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고서
병자호란을 아는가
병자호란
땅도 얼어붙은 한 겨울, 청의 맹렬한 기습을 피해 남한산성에 기거하여 인조와 조정 대신, 성안의 백성들이 겪은 40일간의 역사.
우리를 그동안 도와주던 명은 고마우나, 외교는 의리보다는 실리라고 대국인 청과 화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
명이 그간 우리에게 어떻게 해줬는데 의리를 지키고 청을 배척해야 한다는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청과 화친하여 살 것인가, 배척하여 의를 지키고 죽을 것인가의 선택의 갈림길 속에서 백성들은 그 길에서 죽어나가고 각자 살 길을 찾는다.
임금이고 백성이고 누구든 살고 싶다는 건 본능이다.
결국 역사의 그들은 각자의 삶을 택했다. 각자의 방식으로서의 삶 말이다.
자결로 삶을 택하려 했던 예조판서 김상헌, 죽더라도 삶의 끝에서 죽겠다던 이조판서 최명길, 비난하고 싶지만 그의 삶이 이해가 되는 정명수와 위기를 용단 있게 헤쳐가는 희망적인 백성 대장장이 서날쇠.
조정의 정사에 의해 한 아비가 목이 베이고, 군관이 추위에 살이 터져 죽고, 신료가 자결을 하고, 말이 굶주려 말라죽는다.
결국에는 말(言)로 흐트러질 탑을 쌓고 쌓다 죽을 날에 이르러서야 우유부단함을 끝내는 무력한 임금.
작은 성에 갇혀 생을 이으려니 임금과 신료는 화로 하나, 돌멩이 하나, 바늘 하나, 간장 한 종지도 귀하다.
사는 게 별거 있나. 추운 겨울, 따뜻한 국물로 속을 덥힐 수 있고, 얼지 않을 정도의 피복,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숨을 들이쉬고 내쉴 수 있다면 그만인 것을....
서날쇠가 살고 가족이 돌아오고 거기에 나루까지 아들의 처로 점찍어둔 결말은 그래도 희망적이고 끈질긴 우리 민족의 삶에 희망을 가지라는 작가의 message일까...
작은 반도에 위치하여 지정학적으로 외세의 침략으로 수난을 겪는 비운의 단일민족.
임진왜란, 정묘호란을 거치며 국방의 중요성과 자주성을 깨칠 만도 하였거늘 어찌나 우매했는지 책을 읽는 내내 무력함이 잠처럼 밀려왔다.
그때의 정세상 나는 어떤 파에 몸을 담았을까... 이래도 굽히고 저래도 굽혀야 할 상황이라면 처음부터 굽혔을까? 끝까지 투항하다 자폭했을까?
조선에 50%가 노비여서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었지만 지금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답은 늘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살고 싶다. 살기를 원한다.
김훈이라는 대작가에게 반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직선적이고 묵직한 문체, 그리고 그만의 유려한 표현이다. 언어의 유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그의 글을 발췌해본다.
최명길이 먹을 갈았다. 남포석 벼루는 매끄러웠다. 최명길의 시선의 벼루와 먹 사이에서 갈렸다. 새까만 묵즙이 눈에서 나오는가 싶었다. 묵즙이 흘러서 연지에 고였다. 최명길이 붓을 들었다. 최명길이 붓을 적셨다. 최명길이 젖은 붓을 종이 위로 가져갔다.
문장으로 발신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써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에 쌓인 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서로 엇물면서 떼뱀으로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렸다.
백성의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배불리 먹은 말들이 다시 주려서 굶어 죽고, 굶어 죽은 말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깔래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 죽는 순환의 고리가 김류의 마음에 떠올랐다. 버티는 힘이 다하는 날에 버티는 고통은 끝날 것이고, 버티는 고통이 끝나는 날에는 버티어야 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었는데, 버티어야 할 것이 모두 소멸할 때까지 버티어야 하는 것인지 김류는 생각했다. 생각은 전개되지 않았다. 그 날, 안에서 열든 밖에서 열든 성문을 열리고 삶의 자리는 오직 성 밖에 있을 것이었는데, 안에서 문을 열고 나가는 고통과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통의 차이가 김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김류는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