 업무강도가 더 센 직장으로 이직을 결심할 때에 이미 선택과 집중 따위에는 흔들리지 않기로 했고(워킹맘에게 선택과 집중이란 말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와 커리어 중에 선택하라는 말이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이대로 커리어와 육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내 커리어와 엄마로서의 일상을 유지해 나가기로 결심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 사람보다는 약간의 데미지는 있겠지만(예를 들어, 승진이 다소 느리다든지, 전업맘만큼 아이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한다든지), 난 둘 중에 하나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난 일하는 것도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정말 좋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하는 이 여자에게 지난해 큰 고민이 생겼다. 사실 지난해의 문제는 아니고, 이미 둘째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던 고민이었다. 셋째가 가지고 싶었다. 셋째를 가지고 싶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일단 첫째, 둘째가 너무 예뻤다. 힘든 면도 있었지만 두 아이는 커갈수록 엄마를 더 사랑했고 엄마랑 더 잘 놀았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한 명 더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내가 세 자매의 둘째이고, 나의 언니 동생과 매우 친밀한 사이라는 것이다. 항상 셋 중 한 명으로 지내면서 다른 자매들과 서로 의지하고 친구같이 지내왔다. 아이가 셋 일 때는 그 누구도 부모를 독점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더 독립적으로 자라는 면도 있는 것 같고, 아이들이 서로 협동을 배우면서 자란다는 점에서도 아이들에게도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첫째 둘째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합쳐지자 오히려 아이를 한 명 더 갖지 말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대단한 재력가는 아니지만 아이 한 명을 더 키울 정도는 형편이 된다고 판단되었고, 특히 육아과정에서 남편이나, 친정부모님, 시부모님의 도움도 어느정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곧 마흔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망설이다 보면 아이를 갖기 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설득했고, 아이를 한명 더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할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했다.  


하고 싶은 일은 꼭 하는 기어이 꼭 하는 이 여자는 결국 셋째를 가졌고,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 이미 두 아이가 있다고 했을 때 출산휴가 따위는 주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했을 회사에서도 깜짝 놀랐고(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출산휴가를 쓰는 일 자체가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이미 두 아이를 돌봐주고 계시는 친정부모님, 특히 친정어머니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하셨다. 게다가 별다른 사정이 없다면 출산휴가만 쉬고 바로 복귀하겠다고 하니 딸이 아이를 낳아서 던져놓고 나가버리면 본인이 큰아이 둘에 갓난아이까지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 뻔했기 때문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한 결정이었지만, 출산을 앞둔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가 오려고 그랬나 보다 싶다. 아이가 태어나고 싶어 엄마, 아빠의 마음을 움직이고, 할머니의 마음을 움직이고, 회사에서도 배려해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었을까. 어쨌든 지난 9개월을 무탈하게 잘 보내고 출산을 앞두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의 현실적인 문제들은 외부의 도움을 좀 더 받고, 내가 좀 더 노력하면서 메꿔갈 예정이다. 


셋째를 가졌다고 하면 '아이고'라는 탄성과 함께 나라에서 상 줘야 한다라든지 애국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 셋째가 물어보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엄마가 애국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너를 원해서 너를 낳았다고. 그리고 그 마음은 아마도 네가 태어나고 싶어서 엄마에게 그런 강력한 텔레파시를 보내서 생겼던 것 같다고. 너로 인해서 엄마의 인생은 아주 조금 더 피곤 해졌겠지만 훨씬 더 큰 기쁨이 생겼다고.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서 느낀 불변의 진리가 있다. 큰 행복에는 큰 노력이 따르는 법, 나는 주변의 우려를 물리치고 이번에도 기어이 하고 싶은 일을 해냈으니, 그 일로 인한 결과 또한 담담히 감당해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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