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nknown May 24. 2020

PhD-TSD:
박사 후 스트레스 장애 - e11

지도 교수의 유형 1편: 열심히 잘하는 교수.

대학원에서 만날 수 있는 지도 교수의 유형을 '열심히'와 '잘'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누어 총 4가지로 분류하여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당연히, 지도 교수는 "연구실 운영 방식", "연구 지도 방식", "지도 교수의 인성" 등의 매우 세부적인 기준들을 사용하여 분류하는 것 또한 가능하지만, 저는 "열심히"와 "잘"이라는 두 가지 기준만으로도 매우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열심히"와 "잘"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열심히"는 "야망 있는"이라는 말과 유사할 것 같아요. "성공하려는 욕구가 넘치는 경우"라고 해석해도 될 것 같아요. 보통 막 학교에 부임한 젊은 교수님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모습이며, 동시에, 이 분류에 속한 분들은 "성공을 위해 대학원생을 믹서기에 갈아 넣을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해석해도 어느 정도 타당합니다. 젊고 열심히 하지만, 인성마저 좋은 교수님들도 있습니다만, 여러분이 대학원에 입학해서 만나게 될 지도 교수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반대로, "열심히 하지 않는"의 경우 정년 보장(Tenure)을 이미 받은 노교수님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일반적인 모습이죠. 이미 꽤 많은 성공을 거두었으니까 미련이 없는 분들이 많은 거죠. 물론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만. 


두 번째로, "잘"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연구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느냐"를 의미합니다. 

현재의 연구 흐름을 읽고 기존 연구의 한계점을 분석하여, 연구실 혹은 대학원생의 연구가 나아가야 하는 향후 연구 방향을 설정하는 것, 그리고 대학원생의 질문 들에 대해서, 얼마나 좋은 지도 코멘트를 해줄 수 있는가? 와 같은 것들이 지도 교수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성질의 것이죠. 당연하지만, 이 부분이 부족하면 연구실의 방향은 물론 대학원생의 졸업에도 큰 위기들이 닥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랬고요. 

젊은 교수님들의 경우 대부분 이 부분이 갖춰져 있고, 나이 든 교수님들의 경우도 어떤 통찰력을 갖추고 계신 분들이 있어서 중요한 순간에 머리를 댕-하고 때리는 코멘트를 주시기도 하죠.


첫 번째 유형: 열심히 잘하는 경우.


보통 박사를 졸업하고 교수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교수님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졸업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비교적 최신의 연구를 직접 진행하고 있으며, 교수로서의 역할에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한 상황이죠. 그리고, 신생 연구실에는 보통 그 해 졸업생 중 똑똑한 아이들이 많이 진학을 하게 되므로 연구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단계가 되고, 보통 여러 연구 과제들도 동시에 수행하고 있습니다. 즉 학계의 최전선에 있다,라고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당연히 이 연구실에 들어간 대학원생은 해야 할 일들이 매우 많을 겁니다. 신생 연구실이므로 마치 스타트업처럼 새롭게 세팅해야 하는 것들이 매우 많고 할 일들이 많아서 10 to 10 그리고 주말출근 혹은 그 이상의 업무 강도가 요구되죠. "주 50시간으로는 이 연구실에서 버틸 수 없어!"와 같은 이야기를 들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젊은 교수이고 체력 또한 문제가 없기 때문에 대학원생에게 "왜 이것밖에 퍼포먼스를 못 내지? 내가 대학원생 때는 너처럼 하지 않았어"라는 말을 순진무구한 얼굴로 쏟아부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교수는 그렇게 대학원 생활을 보냈을 테니까요. 따라서, 여기에 속하는 대학원생들은 점차 개인 생활이 없어지고 '연구 노예'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면으로 보면 이 '지나친 빡셈'은 많은 박사과정 후보생들을 일찌감치 포기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어떤 연구실은 박사과정이 자퇴를 하고 => 남아있는 석사 과정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 석사 과정들이 빡세지고 => 신입생이 입학하자마자 과제를 여러 개 담당하고, 하는 매우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지만요. 


물론 그러함에도, 이러한 연구실들은 현재 학계와 산업계 모두에서 가장 최전선에 있는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수 또한 악독하더라도, 실력이 있으며 연구에 대한 통찰력도 정점인 상황이죠. 이 노예생활을 잘 끝내기만 한다면, 차고 넘치는 보상이 대학원생에게 주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괴물을 이기려면 괴물이 되는 것처럼, 이러한 연구실에서 교수가 원하는 퀄리티를 모두 맞추고 졸업하여 다시 교수가 된다면, 그 또한 매우 높은 확률로 아랫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괴롭히는 괴물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본인이 살아남았고, 본인 자체가 그 환경의 유효함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므로 더욱 '맞다'라고 생각하게 되죠. 


또한, '힘들기 때문에 맞지 않을 경우 일찍 떠나게 된다'라는 것은, 어찌 보면 장점입니다. 대학원생이 '끓는 물의 개구리'인 상태로 본인이 경쟁에서 밀려난다는 것도 모른 채 계속 머무르는 것이 가장 최악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PhD-TSD: 박사 후 스트레스 장애 - e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