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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뜰살뜰 구구샘 Jun 14. 2024

버스와 교실, 소름 끼치게 닮았네

가바사와 시온, <신의 시간술>

고속버스와 우리 반 교실은 소름 끼치게 닮았다. 둘 다



1. 최대 28인승이다.


2. 목적지가 있다.

-버스: 서울, 부산, 강릉, 목포

-교실: 홍익인간 전인교육(이라고 쓰고 '대입'이라고 읽는다)


3. 시간 엄수가 중요하다.



내가 3월 초에 앵무새처럼 떠드는 게 있다.  "9시에 출발하는 고속버스, 9시 1분에 도착하면 수 있어요?" 학교 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세뇌(?)한다. 제발 시간 지키라고 말이다.


여기 한 승객이 있다. 일행이 1분 늦는다고 했다. 그래서 문을 못 닫게 한 발을 버스 계단에 올려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다행히 일행은 딱 1분만 늦었다. 그런데 그가 붙잡은 버스가 만원 버스라면? 그는 과연 1분만 늦은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기사님과 다른 승객의 시간을 더해 28분을 까먹었다.


너무 야박하다고 느낄 수 있다. 꼴랑 1분 가지고 유세 떤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승객의 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개중엔 신입사원 면접을 보러 가는 청년이 있을 수 있다. 임종을 앞둔 어머니가 계신 중환자실로 향하는 아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1분은 고작이 아니라 평생일 수도 있는 것이다.


교실도 마찬가지다. 한 학생이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다가 수업에 1분 늦었다. 그럼 교사와 다른 학생들까지 포함해 총 28분의 영향을 끼친 것이다. 담임 입장에선 이 친구를 기다려 줘야 할까? 아니면 늦든 말든 수업을 시작해야 할까?


다행인 건 교실에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거다. 일단 정시에 수업을 시작하고, 다른 친구들이 활동하는 동안 지각한 친구에게 한 번 더 교육서비스를 제공한다. 지각한 주제에 무슨 호사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정의는 멀고 민원은 가깝다. ("선생님, 글쎄 우리 애만 빼놓고 수업 시작하셨다면서요!")


그런데 이런 서비스를 사회에서도 기대할 수 있을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그래서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잔소리를 한다. 제발 시간 약속 좀 지키라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 반 전자칠판엔 주야장천 시계가 켜져 있다. 논란을 없애기 위해 초 단위까지 띄워준다.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네이버시계'를 켜둔다. 임영웅 콘서트 예약할 때 쓴다는 그 시계 말이다.


현장체험학습을 가던 날, 나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한 명이 지각을 한다는 거다. 어머니께서 정말 죄송하다며, 최대한 빨리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다. 이제 담임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미리 교실에 도착한 학생들이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1. 교실에서 기다리기

2. 교실 문 잠그고 출발하기


머리털 다 빠지는 줄 알았다. 아이들이 레이저를 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문 잠그고 출발했다. 오늘 예외를 둬 버리면 교실 붕괴다. 원래 선생의 권위는 사랑의 맴매가 아니라 일관성에서 나온다. 얘들아 일단 버스 타러 출발!


그렇다고 지각생을 버릴 순 없었다. 그랬다간 민원 각이다. 그래서 나름 꾀를 냈다. 버스 타는 곳에서 합류하기로 정한 거다! 마침 교실에서 버스 타는 곳까지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신이 도왔을까? 지각한 친구가 사는 곳이 그 근처였던 거다. 그렇게 우리는 '견우와 직녀'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나는 '권위'와 'NO민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이 책, <신의 시간술>은 일본 정신과 의사가 썼다. 책을 구상하는 데만 10년을 투자했고, 집필하는 덴 2년을 쏟아부었단다. 그만큼 디테일이 장난 아니다.


사실 '시간 관리'는 껍데기고, 알맹이는 '집중력 관리'였다. 저자는 같은 시간이라도 밀도 있게 쓰라고 외쳤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 행복을 사라고 했다. 가족과 여유로운 저녁식사 같은 거 말이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자기 시간보다 남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라"였다. 민폐 끼치길 극혐 하는 일본인다운 주장이었다. 네이티브 한국인인 나도 공감 100퍼 1000퍼였다.


물론 나도 지각할 때가 있다. 그땐 1분 치 사과가 아니라 28분 치 사과를 박는다. 찐하게 말이다. 하지만 사과는 여전히 불편하고 어렵다. 이거 하기 싫으면 일찍 도착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해군 출신이다. 해군에는 '15분 전'이라는 제도가 있다. 모든 일을 15분 전에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9시 정각에 점호를 한다? 그러면 8시 45분에 모든 준비를 끝내야 한다. 모든 장병이 복도에 차렷 자세로 아무 말 없이 15분 동안 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마 배를 타는 해군이라서 이런 제도가 있는 거 아닐까? 배에는 2~300명의 승조원이 탄다. 그런데 단 한 명 때문에 출항을 못 한다면? 그래서 약속된 시간에 항구를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뜨아! 눈앞이 깜깜할 일이다. 그래서 '15분 전 제도'라는 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30분 일찍 도착하라고 조언한다. 일찍 도착해서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란다. 데드라인이 있기 때문에 초집중 상태로 일을 쳐낼 수 있을 거란다. 만약 상대가 일찍 온다면? 그럼 개이득이다. 상대가 지각하면? 그것도 댕이득이다. 업무를 더 쳐낼 수 있으니까.


나도 이걸 적용해 봐야겠다. 30분 까지는 아니더라도 15분 전까진 미리 도착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그건 해군 시절에 2년 동안 했던 거기 때문에 몸이 알고 있을 거다. 요즘 너무 제한시간을 너무 빡빡하게 썼다. 출근 버스 타려고 정류장까지 뛰어갔던 일도 많다. 15분 일찍 나선다면 이제부터 그런 일은 없다.



TO. 우리 반 친구들에게


얘들아, '떠난 버스'는 전 여친에게만 쓰는 말이 아니란다. 9시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는 09:00:01초만 되어도 이미 출발하고 없어. 심지어 핸드폰 시계로는 아직 1분 남았어도 버스 안에 있는 시계가 1분 빨라서 출발해 버린 경우도 있단다. 대한민국은 그런 곳이야.


1분 늦는 거? 담임쌤은 기다려 줄 수 있어. 하지만 버스 기사님한텐 안 통할 거야. 이미 톨게이트 지났을 걸? 교실에서 받던 서비스를 고속터미널에서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거긴 실전이니까.


그러니까 우리 지금부터 연습하자. 교실은 뭐라고? 그래 맞아, 고속버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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