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걷는 것인가
〰️이번 화부턴 대화체로 쓸게요 :)
잔돈이 털리고 나니 내 수중에 현금이라곤 100유로짜리뿐이었어요. 오스트리아라는 부유한 국가다 보니, 1유로 짜리를 사든, 10유로 짜리를 사든 100유로 지폐를 내는 것이 별로 신기하지 않은 나라에서 감사하게도 살고 있어요. 100유로 뿐일까요? 200유로 짜리도, 500유로 짜리도 어쩌다 한번씩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오스트리아나 스위스를 제외하고 나서는 100유로 지폐를 쓰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더라고요. 포르투갈 같이 경제적으로 조금 약한 나라면 더욱이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도 한번은 깨야했어요.
리스본을 출발해서 계속 걷다가 사람들이 많이 들락날락하는 Snack-Bar가 눈에 띄었어요. 용기내서 들어가니 당연히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어요. 포르투갈어는 못해도 손가락은 멀쩡하잖아요? 일단 들어가니 유리진열장에 여러가지 디저트, 빵 등등등이 놓여있었어요. 그 중 내가 아는 이름은 Pastel de Nata. 에그타르트! 에그타르트는 너무나 달콤하고 너무나 따뜻하고, 겉은 너무나 바삭했어요. 그 유명한 리스본의 어떤 오리지널이라는 에그타르트보다 맛있었어요.
커피와 에그타르트를 주문했는데 아침을 안 먹었다보니 에그타르트로는 부족했어요.
그러고보니 유리장식장안에 오믈렛 같은 것이 있길래 그것도 달라고 하니 빵에 껴줄까? 묻길래 이것은 먹어야해! 라고 생각했어요. 커피 한잔, 에그타르트, 내 손바닥만한 계란 샌드위치가 고작 1유로 30센트정도였습니다. 리스본에서 걸어서 한시간 거리밖에 나오지 않았는데도 이런 가격이라니 그동안 난 리스본에서 뭘 먹은건가 싶었습니다. 그렇게 쉼없이 걷고 또 걷고..
물은 500ml크기의 생수를 사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유튜브나 영어블로그도 보는데 식수대가 그래도 가끔은 나올 거라고 생각했죠.
도시중심에서 벗어나 드디어 비포장도로를 걷기 시작했어요. 비포장도로를 걸으니 드디어 순례길을 걷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도시내부에서 포장된 도로를 걸을 때는 이게 맞나 하는 생각만 들고, 내가 왜 이 길을 또 걷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길을 걷는다고 내 상황에 답이 나오는게 아닌데 난 왜 이 길을 걷겠다고 한거지? 그저 남들이 다 하고 싶어하는 버킷리스트이기 때문인가?
다들 챙이 넓은 버킷햇을 추천했지만 챙이 넓은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아웃도어샵에 들렸는데 그 곳에서 딱 이 모자를 찾았고 "예쁘지 않아서" 100% 맘에 들지 않았지만, 이 모자는 제 기능을 100%, 120%해주었어요. 아직 시작할 때라 미소도 어려있고, 피부도 뽀송뽀송해보이고, 턱에는 살도 있고, 내 눈에만 뭔가 산뜻해보이기까지 하네요. 순례길을 위해 따로 구매한 것들은 딱 이 모자와 신발 뿐이에요.
첫번째 알베르게. 포르투갈 길에는 많이 걸으면 이틀째, 스케줄에 맞춰 적당히 걷는다면 삼일째까진 공식 알베르게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반 호스텔같은 곳을 찾아 묵어야 해요. 첫날부터 37도를 찍은 무더운 여름날 32킬로를 걷고는 그래도 리뷰가 좋은 숙소를 가겠다고 굳이굳이 먼 이 숙소를 찾아갔습니다. 이 때까진 숙소를 어떻게 찾아서 예약을 해야하는지 등등 알고 있는게 없어서 지친 몸을 이끌고 무작정 대문앞에 찾아갔어요. 대문은 잠겨있었는데 전화번호가 보이길래 또 그냥 전화를 걸었어요. 주인이 영어를 잘 하는건 아니라 최대한 간단한 영어로 '내가 지금 숙소 문앞인데 오늘 방있냐'라는 질문을 했는데 다행히 있다고 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나처럼 대책없이 이렇게 숙소로 찾아가는 사람도 많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여자들인 경우엔 더욱더.
너무 더운데 또 슈퍼는 어찌나 먼지, 오래 걸어서 배는 고프고 목은 말랐어요. 겨우겨우 샤워를 했는데 주인집 아들이 체크인도 도와주고 매우 친절했어요. 방에 와서는 빨래도 해줄테니 필요하면 빨래를 가져오라는 말을 해서 감사하게 넙죽 호의를 받았습니다. 세탁기 빨래라니! 손빨래를 거의 매일 해야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지친 몸에 감사한 말이 아닐 수 없었어요.
그렇게 오래오래 걷고는 2km를 걸어 슈퍼를 갔습니다. 겨우겨우 당장 먹을 것과 다음날 아침에 먹을 과일같은 간단한 것을 사고는 또 터벅터벅 걸어 돌아왔어요. 힘이 다 빠져서 사온 것을 먹고 있는데 또 주인집 아들은 필요한 것 없냐며 커피를 권했는데, 웃으면서 뜨거운 건 아무것도 마시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정말 그만큼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미 오스트리아에서 7년을 넘게 살며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건 나에게 너무 익숙한 일이지만 32킬로를 떙볕에서 걸은 날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말을 듣더니 이 친구는 엄청 시원한 2리터짜리 물 한통을 가져다 주었어요. 난 내가 사온 물을 가리키며, 나 물 있어! 괜찮아~라고 하니, 그 물은 이제 안 시원하지 않냐며, 시원한 물 마시라고 하네요. 그러고 밥을 다먹으니 이번엔 커피가 아닌 아이스크림을 권했습니다. 뜨거운 건 안먹겠다고 하니 아이스크림을 가져다 준 스윗한 친구. 첫 순례길 날이 너무 고달펐는데 친절함에 고단함이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어요.
혼자 하는 여행이 너무 익숙해서 스스로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무도 없는 길을 걸으면서 괜찮은건가 조금씩 생각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친절을 만나니 앞으로의 걱정이 사르륵 사라지더라고요. 사실 걱정도 전에 너무 피곤해서 쓸데없는 걱정을 할 수가 없었어요. 당장 다음날 걷는게 걱정이었거든요. 나 이거 끝까지 마칠 수 있는건가?
근데 이런 고민 처음해본 것도 아니잖아, 이렇게 스스로 다독였습니다. 전 포기가 빠를 때도 많지만 한번 끝내겠다고 작정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장을 보거든요.