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담이 하고 싶었다.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무게를 덜어주고 싶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부모님께서는 항상 남들도 신경쓰면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러다보니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레 많아졌고,
결국에는 '남들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는 다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남들 신경을 쓰다보니 내 자신에 대한 관심이 커진 케이스인데, 타인에 대한 관심과 나에 대한 관심 모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보여지고 싶은 대로 남들이 나를 봐줬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나는 자연스레 심리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심리학을 전공으로 삼고 싶었고, 심리학을 공부하면 다른 사람이 보는 나와 진짜 나의 간극이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내 안에 있는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걸 '페르소나'라고 부르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의외로 자신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표출하지 못하고 꽁꽁 싸매고 살아간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 그 이유가 자존심, 방어기제, 트라우마 등 경험에서 비롯되어 만들어진 성격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리학과에서는 의외로 뇌과학과 호르몬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는데, 나는 이과 출신이 아니기도 했고 생물학에는 흥미를 크게 못느껴서 오히려 문과적인 내용들을 위주로 수업을 골라 들었다. 성격심리학, 사회심리학, 인지심리학, 행동치료, 이상심리학, 건강심리학, 조직심리학, 법심리학, 장노년심리학, 산업심리학, 소비자심리학, 상담심리학, 그리고 집단치료까지 이수를 마쳤다.
성격심리학, 사회심리학, 인지심리학, 조직심리학 - 사람, 그리고 집단에 관한 심리를 연구
행동치료, 이상심리학, 건강심리학, 상담심리학, 집단치료 - 건강한 심리, 그리고 치료에 관한 연구
법심리학, 장노년심리학, 산업심리학, 소비자심리학 - 심리학을 다른 분야와 접목시켜 해당 분야를 심화 연구
위와 같이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이 가능할 것 같다. 이외에도 심리학의 역사, 동기와 정서에 대한 연구, 재능과 기술의 심리학, 심리학의 실험 연구 방법 등 다양한 수업들도 들었지만 굵직하게는 위의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개론과 교양심리 수업을 포함해 스무개 남짓의 심리학 강의를 수강했는데, 이 중 가장 내 관심을 자극한 건 상담 그리고 건강한 심리 상태를 위한 치료에 대한 것이었다. 연세대학교는 상담과 관련된 심리학 수업을 들으면 의무적으로 상담센터를 찾아가 상담을 받아보게끔 되어 있는데, 덕분에 나는 학교 상담센터에서 무료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다. 상담에서는 내가 숨겨두고 밀어냈던 다양한 페르소나를 끄집어 내 눈 앞에 보여주었고, 빈 의자 기법(빈 의자를 하나 앞에 두고 거기에 사람이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감정 섞인 대화를 풀어내는 것)이나 로르샤흐검사(다양한 그림을 보여주고 어떻게 해석하는 지 물어본 뒤, 해석을 통해 심리상태를 확인하는 것)를 통해 심리 스펙트럼을 넓혀주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나는 UCLA로 교환학생을 갔다.
UCLA가 미국 내에서 심리학으로 상당히 저명이 있는 학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히 상담쪽으로도 유명하다고 해서 열심히 준비해서 다녀오게 되었다. 거기서는 온전히 상담쪽에 집중해서 수업을 들으려고 노력했고, 집단 상담과 상담 심리 사례 연구 등 다양한 실전 위주의 상담을 체험했다. 심지어는 내가 상담을 해줘야 하는 과제도 있었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상담에 임할 수 있기도 했다. (대상은 당연히 같은 강좌 수강생이었다.)
미국에서는 심리적인 문제를 하나의 질병처럼 여겼다. 그래서 DSM 이라는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이 존재하며 5번째 개정판까지 나와 있었고, 여기에 나와있는 특정 질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해당 정신 질환을 해결하기 위해 다같이 모여 아픔을 공유하며 치료를 받는 등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암환우들의 모임 혹은 허리디스크 환자들의 모임 같은 느낌으로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공유했다.
같은 집단 상담 수업을 들으며 실습을 함께 했던 학우 중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손목이 흉터 투성이었는데, 자신은 자해를 하는 정신 질환이 있고 자해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제법 덤덤하게 얘기하는 모습이 충격적이기도 했고, 당당히 드러내는 모습에 동정 혹은 연민 보다는 같이 해답을 찾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그렇게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와, 상담을 좀 더 공부해보고자 한국의 심리 상담 시장과 커리어패스에 대해 알아보았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현실도 팍팍한데 심리까지 챙기는건 사치라는 생각도 당연시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상담을 이런식으로 기피하면서도 상담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도 팽배했다. 고민거리 들어주고 하소연 받아주는데 돈을 달라고? 내가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심리 상담을 왜받아? 심리 상담을 돈주고 받을 바에는 그 돈으로 술을 먹는게 더 낫겠다. 라는 식의 말들이 쉽게 오가곤 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심리 상담 시장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다. 심리학 '박사'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약물치료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는데, 이로 인해 사실상 심리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더라도 절반의 치료 밖에는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나는 상담이 하고 싶은데, 우리나라에서 상담을 하기에는 환경이 좋지 못하고, 그래서 그걸 직업으로 삼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 상담을 통해 밥벌이를 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고,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에는 제약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상담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상담이면서도,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상담을 해주는 나 역시도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그건 바로 재무 상담이었다. 사람들이 돈 때문에 상담 받기를 꺼려한다면, 돈 얘기를 하면 상담을 하는건 어떨까? 당장의 돈이 심리 상태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거라면, 돈에 그 사람의 심리가 투영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돈 공부는 시작되었고, '돈'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의 고충을 듣고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의 행동이 돈에 결부되어 일어나는 경우가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