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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known Apr 26. 2020

PhD-TSD:
박사 후 스트레스 장애 - e06

누군가의 삶에서는 엑스트라, 다만 그의 삶에서는 주연.

그는 페이스북 혹은 링크드인과 같은 소셜미디어에 접속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결국은 부끄러운 이야기이겠으나, 그의 소셜 미디어에는 그와 친하게 지내던 대학교 친구들의 성공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물론 그것이 소셜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기도 하고. 타인의 긴 인생에서 삐죽 튀어나오는 하이라이트들만이 소셜 미디어에는 가득 채워져 있고, 그 하이라이트들과 현재 그의 삶을 비교해보면 그의 삶은 너무도 비루해져 보인다. 최소한 그곳에서 그의 역할은 조연, 아니 대사 한 마디 없는 엑스트라와 같으니까. 


가끔 어떠한 이유로 페이스북을 들어가게 되면 그와 (과거에) 친했던 친구들의 근황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령 학부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MIT로 대학원을 갔고 거기서 박사를 취득했다는 사실, 다른 친구가 얼마 전 페이스북 본사에 입사했다는 사실, 또 다른 후배는 구글 본사에 입사했다는 사실, 후배 하나가 스타트업으로 몇 십억의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 또 다른 친구는 국내 탑 대학교에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들까지. 그가 박사를 취득하기 위해서 헤매었던 그 긴 시간 동안 다른 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발자국들을 척척 남기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오늘 느꼈던 행복과 기쁨을 쉽게 앗아가 버리는 것만 같다. 그러한 소식들을 보고 나면, 웃기가 쉽지 않다. 그들의 성공에 비하면 지금 그가 가진 것들은 문득 너무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니까. 물론 행복이 타인의 인정으로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그는 꽤 오랫동안 그 인정을 통해서 스스로의 행복을 성취했었으니까.


물론 그가 딱히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아니다. 냉정히 말해보면 그의 삶 또한 다른 많은 이들이 부러워할만한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탑 대학교에서 학사를 취득했고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국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S전자에 입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니까. 다만, 그저 그는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볼만한 매우 뛰어나고 압도적인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즉, 모든 사람들의 삶에서의 주연같이.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있고, 또 그들의 삶은 그의 인생에 비교하기에는 아마도 훨씬 혹독했을 것이다. 그가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아마도, 그들은 그것을 참아내며 논문을 읽고 연구를 했을 것이니까. 자연히 각자의 노력이 다르므로 지금 각자의 위치가 다른 것 또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것이고, 정의로운 일이다.


다만, 그의 눈에 자꾸만 아른거리는 것은 "그가 스스로 망쳐버린 그의 잠재성"이다. 그 또한 대학교를 입학했을 즈음에는 그들과 비슷한, 어떤 출발선에 위치해 있었으니까. 어쩌면 조금은 그들이 그보다 앞 선에 있었을지 몰라도 그리고 가지고 태어난 재능 자체도 어느 정도 달랐을지 몰라도, 그 시절에는 그것이 지금의 차이보다는 훨씬 작았을 테니까. 어쩌면, 그가 과거에 그들처럼 열심히 노력했다면 그 또한 지금 그가 부러워하는 다른 이들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에 비해서 그가 쏟은 노력이라는 것이 부족해서(설령 그것이 환경으로 인한 것일지라도), 이제는 그들의 삶과 그의 삶 사이에는 너무도 깊고 넓은 강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현재의 상황에서 어떤 짓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도달하기는 어렵겠다, 라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니, 그는 자꾸만 "스스로 망쳐버린 그의 잠재성"을 생각한다. 내 삶을 망가뜨리는 것은 나였다. 언제나 나였다,라고.


문득 다른 삶 또한 돌아본다. 어떤 형은 학부 시절에 학사경고를 세 번 맞고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났다. 어떤 후배는 Y대 의대를 포기하고 이 학교에 왔고 대학원까지 진학했지만 결국 중간에 자퇴하고, 법학전문대학원으로 떠났다. 어떤 선배는 화학을 너무 사랑했고 대학원 진학 중 집안의 문제로 불가피하게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워졌고 현재는 검사가 되었다. 또 다른 친구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매우 뛰어난 천재로, 인정을 받았었지만 교수의 혹사에 못 이겨 끝내 대학원을 때려치우고 30대가 되어서야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후배는, 잘못된 학계의 관행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현재는 지방에서 식당을 하고 있으니까. 그들의 삶이 잘못되었냐고? 아니 그들도 그들의 삶을 사는 것뿐이다. 트랙에서 벗어나도 삶은 존재하니까.


사실 누구의 삶이 더 우월하고 누구의 삶이 더 열등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시각에는 늘 단 하나의 수직선으로 뻗어진 우열을 가르는 기준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삶이 비루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의 삶도 다른 이의 삶도 사실은 모두 각자가 살면서 그 순간순간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해낸 것이니까. 그는, 최소한 그는 그의 삶을 지지할 수 있는 그의 편이 되어주어야만 한다. 삶을 돌이켜 보면 그때그때 그 모든 순간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 모두는 어떤 지점에서는 씨앗과 같았을 것이다. 사실 삶의 길은 하나가 아니며 어떤 사람은 하나의 길을 걷고 어떤 사람들은 본인의 이유로 혹은 환경의 이유로 다른 삶들을 걸어가게 된다. 어떤 친구는 다른 길을 갔고 또 다른 친구는 그 길을 계속 걸어간다. 또, 어떤 이는 길을 걷다가 잠시 쉬기도 하고 느리게 걷기도 한다. 만약 쉬고 있는 친구에게 "왜 멈춰 있니?"라고 묻는다면 그 아이는 그때 이유를 말할 것이겠지. 그러니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그의 삶이 있다. 지금은 잊어버렸을지언정, 그때는 이유가 있었다. 


어쩌겠나. 그냥 지금 그의 삶이  그의 것이고, 신을 믿지는 않으나, 신이 그에게 준 그의 역할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그가 과거에 했던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그가 있고, 그와 함께 행복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지금의 여자 친구가 있고, 종종 모여 술을 마실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그것이 그의 삶이고, 최소한 정신승리일지라도, 여기서는 그가 주연이니까. 누군가의 삶에 비추어, 그의 삶 혹은 당신의 삶을 비루하게 생각하지 말자. 물론, 그래도 정신건강을 위해서 페이스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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