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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Jan 22. 2024

햇살 같은 말 한마디

왜 그랬나 싶다. 기간제 교사 구하기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내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그 학교에서 해결할 일이었다. 옛 직장에 대한 의리나 일종의 봉사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거절하면 곤란할지도 모른다는 하찮은 자뻑에 불과했다. 결정적으로 머리가 나쁘고 건망증이 심한 내 탓이랄 밖에. 산모가 아이를 낳는 고통이 워낙 심해 다시는 애를 낳나 봐라 해놓고 둘째, 셋째를 출산하는 것처럼 나는 삼 년 반동안 학교에서 받았던 몇 가지 심각한 스트레스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근무 여건에 대한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막연한 걱정과 약간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출근했다.      


삼 년 반 만에 다시 나간 학교는 많이 변해 있었다. 현직 교사들을 만나 더러 학교 얘기를 듣긴 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어리둥절했다. 어리바리하게 구는 것이 마치 깡촌에서 도시 구경을 처음 온 시골 소녀, 아니, 아지매 같았다. 교복을 단정히 갖춰 입은 학생을 오히려 신기한 듯 쳐다보게 될 줄이야. 파마와 염색을 한 학생이 많지는 않았지만 누구도 간섭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사복 차림에 연한 화장까지 한 여학생들과 젊은 여교사를 분간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내가 근무하게 된 학교는 한 학년당 10개 반에 학급당 학생 수가 35명이나 되는 과밀학급이다. 나는 주당 1학년 10개 반을 한 시간, 2학년 두 개 반을 세 시간 담당했다. 겨울 방학을 제외하면 온전히 아이들과 수업하는 시간은 4개월이다. 2학기는 수업 일수가 짧고 행사가 많아 수업 진도 나가기 빠듯해서 아이들과 친해질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나마 2학년은 두어 달 지나니 자연스럽게 이름이 외워졌다. 1학년은 특별히 눈에 띄는 아이 몇몇을 제외하곤 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름조차 외우기 힘든 상태에서 공감대가 형성될 리 만무하고 그러다 보니 수업에 재미도 없었다. 교사가 학교 생활에서 제일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수업시간인데 열심히 가르쳐도 예전과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학생들은 이전 선생님과 조금은 다른 수업 방식에 흥미를 느꼈고 반응도 좋았다. 그러나 아이들도 나도 4개월 시한부 사제지간임을 알기에 친근함을 가지고 다가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제일 아쉬웠던 점은 다른 분들에 의해 이미 정해진 계획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내 방식대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2학년 수업은 선택 과목이라 각 반의 학생들이 다 모여 있다. 결석생이 있었다. 같은 반 학생에게 물어보니 학업 중단 숙려제 중이라 했다. 관련 업무를 담당한 적도 있고 내가 맡은 학급에 숙려제를 했던 학생도 있어 어느 정도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학업 중단 숙려제를 하는 학생은 두 유형이 있다. 내신 성적이 나오지 않아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르겠다는 학생과 글자 그대로 학교 생활에 부적응해서 결석이 잦아지고 학업을 계속할 의사가 없는 경우다. A는 후자에 속했다. A 역시 내가 봐왔던 숱한 부적응 학생과 비슷하겠거니 여겼다.     


2학기 서술형 평가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평가가 끝나면 성적 일람표에 학생들 개별 서명을 받게 되어 있다. 학교 측에서 정한 날짜에 학생들이 등교할 것이라 했다. 약속된 날, 점심시간까지 A를 만나지 못해 휴대전화를 걸었더니 상담실에 있다고 했다. 서명을 받아야 하니 내가 있는 교무실로 잠깐 와달라고 했다. 학생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몸이 안 좋아 힘들다고 했다. 4층 구석에 있는 상담실로 갔다. 황금색에 컬이 들어간 짧은 커트 머리, 짙은 화장의 A가 혼자 있었다. 안색이 창백했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어디 아프냐고 물으니 과호흡이라고 했다. 보건실에 가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며 한사코 거부했다. A를 혼자 둘 수 없어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보건실로 데려갔다. 오후에 복도에서 다시 마주친 A는 다행히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예쁜 웃음을 보냈다.          


기말고사 기간, 숙려제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온 A를 복도에서 만났다. 금발 머리에 눈이 커다란 A를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돌아왔네”라고 했더니 ‘네’라고 환히 웃으며 답했다. 그녀와 교실에서 만난 것은 딱 한 번. 수업 시간에 앉아 있는 A가 낯설었다. 네일아트를 한 그녀의 손톱에 아주 잠깐 관심을 보인 게 다였다.      

겨울 방학하는 날. 2교시는 A가 속해 있는 반 수업이었다. 수업 시작 전, A가 상담실에 가야 한다며 허락을 받으러 왔다. 그리고는 "선생님, 한 학기 동안 고생하셨어요.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라고 정중히 인사했다. "내년엔 어쩌니?"라고 물었더니 위탁교육을 가노라며 베이커리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겠다는 그녀에게 덕담을 건넸다. 수업 한 번 듣지 않은 그녀에게 진심이 묻어난 인사 한 마디를 듣는 순간 울컥했다. 

     

 그동안 학교의 교육 여건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고, 학생들 간의 경쟁은 더욱 심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도 각박해졌다. 일부 학생들에게 교사는 성적을 얻기 위한 방편이고, 생기부를 적어 주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교사도 학생도 잘못된 교육제도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했다. 같은 교무실의 선생님들은 친절했고 소속 부서의 부장 선생님도 잘 대해 주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괜히 왔다는 후회가 깊어지고 떨어지는 기온처럼 마음은 착잡했다. 그런 내게 A가 건넨 말은 한겨울 추위를 녹이는 한 줄기 햇살 같은 다사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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