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더 리더>를 읽고서

유대인 학살과 남은 이들

by Dee

책 읽어주는 남자. 평온한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칼에 깊이 찔린 듯 아프고 천천히 오래 유혈이 온몸 구석구석 젖어든다.

1950년대 독일의 한 도시. 15살의 남학생 미하엘은 간염으로 학교를 쉬면서 우연히 서른이 넘는 한나를 만나 관계를 가지게 된다. 늘 관계 전에 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하는 한나.
그렇게 그들의 의식은 시작되었다. 목욕하고 책 읽고 관계를 가지는 그들만의 의식.

미하엘은 한나와 관계를 가지고 소년이 아닌 남성으로서 독립적인 자아를 얻어 가족들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가정보다 확대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한나와 점점 멀어지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그를 떠난다.

시간이 흘러 미하엘이 대학생이 되고 유태인 대학살 시 강제수용서에서 유태인을 교회에 가두어 태워 죽인 살인방조죄로 피소된 이들의 재판을 방청하다 피고인 중의 한 명인 한나를 보게 된다.

어떻게든 유죄를 면하려는 다른 피고인들과 달리 순수하리만큼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한나. 다른 피고인들의 진술과 한나의 말이 다르고, 화재 당시에 쓰인 보고서와 일치하지 않자 그 보고서를 누가 썼는지에 초점이 맞춰지고 다른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은 한나에게 죄를 덮어 씌우려 한다. 한나에게 필적 감정을 요청하자 한나는 너무나 담담하게 본인이 보고서를 썼다고 시인해버린다.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한나와 단둘이 여행한 곳을 다시 찾는 미하엘. 그곳에서 미하엘은 한나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것을 깨닫는다. 과거 한나가 문맹이라는 기억의 흔적이 여러 곳 있었다. 교과서에 미하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늘 보면서 미하엘의 이름을 몰랐고, 여행 중 호텔에서 미하엘이 남겨놓은 메모를 보지 못해 울분을 토했고, 지도를 보지도 호텔 등록부에 기재도 미하엘에게 맡겼었다.
문맹임이 밝혀질까 두려워 한나는 그렇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그렇게 방어적이었던 걸까? 문맹이 탄로 날까 두려워 그녀는 유죄임을 시인한 걸까? 검사에게 진실을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 철학자인 아버지에게 돌려서 묻는다. 아버지는 정의보다 자유가 중요함을 말한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이 부분은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숨 쉴 수 있는 자유. 어릴 적 엄마의 잔소리와 통제를 받으며 억압된 환경 속에서 자란 대부분의 우리에게 옳으나 듣기 싫은 말들. 옳으나 강요할 수 없는 건 인간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야 허공에 대고 지나간 세월에 반박하고 싶어 진다.

미하엘은 한나의 자유를 존중키로 하고 그녀가 문맹으로 살아오며 느꼈을 희생, 투쟁, 수치심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되고 책을 읽어 테이프에 녹음해서 10년간 그녀에게 보낸다.
4년째 되는 날 한나가 글을 배워 짧은 답장이 왔을 때 미하엘은 환희하지만 그녀를 방문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회피였을까, 다시 상처 받을까 봐 두려웠던 걸까? 범죄에 대한 용서를 할 수 없었던 걸까?
한나는 18년 끝에 사면 석방되고 석방되기 일주일을 앞두고 한나와 재회한다. 어색하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 뒤 석방일에 한나는 목을 맨다.

한나의 방을 둘러보다 자기의 졸업식 사진을 보며 울컥하는 그. 18년간 미하엘의 녹음테이프 소포보다 편지를 애타게 기다렸다는 교도소장의 말.
그녀는 왜 자살을 선택한 걸까? 18년으로도 수용소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속죄를 못했고, 무엇보다 사랑했던 사랑받기를 기대했던 미하엘을 통해서도 구원받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녀는 매일매일 미하엘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녀가 원한 것은 미하엘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을 것이다. '당신을 이해한다'라고.

3번째 이 책을 읽으면서 한나와 나 자신을 동일화시키곤 한다. 문맹으로 그녀가 느꼈을 불편함과 불안함, 외로움,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이들 앞에서 나를 들키는 게 싫어서 도망가는 그녀.
그 자존심. 한나의 자존심은 그녀가 이때껏 버티고 살아온 유일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들어올 수 없고 내칠 수 있는 그 자존심.

미하엘이 책 앞부분에서 철학자인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는 가끔 그의 가족인 우리가 그에겐 가축과 같은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중략... 왜냐하면 그의 인생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가족인 우리가 그의 인생 자체였으면 정말로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미하엘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었으며 그의 가족을, 한나를 자기 삶의 전부로 만들지 못했다. 거기서 오는 숙명에 대한 죄책감과 존재의 외로움, 향수병도 그가 짊어져야 할 숙제일 것이다.

이 소설이 주는 묵직한 story는 단지 love story여서가 아니라 유태인 학살과 독일 내 전범 처단 과정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역사가 엮여있기 때문이다. 나치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숙청하고 싶지만 그 총구는 미하엘 부모 세대를 겨누고 있다. 나치 범죄자는 저지른 자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묵인한 모두가 유죄라는 것. 수치심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자들이 더 출세하고 그의 다음 세대들이 숙청 운동을 하며 독선을 과시하고 있는 역설적인 현실. 여기서 미하엘은 무죄인가? 나치 범죄를 묵인한 부모의 아들이자 직접적으로 가담한 범죄자 한나를 사랑한 죄로 그에게도 총구는 겨누어졌다. 그래서 미하엘이 죄의식과 수치심을 몰랐던 그때, 한나를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서 한나가 죽은 다음 날 깨자마자 그녀의 죽음보다 강렬하게 향수병을 앓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과거 속에 묶어 놓고 이상화된 모습으로 그녀를 사랑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현실로부터 도피요. 그녀에 대한 부인이요, 배반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